‘그런데 세종 거래소는 현금 인출이 막혀있네. 뭐, 어쨌든 다른 거래소만 합쳐도 500억 원이 넘으니까 나중에 해결하면 되겠지.’
세종 거래소를 제외하고는 꿈에서 정민이가 말한 대로 정말 500억, 아니 이제 700억 원이 넘는 재산이 그대로 정민이의 계좌에 남아있었어. 정환이는 계좌를 하나하나 열어볼 때마다 상상도 못 한 엄청난 액수의 돈 때문에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지.
‘형은 도대체 어떻게 돈을 이렇게 많이 번 거야..? 그냥 직장인 아냐? 코인이 대단하긴 하구나..’
정민은 신당에서 나와 급하게 집으로 이동하는 중이었어. 아직 날아다닐 수도 없고 모르는 사람들의 꿈을 이용한 이동은 위험했기에 결국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이었지.
‘죽은 지 3주째인데 아직도 날지 못하네. 죽어도 별 수 없구만.. 대중교통이 제일이야.’
정민은 정환이의 꿈을 통해서 재산 일부를 공개한 뒤 혹시나 정도령이 자신의 재산을 탐내 재산을 강탈하는 등 부정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꿈 싱크 이후 정도령의 태도를 본 후 마음을 놓게 되었어. 500억 원이라는 숫자에 놀라기는커녕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거야.
“정민님, 그런데 아직은 동생 분을 제외하고는 저 재산을 공개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왜요? 가족들이 큰돈을 보면 눈이 돌아서 싸울까 봐요?”
“네, 그런 이유도 있고요.. 그리고 그 돈 때문에 주변에서 많이들 달려들 거예요. 특히나, 대왕님, 아니.. 정민님의 생전 사주가 한국의 부자 탑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재물복이 타고나셔서 주변에 파리가 많이 꼬이는 사주셨거든요. 물론, 그것도 대왕 도깨비님이 지켜주시기는 하겠지만요.. 그런데, 이제 정민님이 사후인 관계로 그 재산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놔야 할 것 같아요. 이를 테면..”
“그럼 제가 정도령 님께는 얼마를 지불해야 하죠?”
정민은 아직까지 정도령에 대한 신뢰나, 어디까지 그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지금부터 하는 얘기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돈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네? 저.. 아직 설명을 다 못 드렸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TV를 봐도 나오잖아요. 굿을 하거나, 부적을 쓰거나 뭐 그런 거 아녜요? 피차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전 지금 다시 정환이 꿈으로 가서 은행 계좌로 연결해서 현금으로 인출하는 것도 알려줘야 하고, 또..”
“정민님, 아니 대왕님, 정말 너무하십니다!”
정민은 정도령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놀란 눈을 하고는 그를 쳐다봤어.
“제가 지금 돈 때문에 정민님을 돕는 줄 아십니까?”
정도령은 억울한 얼굴과 목소리로 자기가 왜 정민을 돕는지 설명했어. 자신은 돈도 쓸 만큼 있고 지금은 그저 대왕 도깨비님이 곤경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대가 없이 사력을 다할 생각으로 돕는 건데, 혹시라도 돈 걱정이나 재산의 안전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어.
“아니, 그래도 수십 억 원도 아니고 수백 억 원인데, 걱정을 좀 할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원래 알던 사이도 아니고..”
“그거야 그렇지만, 제가 감히 대왕 도깨비님의 재산에 욕심을 내겠어요. 하, 정말 제 마음도 모르시면서..”
정도령이 그렇게까지나오자 정민은 정도령을 믿는 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조금씩 그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마음먹었어.
“네네, 믿을게요. 그럼, 이제 어떡하면 되죠?”
정도령은 그제야 다시 평안한 얼굴로 돌아와서는 정민에게 바짝 다가와서 말했어.
“오늘 밤에 정환이에게 가서 그 돈에 대해서는 우선 비밀로하고 딱 필요한 만큼의 돈만 가족들에게 공개하는 겁니다.”
“딱 필요한 만큼.. 요?”
“네,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이 감당하기 힘든 큰 액수의 돈을 보면 결국, 가족이고 친구고 눈에 보이지 않게 되죠. 제가 대왕, 아니, 정민님과 정환이는 직접 뵈어서 그럴 분들이 아니란 걸 알지만 다른 가족분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정도령님, 도령님이야 말로 저희 가족을 너무 무시하시는..”
“정민님, 꼭 가족분들이 그렇다는 게 아닙니다.. 큰돈에는 큰 노력이 필요한 법이에요. 어떤 똥파리가 꼬일지 모른다니까요. 그럼 정민님의 가족 신변이 위험해질 수 도 있어서 그러는 거니, 우선 제 의견대로 해보시지요. 저도 제 개인적인 촉으로만 이러는 게 아니에요. 저, 무당이에요.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정민이 앞에서 말을 마친 정도령은 마치 청렴결백한 정의의 사도가 된 마냥 어깨를 펴고 가슴을 내밀며 신뢰의 향내를 뽐내기라도 하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았어.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죠?”
그러자 정도령은 정민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앞으로 해야 할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어.
“정환이에게 각각 거래소 하나에서 코인을 좀 팔아서 현금화한 뒤에 정민님 은행 계좌에 60억을 옮기라고 하세요. 나중에 10억과 50억 원으로 나눌겁니다. 그리고 정환이에게는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아빠 친구 분인 철민 아저씨의 꿈으로 가세요.”
정민은 정도령의 입에서 철민 아저씨의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라고 말았어.
“철민 아저씨를 어떻게 아시죠??”
“에이, 대왕, 아니 정민님, 저 무당이라니까요. 신내림도 작년에 받았어요.”
정민은 정도령과 얘기를 할수록 조금씩 그를 신뢰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무엇보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주 디테일하게 안내해주는 게 마음에 들었던 거야. 그리고 정도령은 정민에게 앞으로 일어말 일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일러주었고, 그 일이 끝나면 꼭 다시 돌아오라고 했어.
“그래서 이 일들을 해주면 제가 복비를 얼마나 내야 하죠?”
“아니, 정민님.. 제가 대왕님 일을 돕는 건데 제가 감히..”
“도령님, 도령님이 모시는 분들에게도 제가 보답은 해야 하잖아요? 대가 없는 천기누설은 모두에게 안 좋다던데..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대왕.. 아니, 음.. 정 그러시다면 그럼, 전 제가 원하는 걸 알려드리겠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이 다 끝난 뒤에요.”
“정환아, 나야.”
꿈속에서 눈을 뜬 정환이는 자신의 꿈에 또 찾아온 형이 반가웠어. 며칠을 연달아 꿈에서 형을 만나니 마치, 어린 시절, 매일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시절의 감성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지.
“거래소에서 돈 찾았어?”
“응, 형, 100억이 아니라 150억이나 있던데? 도대체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번 거야..”
“그게 코인이라는 거야. 짜식, 그래도 넌 함부로 시작하지 마. 그거 잘못되면 골로가. 암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그중에서 60억을 은행 계좌로 옮겨놔.”
“아, 알았어. 혀.. 형 계좌로? 너무 엄청난 금액이라 내가 달 할 수 있을까.. 암튼 그리고?”
사실, 정민이도 정도령의 말대로만 할 뿐, 10억과 50억을 따로 준비하라는 말의 이유는 알지 못했어.
“일단, 그렇게 해봐. 그리고 난 오늘은 다른 볼 일이 있어서 이만 간다.”
“어, 형.. 형!”
정민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환이의 꿈에서 나왔어. 그리고 정도령이 말한 대로 철민 아저씨의 꿈을 찾기 시작했지. 그런데 정민이도 그 아저씨의 얼굴만 알 뿐 어디에 사는 지는 전혀 몰랐던거야.
‘어떻게 찾아간다..’
그런 생각에 잠기자마자 정도령의 목소리가 귀를 타고 들어왔어.
‘아빠의 꿈속에 철민이 아저씨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정민이는 최근 3년간 아빠의 집 역시 가본 적이 없었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어. 정민은 그동안 자신이 가족들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매일 깨닫는 중이었지.
‘정민님, 가장 최근에 아버지를 만났던 장소로 가서 눈을 감고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눈을 뜨시면 됩니다.’
정민은 정도령이 말하는 대로 일단 엄마 집의 거실 중앙으로 갔어. 거실이 가장 최근 아버지를 봤던 장소였거든. 두 눈을 감고 아버지를 떠올린 정민이는 과연 이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몇 초가 지났을까. 정민은 곧 두 눈을 뜨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어. 정민이 눈을 뜬 곳에서 아빠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