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 작전의 서막
“안녕하세요? 저는 정철령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정도령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제 사촌 여동생이 정환이와 친한 학교 친구예요. 저도 걔 덕분에 정환이를 알게되었구요. 뭐.. 그 외 다른 상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계시죠?”
아빠와 철민 아저씨는 정환이의 휴대폰 화면 너머로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령을 보며 처음에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어. 혹시나 이 모든 게 귀신이 홀려서 그런가 싶기도 했고, 저 무당이라는 정도령이 사기꾼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거야.
“아빠, 제 친구 사촌 오빠예요. 알고 보니 최근에 유명해진 무당이시고, 정민이 형이랑도 연결해줬어요. 믿어도 돼요.”
아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찜찜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지. 그래서 철민 아저씨와 잠깐 뒤로 가서는 둘이서 귓속말로 얘기를 주고받았어.
“철민아, 이거 믿어도 될까? 이렇게 큰돈을 저 무당이 하는 말대로 하는 게 맞는 걸까?”
“나도 첨엔 찜찜했는데 저 무당 분이 알려준 정보가 꽤나 디테일하고 또, 정확해”
그도 그럴만한 게 청류동의 민간 전환 정보도 그렇고 정확하게 50여 채를 사야 한다고 알려준 게 바로 정도령이었던 데다, 이 넷의 꿈에 모두 나타나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정민이가 있었다는 게 이 상황들을 믿고 가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전 50억 구경은커녕, 1원 한 푼도 만져보지 않을 테니까요. 대신 제 말대로 만 꼭 하세요. 첫째, 정환이에게 30억 원을 받아서 임대주택사업자를 가지고 있는 철민 아저씨가 청류동의 주택 50채를 당장 매수하세요. 아직 민간 전환 발표 전이라 시세가 많이 오르지 않아서 30억 원 정도면 50채는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조만간 시세가 오르면 50억 원은 훨씬 넘어갈 겁니다. 그리고 명의는 일단 철민 아저씨로 하셔야 합니다.”
정도령이 마치, 방금 전에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앞으로 이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술술 읊자 방안은 스피커 폰을 통해서 넘어오는 정도령의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게 모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
“둘째, 정민이 아버지는 나머지 20억 원을 정환이에게 받아서 대출업자 행세를 하세요. 지금 사기꾼 녀석은 돈이 급해요. 보니까 20억 원 정도가 있는데 그 마저도 5억 원은 부동산이라 현금은 15억 원 정도 있을 거예요. 20억 원 전부 대출해주시고 이자 5~10% 중에 맘대로 정하세요. 어차피 의미 없으니.”
정민이 아빠와 철민 아저씨는 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생각에 약간 긴장을 했는지 마른침을 꿀꺽하고 삼켰어. 50억 원이나 되는 큰돈이 오가는 데다 잘못했다가는 일이 틀어질 수도 있어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지.
‘카톡’
곧 정민이 아빠의 폰으로 메시지가 왔어. 대출 업자 인척 하며 미리 대출 관련 작업을 한 정도령의 핸드폰으로 온 대출 문의 내용을 정민이 아빠에게 보내줬던 거야. 사기꾼들이 미끼를 물기 시작한 거지. 입질이 시작된 거야.
“명심하세요. 최대 20억 원입니다. 그리고 돈은 모두 현재 집주인에게 직접 미리 송금하고 매매 계약서와 건축물대장 등 서류만 건네줄 겁니다. 물론, 위조된 서류죠. 사문서 위조이긴 한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서류는 철민 아저씨가 좀 준비해주세요. 사기꾼만 속일 수 있으면 됩니다.”
다음 날, 철민 아저씨는 당장 청류동으로 갔어. 전문 공인 중개사인 다른 친구를 대동해서 청류동의 물건을 확인하러 간 거지. 과연, 청류동에는 최근 발생한 매도 매물이 딱 50개가 쌓여있었어. 필지가 모두 붙어있는 건이라 관리하기에도 용이해 보였지.
“사장님, 이거 아직 왜 이렇게 싸죠? 누가 이렇게 계약을 포기했어요?”
“아유, 말도 마요. 지난달에 공공 전환 얘기 돌고 임사 사장님 두 분이 내놨는데 한 달째 그대로인 거죠. 그래서 가격도 깎았어요. 원래 40억 원까지 올랐는데 지금 딱 30억에 묶어서 내놓은 거죠. 뭐, 따로따로 분리도 가능은 한데 필지가 다 붙어있고 작아서. 허허.”
“이 분들은 원래 얼마에 사셨었나요?"
"한 27억 원에 샀나? 그래도 이득 보는 거죠. 나중에 어찌 될지 몰라서 그냥 갖고 있으라 했는데도 안 한데요. 뭐, 마음이 바뀌어서 빌딩에 투자한다나요.”
“이거 제가 사겠습니다. 30억 원이죠? 얼른 집주인들 연결시켜주시죠.”
순간, 부동산 중개업자의 눈은 똥그래졌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
“아, 네, 제가 전국적으로 원룸 사업을 좀 하는데요. 좋은 땅이 나와서 좀 사려는데 돈이 없네요.”
대출 문의 관련으로 통화를 하는 정민이 아빠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삭이며 대답하고 있었어. 수화기 너머에 정선이의 전세금을 떼먹고 달아난 사기꾼이 있는데, 그 자식과 하하호호 대화를 하려니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하지만 지난밤, 정민이가 꿈속에서 재차 경고하고 감정을 컨트롤하라고 알려준 데다,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정도령을 믿고 가기로 했던 터라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잘 대화를 이어나갔어.
“한 발 늦으셨네요. 지금 청류동인가 난리 나서 요즘 대출 문의가 끊이지 않습니다. 오늘 오전에 벌써 20억 원 대출 나갔고요. 지금 상담 중인 분이 세 분인데 이분들 다 합하면 약 30억 원이거든요. 아 그럼 몇억 없는데..”
정민이 아빠가 정도령과 함께 합을 맞춘 대로 말을 하자 수화기 건너편에서 조금 다급해진 목소리가 넘어왔어.
“아니, 청류동은 거기 공공인데 누가 거기를 사려고.. 아니, 아저씨, 사장님, 제가 지금 급해서 그래요. 이자 저 할인 안 해줘도 되니까 10% 다 드릴 테니까.”
“잠시만요. 아까 그분이 전화가 왔네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뚜- 뚜-“
정민이 아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고, 재철과 은수는 점점 더 조급해지기 시작했어. 둘은 이미 1, 2 금융권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모두 받은 상황이었고 다른 방법이 없었거든.
“은수야, 너도 전화해봐. 요즘 대출도 다 막히고 이율은 거의 40%에 육박해서 이런 호구를 빨리 잡아야 해. 너랑 나랑 15억 원씩만 대출하자.”
재철과 은수는 정도령과 정민이 아빠의 전화번호로 끊임없이 문자, 전화를 해댔어. 하지만 정민이 아빠는 점심을 먹는 내내 한 번도 답신을 하지 않았지.
‘안달 좀 나봐라. 사기꾼 새끼들.’
곧 정도령에게서 메시지가 왔어.
“정민 아버지, 녀석들에게 기밀 정보라며 청류동 민간 전환 링크를 또 보냈으니 곧바로 연락 올 겁니다. 그럼 기존 대출 계약자 파기 건에 대한 수수료를 얘기하고 우선 10억만 가능하다고 하세요. 그리고 내일쯤 나머지 10억 도 가능하다고 하면 될 겁니다.”
그리고 철민 아저씨는 부동산 중개업자 친구인 동수와 함께 사기꾼인 재철과 은수를 대상으로 청류동 매물 건에 대한 매매 작업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어.
“네, 맞습니다. 지금 이거 공공인데도 그 사람이 굳이 빨리 진행해달라고 해서 가계약도 걸었어요. 이거 깨면 배액 배상해야 해요. 그럼 이게 다 얼마야. 가계약금으로 1억 주고 가셨는데 2억을 뱉어야 한다니까요.”
철민 아저씨가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구구절절 설명을 하자 재철이 동수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끼어들었어.
“아, 진짜 그깟 2억 내가 낼게요. 땅장사하는데 그 정도 수수료야 나중에 몇 배로 돌려받을 텐데.”
“안되는데.. 참, 왜 공공 개발에 다들 이렇게 돈을 쓰려고 하시지. 그럼 제가 그분께 물어볼..”
“사장님, 하, 참 장사 하루 이틀 하시나 제가 수수료 말고 3천만 원 더 수고비로 챙겨드릴 테니까 무조건 당사자한테 말해서 계약 파기하시고 연락 주세요.”
동수가 눈이 똥그래져서 철민 아저씨를 바라보았어. 철민 아저씨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
“그.. 그럼 제가 곧 연락을..”
“무조건입니다. 처리하고 연락 주세요. 뚜- 뚜-“
전화를 끊자마자 철민 아저씨와 동수는 하이파이브를 했어. 그리고 곧 정도령이 재철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하고 답을 보냈어.
“박재철 고객님, 금일 문의하신 20억 원 중 10억 대출 지금 바로 가능합니다. 단, 기존 건 계약 파기에 대한 수수료로 1천만 원이 발생할 예정입니다.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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