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억만장자의 죽음 15화

몰아붙여, 정신 못 차리게!

by Rooney Kim


정선이는 며칠째 도통 잠을 자질 못했어. 그야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한 상황이었지. 엄마에게 말할까 했지만 그동안 알바하며 모은 돈 1천만 원, 졸업 후엔 겨우 들어간 직장에서 5년간 일하며 모은 돈 4천만 원, 총 5천만 원에 전세 대출로 1억 5천만 원을 빌려 마련한 전세금이 하루아침에 날아가버렸다는 걸 아신다면 아마 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병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거든.

‘맞아, 이건 스스로 해결해야 해. 정선아, 너 어른이야. 내년이면 서른이라고.. 하아, 답답해 디지시겠네..’

‘까톡, 까톡, 까토톡’

갑자기 울린 메시지 알림에 자리에서 일어난 정선을 휴대폰의 시간을 보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어. 자정이 다되어가는 시간에 모르는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그것도 여러 개가 오다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안녕하세요? 밤늦게 죄송합니다. 저기, 레드 로즈 빌라 세입자 맞으시죠? 지금 사기 맞은 세입자들과 힘을 합쳐서 전세 사기범을 잡아보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정선이는 얼마 전에 빌라에서 만났던 이중 전세 사기 입주민이 떠올랐어. 당시에는 둘 다 너무 벙쪄서 제대로 얘기도 나누지 못하고 집으로 왔던 터라 집단 소송 및 추적은 생각도 못했었거든.

‘그런데 붙잡는다고 한들 받아낼 수 있을까?’


정민은 누나의 방구석에서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있는 누나를 골똘히 지켜보고 있었어. 고등학생 시절, 대학생이었던 누나가 매달 알바를 하면서도 용돈 한 번 주지 않고 가끔 밥을 산 게 전부라 정 없는 누나라며 놀리고 나름 원망했던 철없던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던 거야. 이후, 누나가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가끔 비싼 밥도 사주고 또 아주 가끔은 옷을 사주기도 했었지만, 유난히 돈을 안 쓰고 악착같이 모으던 게 생각이 났지. 그땐 누나가 왜 그리 돈에 집착하는지 좀 이상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이해가 갔어.

‘졸업하자마자 학자금 대출을 1년 만에 다 갚고 또 수 년을 일해서 5천만 원을 모아서 전셋집까지. 엄마, 아빠에게 손 안 벌리고 독립하려고 그랬구나. 난, 그래도 우리가 서울에 30평대 집도 있고 그래서 여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정말 철이 없었네. 누나도 정환이도 엄마도 아빠도 모두 가족을 위해 고민하고 희생하고 각자의 상처를 떠안는 동안 난.. 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구나. 이왕 죽은 거 어쩔 수 없으니 코인들을 현금화해서 가족들에게.. 어, 누나, 어디 나가는 거야??’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정선이는 갑자기 옷을 챙겨 입고 가방을 메고서는 집 밖으로 나갔어. 물론, 엄마와 정환이에게는 말도 하지 않았지.

‘지금 정도령이랑 다 같이 작업 중이라서 조금만 지나면 사기꾼 놈을 혼내주고 돈도 다 받을 수 있는데. 설마, 허튼 일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극단적이라거나 그런..’

사실, 정도령이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엄마와 누나에게는 절대 자신들의 작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말라고 했어. 그래서 정민이도 누나의 꿈에 들어갈지 말지 매일 고민했던거야. 아무리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해도. 지금 당장 누나가 잘못된 결정을 하면 안 되는 거니까 말이야.


‘따르릉르르르르르릉-‘

아침이 되자마자 동수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어. 바로 사기꾼 놈들인 재철과 은수였지.

“여보세요. 하암-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하지만 재철은 남의 상황이나 때와 장소는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자기 얘기만 했어.

“사장님, 이래 오래 잠을 자서 어디 돈은 벌겠습니까? 그나저나 물건은 해결됐나요? 오늘 사인하면 됩니까?”

매우 공격적인 재철의 태도에 동수는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친구인 철민이의 부탁도 있었고 이 건만 잘 해결되면 한몫 챙겨준다고 약속도 했기에 이런 사소한 감정에 휩싸여 큰 일을 그르치면 않기 위해 최대한 톤을 낮추고 차분하게 대답했어.

“아, 그게 지금 가계약자가 배액 배상 정도로는 안된다고해서요. 아이참, 난감하네요. 계약서에는 배액만 하면 되도록 했는데 자기도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거기가 민간이 될 곳이라서 절대 파기 못한다고 난리네요. 나참, 거기 공공 확정이거든요. 저도 소식통이 있는데 민간은 아니라고 하던데.. 왜 이러는 건지. 어쩌죠..”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재철과 은수가 몹시 흥분하는 소리가 들렸어. 한쪽은 세배를 줘서라도 받자고 하고 있었고 또 다른 쪽은 그건 아니니까 다른 땅을 알아보자는 소리도 들렸지.

“사장님, 그럼 얼마면 되죠? 2억 아니면 한 장 더 보태서 3억에 해주세요. 저희가 돈은 빨리 마련해서 오늘, 내일 안으로 다 보낼 거거든요. 집주인한테 계약금, 중도금 해서 20억 먼저 보낸다고 알려주세요. 잔금은 1주 안으로 치를게요.”

“아, 참, 안된다고 하던데.. 암튼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가계약자를 잘 설득해볼게요. 아 근데 거기 진짜 민간이 되는 건가? 갑자기 문의 전화가 엄청 오네요. 희한하네 진짜.”

동수가 전화를 끊기 전 한마디를 더 거들자. 재철은 더 흥분해서 지금 동수의 계좌로 3억을 보낼 테니 무조건 해결하고 전화를 달라고 하고는 끊었어. 그리고 재철은 당장 계좌번호를 보내라고 했고 동수가 철민의 계좌번호를 보낸 지 채 십 분이 지나지 않아 3억이 입금되었어. 깜짝 놀란 동수가 철민이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철민은 한술 더 떠서, 지금 수고비 3천만 원을 당장 보내주면 계약서를 써서 보내겠다라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라고 했지. 5분 뒤, 철민의 계좌로 3천만 원이 추가로 입금되었고 철민은 이 모든 사실을 정도령에게 전달했어.


“재철 씨, 박재철 씨?”

“여보 쇼, 아 대출? 네, 수수료 내고 진행할게요. 내가 땅 먼저 해결하느라 답이 늦었네. 참나, 하하.”

“네,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우선 10억만 가능한데요. 보자, 저희가 주금공에서 하는 방식과 똑같아서요. 현재 소유자에게 바로 입금해드릴 거거든요. 계약은 하셨나요? 오전 내로 해결안 되면 지금 차순위 대출자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재철은 마음이 더 조급해져서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이 느껴졌어.

“물론이죠. 가계약했고요. 어, 그래서 그럼 오전 내로 내가 집주인 계좌로 돈 보내드릴 테니까 보내시기 전에 저한테 대출 서류 먼저 문자로 주시고 보내주세요. 계약금은 대략.. 중도금까지 해서 한 번에 20억은 될 텐데 제가 10억 보낼 거니까, 내일 10억을 집주인한테 보내주세요. 보내기 전에 연락 한 번 주시고요.”

재철은 전화를 끊자마자 은수를 재촉했어. 이번 기회가 하늘이 준 기회처럼 느껴진 거야. 부동산업자, 대출업자, 집주인까지 뭔가 맹한 구석이 있는데 또 그래서 원하는 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여긴 거지.

“은수야, 빨리 부동산에 전화해봐. 얼른 계약하자고 해. 우리 중도금까지 보내야 확실하게 이거 우리 걸로 만든다. 알겠냐?”


정도령은 전화를 끊고 정민이 아빠에게 연락했어.

“정민이 아버님, 정환이한테 아버님 계좌로 10억을 보내라고 해주세요. 슬슬 마무리하시죠.”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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