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억만장자의 죽음 16화

업자는 제대로 몰아붙여야 제 맛

by Rooney Kim


‘까톡’

‘리트리브 개인신용대출 박재철 (10억 원) 대출 지급 완료. 추가 문의 070-xxx-xxxx’

재철은 정도령으로부터 온 문자를 보자마자 심장이 쿵쾅대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이미 이성을 잃은 듯 두 눈을 동그랗고 뜨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지. 매번 수억에서 십억 대의 사기만 치다가 이번에는 제대로 합법적인 부동산 투자로 곧 100억 원대의 자산가가 될 수 도 있다는 희망에 거의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던 거야.
“은수야, 빨리 부동산에 전화해봐. 계약금으로 20억 들어갔고 곧 10억은 구할 테니까 언능 계약서 만들어서 달라고 해. 그리고 잔금 치르고 계약 마무리하는 대로 건축물대장, 등기부등본 다 확인하고. 그거야 뭐 기본이니까.”

“재철아.. 근데 이거 너무 순식간에 처리하는 거 아냐? 니가 아무리 촉이 좋다고 해도.. 청류동 진짜 민간 되는 거 맞아? 그리고..”

은수가 조금 걱정되는 표정으로 재철을 바라보며 말했어. 솔직히 은수는 재철이 만큼 통이 크지도 깡이 좋지도 않은 데다. 이런 대규모 부동산 투자는 처음이었거든.”

“하, 이 새끼, 야. 니가 그래서 부자가 못되는거야. 꼴랑 코인 투자로 한 달에 얼마 번다고? 1~2천? 야, 그걸로 언제 돈 모아서 집 사고 빌딩 살래? 인생 짧아, 젊어서 벌어야 젊어서 누리지. 전세 사기 조금 친다고 내가 나쁜 놈 같아? 아니야, 나보다 악랄한 새끼들 차고 넘쳐. 나 정도면 정직한 거야. 그래 봐야 내가 지금껏 사기 친 거 20억 도 안돼 그리고 지금 이 투자는 합법적인 거잖아.”

하지만 은수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거둘 수 없었어. 재철이 친한 친구라 어느 정도 변죽을 맞춰주며 지내왔지만 이번 건은 너무 큰 건이라 감당이 안되었던 거야.

“너 혹시 쫄리냐? 내가 15억씩 대출하자고 해서? 야야, 됐어. 넌 그럼 그냥, 1억만 투자해, 아니다, 투자하지 마. 그냥 나 도와주기만 해. 지금 대출이랑 부동산 글고 땅주인 쪽 신경 쓰느라 내가 정신이 없거든. 오늘 내로 잔금 10억 도 빌려야 해. 그러니까 넌 부동산 쪽 맡아주고 나중에 서류들 좀 떼줘. 이거 잘되고 청류동 50채 땅값 100억 찍으면 내가 수고비로 1억 줄게.”

은수의 표정은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불안한 표정은 거둘 수 없었어.

“야, 모자라냐? 그래 친구니까 1억 5천 준다. 2억은 안돼. 내가 이렇게 피땀 흘려 투자해서 하는 건데. 야 100억 넘기면 1억 5천주고 그 아래면 1억 줄 게. 됐냐?”

그제야 은수는 표정이 조금 풀리는듯했어. 하지만 여전히 청류동에 대한 걱정은 가시지 않았지.

“그런데 청류동 말이야. 진짜 민간 되는 거야? 난 아무리 찾아봐도 아직 기사도 공시도 없어서..”

그러자 재철이가 재밌다는 듯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어. 은수는 여전히 도통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다는 눈치였지.

“야, 우리 업자들 문자 오고 대출 문자 오면서 ‘와, 이거 내 얘기네’ 했던 거 기억나?”

“아, 어어, 기억나지. 그때 좀 신기하긴 했잖아. 그런데 뭐 우연의 일치 아냐..?”

“내가 그날 밤, 기가 막힌 꿈을 꿨어. 혹시나 부정 탈까 봐 미리 말 못 했는데. 알려줄까? 낄낄”


지난주, 청류동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 재철은 로얄 샬루트 21년 산을 스트레이트로 한 잔 들이킨 후 잠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어. 굉장히 구미가 당기지만 당장 돈을 구하기도 힘들었던 데다 무엇보다 자신도 확신이 없었던 거야.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재철은 어느새 잠에 곯아떨어져버렸지.


“박재철 씨, 박재철 씨.”

재철은 누군가 자기를 깨우는 음성에 눈이 번쩍하고 떠졌어.

‘아씨, 이 야밤에 누구야..’

두 눈을 뜬 재철은 깜짝 놀라고 말았어. 분명 방 안에서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웬 낡은 주택과 빌라가 가득한 동네의 한 복판에 와 있는 거였지. 재철은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고 저 멀리 보이는 JM타워의 대략적인 위치를 보고 곧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어.

‘와 씨.. 청류동 재개발지역이네. 꿈인가. 꿈이겠지..?’

재철은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보았어. 분명 꿈은 맞을 텐데 꿈이라기엔 바닥의 질감과 현장의 공기가 너무나 현실적이었던 거야. 정민은 이런 재철의 모습을 조금 떨어진 오래된 2층 빌라의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지켜보고 있었어.


“아니, 정도령님, 그러니까 저보고 그 자식 꿈에 들어가서 청류동 지번을 알려주라고요?”

정민도 처음에는 정도령의 작전에 의문도 품은 게 사실이었어. 사기꾼 놈의 꿈속에 들어가는 것도 찜찜하기도 했지. 하지만, 이 모든 게 누나의 전셋집을 사기 친 녀석을 잡아 돈을 돌려받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던 거야.

“그런데 이런 메시지는 정도령 님이나 모시는 신들이 하셔도 되지 않나요? 하기 싫다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요.”

“정민님, 저희도 대왕 도깨.. 아니 정민님께 이런 부탁을 드리는 건 큰 실례인 걸 압니다. 하지만, 전 영매라서 일단, 남의 꿈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제 몸이 잡귀랑 섞일 우려가 있구요. 그럼 골치 아프거든요. 이건 신들이 지켜준다 해도 신들도 에너지를 써야 해서 좀 민폐라.. 그리고 신들은 함부로 남의 꿈에 들어갈 수 없어요. 이 세계에도 룰이 있답니다. 신들이 왜 진작 지구 밖으로 안 나가고 여기 있는데요.. 모두, 인간들의 영혼, 영혼을 계도하고 수양을 돕기 위해..”

정민은 또 정도령이 알아듣기 힘든 얘기를 오래 끌자 얼른 말을 끊고는 바로 자기가 하겠다며 수락했던 거야.


“박재철, 듣거라. 청류동 필지 22-1부터 38까지 총 50개 필지를 꼭 확보하도록. 여기는 곧 2021년 대한민국 재개발지역 중 가장 흥행하는 민간 개발지가 될 것이다.”

재철은 하늘에서인지 땅에서인지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어. 전날 밤, 자신이 그토록 고민했던 청류동을 그것도 정확한 필지 번호까지 들었으니 이제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었지. 아침 일찍 잠에서 깬 재철은 당장 부동산에 전화했어. 정말 꿈에서 들은 필지들이 부동산 광고 문자에서 말한 50개와 같은 곳인지 꼭 확인하고 싶었던 거야.

“네, 고객님, 아 문자보고 전화 주셨구나. 거기 필지 정보요? 어디 보자~ 잠시만요.”

이미 이런 상황을 정도령으로부터 전해 들은 동수는 재철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뜸을 좀 들였어.

“청류동 거기, 청류동 마을 도서관 버스정류장 뒤쪽 22-1번지부터 38번지까지고요. 총 50개고 또..”

“사장님, 사장님, 지금 당장 제가 계약할 거니까 다른 사람은 예약도 받지 마세요. 알겠죠? 딴 사람한테 넘기면 재미없습니다. 아니, 제가 수수료 후하게 쳐줄 테니까. 일단, 계약금 먼저 쏠 테니까. 땅주인들 계좌번호나 빨리 주쇼.”


재철의 이야기를 듣던 은수의 표정은 불과 10분 전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달라져있었어.

“재철아.. 나도 한 5억 정도만 투자할까?”

“짜식이, 너 돈 없다며? 왜 이제 좀 끌리냐? 낄낄. 그 정도 돈이 있으면서 왜 안 하냐?”

“야, 난 그래도 쫌 불안하고 무서웠지. 그런데 이 정도면 진짜 안 하면 바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하지만 재철은 이미 100억대의 자산가가 되는 게 당연하기라도 한 듯 거만하게 말했어.

“안돼, 내가 벌써 내 돈이랑 대출해서 20억을 넣었어. 지금 들어오면 양아치지. 내가 추가 대출 10억 받아서 넣을 거니까. 넌 이 판에서는 그냥 보조나 해라. 100억 넘으면 수고비 1억 5천 준다니까.”

그때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어.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부동산 업자 동수의 목소리는 심하게 흥분한 상태였지.

“사장님, 청류동 민간 확정이랍니다. 이거 아직 극소수만 아는 비밀인데요. 아참나.. 그런데 땅주인들도 그걸 어디서 들었는지 땅값 올랐으니까 계약을 다시 하자는데요. 아이참. 미치겠네.. 그래서, 지금 계약금 배액 배상도 가능하니까 싫으면 계약 해지도 하겠다고..”

그러자 이 얘기를 듣던 은수가 조용히 한마디 거들었어.

“재철아, 지금 배액 받으면 6억을 받는 거야.. 이거 가만히 앉아서 며칠 만에 3억을 버는 건..”

“조용히 해봐. 니가 그러니까 부자가 못된 거야. 이거 진짜 하늘이 준 내 인생 최대의 기회야. 좀 닥치고 있어 봐라.”

재철은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차분하게 물었어. 나름 몇 가지 변수를 이미 생각해둔 상태였지.

“그럼 얼마나 더 달라고 하시던가요? 그래도 수십억을 올리는 건 말도 안 되는데. 난 계약 해지할 생각 없고요. 그분들이 얼마나 더 불렀는지..”

“5억요. 하, 참나, 그분들도 배액은 부담스러워는 하는데 5억만 더 주면 원래대로 하겠데요. 자기네들이 투자하는 빌딩도 지대가 올라서 세금이랑 수수료 낼 돈이 없다나 어쩐다나..”

재철은 속으로 크게 안도했어. 혹시라도 10억 이상 올리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그리고 곧 은수에게 돌아보며 말했어.

“야, 은수야, 너도 하고 싶댔지. 5억으로 들어와라. 청류동 확정이란다. 같이 한 200억 원 가보자. 낄낄낄”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hope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젊은 억만장자의 죽음 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