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by Rooney Kim

수수께끼

언제 결혼할 것이냐는 자칫 무례할 수 있는 어른들의 질문이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당황은 곧 화로 변했다. 이건 아무래도 어린 시절 세배하고 용돈을 받던 버릇 때문일까. '언제 결혼한다고 하면 얼마를 해주실 건데요’와 같은 더 무례한 답변으로 그들의 알량한 안부에 철없이 응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젠 왠지 알 것 같다. 그들의 질문 역시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바탕으로 한 경험에 의한 것이고 그것 외에는 어떠한 교류나 정보가 없어 물어볼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는, 부모님의 걱정처럼 진지함 따위는 전혀 없는, 그저 귓가를 스치는 공기 같은 관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이젠 알아버렸다. ‘아직 괜찮은 상대가 없네요’라며 웃어넘기자 이내 ‘꼭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으레 당연해서 괜스레 미안해지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수년만에 만난 어른들과는 언제나 그랬듯이 밥 한 끼와 함께 헤어졌고 친척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내 가슴은 또다시 그를 떠올렸다.


좋은 사람. 그러고 보니 내게 ‘좋은 사람’이라는 단어는 ‘그’라는 고유명사를 불러오는 치트키다. 여전히 그의 장점들로 가득한 시간들, 함께 본 사계절의 풍경, 풍미가 가득했던 맛집은 내게 소중한 추억이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계속해서 그 시간을 음미했다. 헤어지고 보름 동안은 세상이 끝나버린 것처럼, 이제는 더 이상 내게 좋은 사람은 없을 것만 같았다. 이 정도 나이를 먹으니 이제 내 남은 생에 진실되고 순수한 만남의 티켓은 매진되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멍청한 절망에 절인 내 모습이 이젠 가슴에 박제된 진하게 벅차오르던 시절에 오버랩되었다. 그럼에도 괜스레 웃음이 나왔고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나아진 기분 덕분인지. 내 앞으로 갑자기 끼어든 앞차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게 좋은 사람은 여전히 그일까’ 집에 도착한 이후에도 온종일 그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지나간 추억과 고마웠던 기억은 여전히 나를 웃음 짓게 하지만, 이제는 내 곁에 없는 사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내게 좋은 사람일까.


내가 사랑했던 건 그 사람일까, 그 사람과의 시간일까. 온 마음이 구석구석 출처를 알 수 없는 에너지 덩어리로 가득 차 기쁨으로 충만했고 편안한 즐거움으로 넘쳤던 시간과 이 이상 타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불태운 욕망의 시간 중 난 어디에 더 마음이 끌리는 걸까. 순수한 나와 불순한 내가 경쟁하듯 맞붙은 갑작스러운 과거와의 조우는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과장되었고 나는 습관처럼 현실을 확대 해석했다.


우리는 왜 불편한 조각은 호수에 던져버리고 이해할 수 없는 페이지는 찢어버리지 않았을까. 내가 먼저 그 페이지를 찢어 버렸다면, 그가 먼저 그 조각을 던져버렸다면 우리는 더 오랫동안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친구가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한다. 좋은 직업과 좋은 습관과 가치관을 가졌다고 연신 내게 어필해댄다. 연애한 지 3년이 넘어간 친구는 내년쯤에 결혼을 한단다. 그렇게 비혼을 주장하던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결혼은 자아의 구속이라며 자유로운 영혼을 저버리는 친구와는 절교를 할 것이라며 방방 뛰던 그 모습이 드레스를 입고 신랑이 될 그분 옆에 꼭 안겨 웃고 있는 모습에 또 오버랩된다.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기 싫어서였을까. 비혼을 선언한 다른 친구는 소식이 뜸한 지 오래다. 나는 그 친구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비혼을 선언할 생각은 없다. 언제 누굴 만나고 헤어질지 모르는 게 인생인데 한낯 치기 어린 신념의 발설은 그저 어젯밤에 비워낸 배설에 비할바 못된다. 아무튼 갑자기 비혼을 선언한 그 친구가 보고 싶어 졌다. 비혼을 결심한 이유는 다양할 테니, 그것이 경제적인 이유든, 자기애에 달린 문제든, 가정사나 개인사로 인한 음영진 신념의 굴곡에 의한 것이든, 어쨌든 응원한다고 그를 거들었지만, 나도 그에게 그 어떤 도움을 주진 못했다. 이런 생각에 빠진 날 아는지 모르는지 비혼을 깨고 결혼을 준비하는 속없는 이 친구는 내게 자꾸만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난리다. 녀석의 이런 마음은 여유 덕분일까 원래 그 아이의 성향일까.


오래된 문자메시지와 카톡을 정리하다 보니 며칠 전 답장하지 않았던 그의 메시지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처 지우지 않았구나. 지우든 사라지게 두든 더 이상 아무런 의미는 없지만 며칠 전 혼란스러웠던 그 밤 나는 깨달았다. 오랜만에 떠오른 그 모습과 여전히 설레는 추억들이 며칠을 날 달뜨게 만들었던걸 보면 어쩌면 그 기억들은 평생토록 가슴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될 수 있겠다는 것. 역설적이게도 그 기억들로 가끔 행복해할 내 모습이 그려진다는 것. 그럼에도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아니,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이 나를 조금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별은 내 의지가 아니었더라도 이후의 선택은 나의 것이니 나는 더 이상 내 고통의 선택권을 타인에게 쥐어 주고 싶지 않게 되었다. 비록 이렇게 발악한 들 대부분 나의 감정의 주권은 여전히 타인에게 있겠지만,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공허한 신념을 또 다져본다.


성수에서 난생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다. 다시는 가지도 못할 것 같았던 성수를 두 번째 방문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문의 목적은 무려 새로운 이성과의 만남이다. 상냥한 말투, 따뜻하고 호기심 어린 눈빛은 그를 닮아있다. 한 가지 크게 다른 점은 이 사람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는 것. 만난 지 한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사람과 진지하게 만나게 된다면 내가 ‘그’와 함께했던 추억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들이 펼쳐지겠다는 그런 생각. 취향이 같아 낭랑한 분위기에 함께 퍼마시던 와인, 스포츠 시즌마다 치맥으로 방방 날 뛰었던 장면들, 술에 곯아떨어져 밤을 보내고 일어난 아침, 함께 해장하며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다짐한 그 끼니에 곁들인 술을 들이키며 깔깔대던 그런 시간들 말이다. 어쩌면 다행이지만, 어쩐지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사람과의 첫 만남은 편안하고 재밌었지만, 그 사람이 내뱉은 한마디 한마디와 재미난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에 격하게 반응해주는 리액션에 순간, 떠난 ‘그’가 떠올랐다면, 난 ‘그’를 만난 걸까 ‘그 사람’을 만난 걸까. 조금 우습고 무서운 생각이지만 난 어쩌면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한 게 아닐까.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연락을 한 적도 하고 싶은 적도 없었던 나였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며칠 전 술에 취해 그의 절제력을 무장해제시킨 건 결핍이었을까, 미련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술김에 치우친 감정이 떠돌다 닿은 허무를 만족시키고 싶었을까.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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