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게임

by Rooney Kim

미로 게임


그는 그렇게 떠났다. 세상의 모든 재물과 밤하늘의 모든 별을 따다주겠다며 숱하게 많은 밤을 안고 나뒹굴며 온갖 달콤한 것들이 발린 혀로 더러운 세상의 때가 묻은 나의 허물을 벗겨주던 그가 그렇게 만난 지 2년이 조금 넘어 봄이 채 오기도 전에 떠났다. 괜찮다고 했다. 나도 이 나이 먹고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저 아스라 져가는 청춘의 타 다남은 재를 붙잡듯 어쩌면 정제되지 않은 욕망의 접시를 채우느라 힘들이지 않고 따라주는 찰랑거리는 음료에 취해 어느 것이 나의 그릇인지 어디까지가 내게 허락된 무료의 시간인지 모른 채 무용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걸 ‘헤어지자’는 한마디에 겨우 깨달은 낡고 낡은 닳고 닳은 한 사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달콤함은 언제나 자극적이다. 무료의 달콤함에 중독된 육신은 어느새 정신을 지배한 체 전장을 배회한다. 삶은 고통으로 가득한 전쟁터지만, 무료로 제공되는 방탄조끼와 장갑차 그리고 끊임없이 지원되는 무제한의 아군 덕에 난 굳이 적군을 향한 제대로 된 총질 한 번 없이 전방을 향해 적진 앞으로 진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달콤함은 이내 물림으로 돌변하고, 한 번 돌변한 취향에 돌변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벗겨낸 깍지든, 그가 걷어낸 장막이든, 일방적인 물림은 무장해제와 일맥상통하기에 순식간에 수백의 총탄과 번쩍하고 내리꽂는 포탄 그리고 달아날 틈조차 주지 않는 융단 폭격에 홀로 남아 성한 구석이 하나 없게 된 몸뚱아리는 그제야 처절하게 쓰라린 현실을 마주하고 육신의 굴림으로 착각의 쾌락에 찌들었던 정신에게 피투성이의 손을 내밀며 화해를 요청했다.


과연 나는 어떤 쓸모를 가진 하나의 인간일까. 애매한 나이에 사랑마저 저버리고 나니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무료 구독이 의지와는 무관한 채 해지되어 눈앞에는 온통 먹구름 아래 쏟아져 내리는 총탄과 포탄만이 마음을 이리저리 뚫어 놓을 뿐이다. 이런 아수라장에 아군과 적군이 무슨 소용일까. 따끔하며 작열하는 고통과 함께 등을 파고든 총알은 나의 직언에 앙심을 품은 친구의 한 발, 저기 앞 빌딩 입구에 숨어 전방을 주시하는 아니꼬운 녀석이 돌연 쓰러진 건 내가 쏜 한 발. 삶의 전쟁에 피아식별은 개나 주라지. 아군을 향한 내부 총질도 서슴없이 이어진다. 왜냐건, 내가 곧 죽을 것 같기에.


한 때는 발랄한 꿈도 꾸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 나의 능력으로 세상 따위는 금방 바꿀 것이라는 오만, 남들에게는 없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자만. 우습게도 1월의 일출을 서른 번 정도 목격할 때쯤, 거짓말처럼 환상의 운무가 걷혔다.


영원히 젊을 것이라고 믿은 시절, 새까만 하늘이 새파랗게 질릴 정도로 술을 퍼마시며 비밀을 베개 삼아 의리를 이불 삼아 지새 온 셀 수 없이 무수한 날이 무색할 정도로 멀어진 친구들이 어느 날부터 어색한 인사와 함께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시지 창에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친구들의 꼭 참석해달라는 당부의 청첩으로 가득 찼지만, 그들의 전진을 무시한 채 자아의 섬에 표류하며 몇 해 더 평화를 외치다 보면, 어느덧 순백의 청첩은 굳이 궁금하지도, 딱히 귀엽지도 않은 아가들의 대문짝만 한 얼굴과 함께 달갑지 않은 그들의 첫 생일에 반드시 발걸음을 해주길 바라노라며 경제적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순박한 아이의 잔치 초대로 바뀌어있었다.


분명히 순수한 친구였다. 경제적 욕망이 불순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과거의 그 아이는 이 정도 요청을 할 정도면 적어도 나와 몇 번의 분식 타임을 가졌고 서너 번의 PC방 대전을 치렀으며 그마저도 부족한 듯 수줍은 떨림으로 생일 초대를 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식사도 없이 청첩과 잔치 초대를 했다는 사실에 삶이라는 전쟁터가 얼마나 빠르게 과정과 인사를 무시한 후안무치한 사람을 생산해내는지 알아버렸고 나의 마음은 그 생산 속도를 절대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보고 싶다는 메시지가 왔다. ‘뭐해?’라는 짧은 인사도 생략한 채. 문득 그 아이를 떠올려보니 분명히 술을 여러 잔 걸치고 내일은 잊은 채 잔뜩 취해있을 모습이 안 봐도 선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술을 마시면 언제나 내 어깨에 슬며시 기대 웅얼웅얼 마치 옹알이처럼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해대곤 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싶냐고 흔들어 깨우면 언제나처럼 번쩍 일어나 보고 싶었노라고 칭얼거렸다. 갑작스레 날아든 ‘보고 싶다’는 메시지는 이렇게 또, 삶과 싸우다 지쳐 소파에 묻혀 대중매체로 치료 중인 나의 야심한 시간을 가로질러 총탄처럼 날아와 아직 아물지 않은 딱지에 깊숙이 파고든다.


자다가도 보고파 깨어 울었던 십 수일의 밤, 일하다 문득 떠올라 멍하니 모니터를 보며 보낸 수 십의 시간, 맛집이 그리워 마음먹었다가도 감히 근처는 가지도 못했던 홍대와 성수동을 그리워한 두어 달을 온몸에 뚫린 상처와 재만 남은 가슴을 한 주먹, 두 주먹 쥐어보는 동안에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무료의 시간들을 기대하지도, 원치도 않았는데, 어째 저 아이는 이리도 쉽고 간편하게, 그때와 꼭 같은 그 습관을 버리지도 못한 채 메시지를 보내왔을까. 하긴, 이것 또한 나만의 관점일 뿐, 지난 두어 달은 내게만 상처로 가득한 억겁의 시간은 아니었겠지. 이 또한 부지불식간에 무시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나의 더러운 습관이니, 그저 그 아이에게도 지난 시간이 편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지레짐작할 뿐이다.


답장을 하지는 않았다. 이미 우리는 두어 번의 상처를 지냈다. 그 생채기가 세 번에 이르자 관계의 거리는 무한대를 바라보며 멀어졌다. 평생 함께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에 너무 서글퍼졌다. 저 아이와 함께하지 못함은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조각을 그가 갖고 있기 때문이고, 또, 도저히 그가 이해할 수 없는 페이지가 내게 있기 때문임에도 다시는 똑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어떤 날은 자지러질 듯이 가슴이 찢어져 소리없는 울음을 쏟아내기도 했다.


어쩌면 폭풍 같은 사랑은, 언젠가는 찾아올 이별 후 장마같은 상처를 홀로 지내야 하는 예매 티켓은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마저 들었다.


어느새 중단한 SNS에는 나의 새로운 피드가 사라진 지 수개월이 지났다. 아무렇지 않았다. 비로소 삶이 안정되는 것 같았으니까. 다시는 가지 못할 것 같았던 홍대역을 가로질러 새로운 카페를 찾아냈다. 성수에서 만나자는 친구의 말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삶은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전투의 베테랑이 될수록 전장은 만만해지게 마련인가 보다. 서른 번의 새해가 떴고 몇 개의 훈장을 땄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급을 한 모양이다. 연인의 무료 구독은 일방 통행이 아니니 어쩌면 다음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엄청난 무료의 혜택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가벼운 생각마저 머리에 일렁이는 걸 보니 이제야 내 가슴속 겨울이 끝나가나 보다. 어쩌면 이번 주말 친구와 만날 성수에서 화사한 봄 옷을 살지도 모르겠다.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viol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