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시 이맘때 쯤 암울하게 어린 짙은 서정이 내면을 내리누르면 이를 벗어나기 위해 흑색 현실의 커튼을 확 걷어 젖히고 희뿌연 파스텔톤 찬란했던 과거로의 여정에 냅다 몸을 실어 버린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그렇듯 과거의 회상은 대부분 좋은 기억으로 가득하게 마련이니까. 나빴던 기억은 어느새 잿빛으로 변해 아스라지고 오직 즐거웠던 기억만 가슴 깊은 곳 지하 7층 낡은 복도를 돌아 나온 어느 방 낡은 서랍에 보관되어있기에. 한없이 어린 시절이라고 여겼던 그때도 돌이켜보면 마치 모든 책임과 권리에 자신 있는 냥 가진 것과 이룬 게 없음에도 과한 자신감과 끝없이 솟아나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은 애도 어른도 아닌, 그냥 이도 저도 아닌 몸만 큰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필름을 뒤로 감다 보니 스물이니 어른이라며 숱하게 많은 밤을 왁자지껄 난장판으로 술판을 벌이던 십여 년 전이 떠올랐다. 그땐 불과 일이 년 전 고등학생의 신분에서 기껏 한 두 해 차이로 성인이 되었다니 신나기도 했지만 내심 어이없기도 했다. 친구들만 봐도 그랬다. 정규는 여전히 게임방 고정석에서 찌든 밤을 새고 있었고, 주혜는 일주일에 구 할은 대낮부터 술독에 담겨 제정신을 본 게 언제인지 알 수 없었던 날들이었으니까. 우리가 바라본 성인은, 우리가 생각한 어른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십 대의 폭발할듯한 혈기와 이십 대가 승인해준 성인이라는 프리패스는 술 담배는 물론, 이성과의 자유로운 연애에도 부모님의 눈치를 덜 보게 되고, 친구 방에서 자고 올 것이라는 한 마디로 해결되는 무수히 많은 해방된 밤은 이제 막 문턱을 넘은 연애의 밭에 쉼 없이 물을 뿌려대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이에 반해 지나치게 낮은 책임감은 우스꽝스러운 결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연일 벌어진 술판 끝에 난 싸움은 결국 현실의 곤장을 두들겨 맞으며 자가 금융 치료로 이성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가 하면, 부모 찬스에 기대어 나약한 낯짝을 드러내며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말이야 쉽지 연애는 어디 쉬울까. 덜컥 들어선 아이에 벌벌 떨다 헤어지거나 아이를 지우던 몇몇 녀석들의 얼음장처럼 변한 창백한 낯빛이 여전히 눈가에 스친다. 상황이 이러한데,
불장난의 책임은 라이터를 켠 녀석의 것인지 태울 종이를 가져온 녀석의 것인지 따지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십여 년 전 새내기 시절 만난 그 아이는 너무나 과감했다. 이성과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십 수 년이 넘도록 부대껴 칙칙하게 변색되다 못해 검푸른 동성들과의 우정의 진흙탕에서만 뒹굴다 파스텔톤 분홍으로 물든 카펫 위에 민트로 채색된 벽지를 입힌 태양이 쏟아질 듯 높고 뻥 뚫린 유리 천장을 가진 홀을 발견한 후 새롭고 자극적인 세상에 두 눈이 번쩍 뜨이고 말았다. 다른 온도, 다른 체취, 다른 옷차림. 그 아이는 나와 모든 것이 달랐다. 새로움은 언제나 신선한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그 아이와의 시간은 언제나 짜릿한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했는데 이는 마치 고요한 봄바람과 꽃잎으로 무장한 매서운 태풍 속에 사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그런 긴장감이 마냥 좋았다. 그저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좋았고 함께 공원을 거닐어도 즐거웠다. 그토록 오랫동안 친구들과 나누었던 시간에겐 미안하지만 그 아이와 보낸 짧디 짧은 시간의 영향력은 이전 친구들과의 시간과는 비할바가 못될 정도로 커져버렸다. 문 앞에서 저녁 인사와 함께 헤어져도 곧바로 휴대폰을 들고 전화와 메시지를 하는 건 물론,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다고 외치면 그보다 더 큰 울림이 이 산 저 산의 골짜기를 굽이쳐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할 수 있을까.
한동안은 마치 레몬즙이 가든한 청에 담긴 알맹이처럼 새콤함과 달콤함에 절어 살았다. 주말에 만나자는 약속도 평일에 밥이라도 먹자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난 오로지 그 아이만 만났다. 다행인 건 그 아이도 나에게 그의 사소한 시간마저도 탈탈 털어주었다. 그땐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턱없이 모자란 용돈엔 알바를 해서라도 데이트 비용을 충당했다. 이 세상에 우리 둘 외에는 아무도 없는 듯 특별한 의미가 주어지지 않은 NPC인 양. 판타지 세상 속 주인공은 우리니까 다른 이들은 그냥 우리의 눈치나 보길 바랐다. 그 아이를 만난 이후 나의 모든 시간은 이제 모두 그 아이의 것이었다. 자다가도 새벽에 깨면 폰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했고 메시지가 오면 늦을세라 답을 해줬으며 혹시라도 그 아이의 답변이 늦으면 불안에 떨며 강의나 친구들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렇게 적당한 책임 안에서 가능했던 달콤한 시간들은 오래도록 평화롭게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는 나와 함께 저 멀리 오름의 붉은 선을 넘어가자고 했다. 우리는 성인이니까 혹여나 책임질 일이 생겨도 책임지면 그만이니 두려울 것이 없다며. 그 아이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내 안엔 나도 몰랐던 두려움이 있었나 보다. 미지의 세계에나 존재했던 붉은 선의 언급과 함께 그 아이 앞에서 난 처음으로 머뭇거렸다. 그 머뭇거림은 이내 나의 첫 거절이 되었다. 두려웠다. 그 선을 넘는다는 건 적어도 내게 있어 그동안 간직했던 순수한 마음의 종말과 같았기에. 세상의 모든 거짓과 더러움을 배워도 순수함을 잃고 싶지는 않았던 내게 그 당시 그 선을 넘는 건 아직은 좀 이른 나의 순수함에 대한 배신을 의미했다. 우습지 않나. 한 번 넘으면 수도 없이 넘나들어 온통 나의 발자국으로 가득해 지워져 그게 붉은색이었는지 푸른색이었는지도 모를 가상의 선에 불과할텐데 그때의 내게 순수함의 의미는 아마도 그 선을 지켜 선너머 오름 이후 가장자리에 있을지도 모를 깎아지른 절벽이나 깊은 저수지를 피하고 싶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보 같지만 우리는 그렇게 멀어져 갔다.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는 풋연애는 서로에 대한 진심과는 달리 티끌만 한 오해로 인한 변심, 또 그로 인한 손톱만 한 생채기 앞에 꺼져가는 불꽃처럼 급속도로 빠르게 시들어갔다. 영원히 멈추지 않고 달릴 것만 같았던 우리의 여정은 그렇게 사소한 이유로 인해 끝나버렸고 그와 동시에 비로소 내 주변의 NPC들은 다시 자신의 영향력과 역할을 가진 주요 인물들로 변모했다.
얼마 안 가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녀석들은 나를 마치 십 수년이 지나 만난 것처럼 반기며 인정사정없이 욕해줬다. 그렇게 넘치는 자신감과 어리석은 시야로 세상에 한 대 걷어 차인 나는 비로소 식견이란 게 조금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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