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코드 B2B SaaS 마케터의 회고, 다짐 그리고 여정 1
뭐가 제일 중요할까? 뭐가 제일 가치 있을까?
회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한데 엉켜 일을 해내는 곳이다. 여기서 효율에 대한 정의를 내리자면, 대표에게는 ‘매출, 절약, 성장, 투자 성공, 확장’이겠고, 직원에게는 ‘성과 증대, 연봉 상승, 삶과 업무의 비율’ 정도가 될 수 있다. 즉,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 목표, 업무 방식, 우선순위, 감정, 컨디션 등등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서로가 균형을 맞추며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곳이 회사다.
이 사람들에게는 경험, 경력, 시간을 통해 익혀온 기술과 이를 바탕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업무를 해낸 습관이 있다. 여기서 습관이라는 건 요컨대, 회사에서 일을 할 때, 내가 쓰는 ‘브라우저와 모니터의 크기, 대수’ 그리고 주로 이용하는 ‘업무용 생산 관리 툴들’, 더 나아가 개발자들이라면 자신이 익숙한 ‘개발 언어, DB, 아키텍처 등’이다.
직장인들에게 그리고 개발자들에게 이 습관은 '안정과 평화 그리고 번영'을 상징한다. 수년 또는 십수 년 이상 내가 싸워 쟁취하고 나를 먹여 살린 건 팔 할이 자신의 습관들이었고, 앞으로 수십 년간 나를 발전시키고 나의 삶을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역시 ‘사회 속 나의 습관’들이다.
이들에게 이 습관들은 영원할 것 같다. 아니, 영원해야 한다. 이 습관들 덕분에 지금 나의 사회적인 위치를 유지할 수 있고, 연봉을 받을 수 있으며, 앞으로의 승진도 가능하다. 이를 내 삶으로 환원해 다시 말해보자면, 이 습관들 덕분에 내가 집을 구했고, 결혼도 했으며, 자녀들도 낳아 큰 문제없이 양육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이 습관은 나의 생존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의 안녕과 평화와도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습관은 매우 예민하고 결정적이기에 타의에 의해 침해받거나 무시당하거나 위협을 받는다면 그들 역시 가차 없이 반격하거나 전복시킬 수 있다.
이렇게나 중요한 그들의 습관에 서서히 변화의 밀물이 젖어들고 있다.
사실, 불편할 것이다. 그저 노코드라는 단어만으로도 이미 개발자들에게 ‘내 삶의 경력, 내 기술의 정수’가 부정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처음에는 마치 생존권에 위협을 가하는 요상하지만 스킬 뎁스는 낮은 형편없는 괴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고 노코드라는 단어 자체가 익숙해진 지금, 그들의 생존에 큰 위협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용할 이유는 물론, 십수 년간 쌓아온 나의 이력과 기술을 굳이 반납하고 ‘새롭지만 어색한 코딩이 필요 없는 기술’을 익힌다는 건 영 불편하고 귀찮을 것이다.
그렇게 노코드와 친해지지 않고 자신의 습관을 유지하던 사이에 ChatGPT가 인류의 세상살이 패러다임에 큰 충격파를 던지면 탄생했다. AI는 이미 30년도 전부터 익숙한 단어였지만 자신의 일과 삶에 적극적인 영향을 끼치며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공포와 환호’를 동시에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AI기술은 개발자는 물론, 비개발자들까지 흥분시켰고 덕분에 노코드라는 키워드를 마이너에서 끄집어 올려 하드캐리했는데, 덕분에 ‘개발 세상’에 유입된 햇병아리 비개발자들의 가슴은 더 큰 꿈으로 부풀었다.
AI까지 상용화되고 나니 비개발자들은 노코드로 프론트엔드와 백엔드까지 개발해 버릴 기세다. 그리고 실제 사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적어도 두 달은 공부해야 하는 서버와 데이터베이스를, 적어도 네 달은 학습하고 실습해야 하는 백엔드 언어를, 그냥 한 시간짜리 노코드 강의를 듣고, 짧게는 하루, 비개발자도 2~3일 만에 백엔드라는 걸 만드는 걸 보고 있자면 아마도 우습기도 하고 기가 찰 수 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걸로 뭘 얼마나 할 수 있는데? 유지보수는? 확장성은? 대규모 연동은 할 줄 알아?’라고 생각했다면 차라리 낫다. 그건 노코드로도 이미 다하고 있는 중이니까.
사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아군이자 적군은 ‘나의 습관’이라는 것.
‘타성에 젖어 발전이 없는 거 아냐?’라는 질문에도 코웃음 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비난보다는 내 삶의 안정과 평화가 더 중요하니까. 오래되어 묵은 나의 습관은 ‘변화’의 물살을 그저 흘려 넘길 작은 트렌드 줄기 중 하나로 간주하고, 나의 습관은 나를 평생 먹여 살릴 것이라는 편향된 믿음이 되어, 이 습관을 유지하고 지켜야만 한다는 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집중 방어에 나선다.
처음에는 변화가 무섭다. 하지만 공포도 익숙해지고 알고 나면 이젠 귀찮아진다. 맞다. ‘귀찮음’과 ‘굳이?’라는 내 삶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마음이 제일 큰 허들이다. 알고 보면 사람들의 업무 시간을 줄여주고, 성과를 더 높여주고, 남는 시간에 개인의 삶을 누리거나 개발 자체에 더 시간을 쏟을 수 도 있지만, ‘굳이 내가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을 다 포기하고 그걸 해야 해?’라는 마지막 난관 앞에서 항상 모든 선의와 제안을 뿌리친다.
이런 면에서 노코드는 좀 억울하다. 왜냐하면 노코드는 모든 걸 포기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그들이 살아가던 방식, 일하던 스킬을 버리지 않고 유지하며 활용하면서 노코드까지 곁들여 ‘성과도 높이고, 시간도 아끼고, 비용까지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아직까지 눈길도 주지 않는 그들의 냉가슴에 노코드는 오늘도 속이 상한다.
오히려 이런 면에서 개발은 하나도 모르는 비개발자나, 이제 막 개발을 배우는 중인 초급 개발자들은 노코드가 반갑고 편하다. 그들은 잃은 것도 없고, 오히려 노코드 덕분에 ‘서비스’라는 것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따라서 어쩌면 노코드는 ‘기성의 거인들’에게 외면받는 동안, ‘초심의 어린아이’들에게 더 강력한 무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나, 꼭 알리고 싶은 게 있다면, 노코드는 개발자와 비개발자를 갈라놓는 훼방꾼도 아니고,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난봉꾼도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코드는 당신의 옆에서 방긋 웃고 있다. 십수 년 전, 꼬꼬마 개발자 시절, 호기롭게 선택했던 고난도 레벨의 언어들처럼 까다롭게 굴거나, 고통을 주거나, 놀리거나, 당신을 울리지도 않는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일 필요도 없다. 그저 당신의 곁에서 두 눈을 깜빡이며 뭐 도와줄 게 없는지, 얼른 일을 끝내고 당신에게 여유로운 시간을 주고 싶어 발을 동동거리며 안달 나 있을 뿐이다.
이렇든 저렇든 노코드는 계속 발전할 것이다. 아, 개발 언어 또한 계속 발전할 것이다. 노코드의 등장이 개발의 쇠퇴를 의미한 적도 없고, ‘노코드’ 역시, 개발 언어에서 탄생한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 자녀가 부모(기존) 언어들에게 도움을 주고 언어를 덜 사용해도 거대 기업의 백엔드 업무까지 해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은행, 금융, 빅테크 기업까지 선택했다면 뭐가 있어도 있지 않을까?
비개발자들도 서비스를 척척 만들어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참에 노코드 하나 들여놓고 같이 산책하고 운동하다보면 어느새 나의 평생 반려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잠깐이라도 들었다면, 당신은 이제 당신의 삶에 가장 큰 허들이었던 ‘귀찮음’을 넘어갈 준비가 되었다.
‘아, 그냥 한 번 테스트로 써보기나 할까?’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면, 당신은 이제 그 허들을 넘어, 삶과 업무의 확장성을 업그레이드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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