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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이 필 무렵
46화 대악(大岳) - 불타는 밤 2
by
Rooney Kim
Jun 28. 2023
“전신아, 부적은 충분히 챙겼냐?”
“네, 형!”
“차선아, 너도 준비되었지?”
“응, 오라버니. 어서 가자.”
대벽산 입구 쪽 마을의 가장 끝 가장자리의 빈집에 머물던 소백 일행은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금정아, 네 말이 맞았어. 네 꿈대로야. 아마도 그것이 나타났나 봐.”
"언니 언니, 그럼 우리는 여기에 있어요?"
"응, 저기 멀리 봐바. 불난 집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
"네."
차선은 금정이와 도희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희야, 절대 밖으로 나와선 안된다. 멀리 저기 보이는 거인 그림자가 거인귀든, 대인족이든 위험한 녀석이야. 금정이랑 방문을 걸어 잠그고 꼭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나오면 안 된다..!"
"응..!"
도희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금정이는 어쩐 일인지 의연한 표정이었다.
"그래, 언니 말대로 하고 혹시 모르니까 칼과 활은 항상 소지하고 있어. 우리 도희가 또 활과 칼솜씨가 죽이잖아? 히히. 전신아, 부적 설치는 끝났어?"
"네, 형. 이 집 안과 밖으로 이중으로 부적 방어진을 만들어뒀어요. 악귀나 역귀들 눈에는 이 집이 보이지 않거나 설사 들어오려고 해도 여기에 닿는 순간 극심한 공포감을 느껴 달아날 거예요."
"다됐으면 가자. 이제 우리의 할 일을 하자고! 참, 이번엔 부적 하나당 얼마나 들어가지?"
"이번에는 적어도 백씩은 들어가게 했어요. 그런데 해 봐야죠."
"자, 가자! 돈 벌러! 악령들 소탕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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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
"중갑사들은 여기서 진을 치고 관아를 사수하고 백성들을 피신시킨다. 그리고 경갑사와 착호갑사들은 마을을 샅샅이 살펴 포도부장님을 찾는다."
갑사장의 한마디에 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갑사들은 어찌나 훈련이 잘되어있는지 방금 전까지 자다 나온 사람들이라고는 생각 못 할 만큼 마치 한 몸처럼 물 흐르듯이 움직였다.
"거기 아전, 확실하지? 분명히 포도부장님이 이 길로 나갔단 말이지?"
"맞.. 맞습니다요. 바로 이 길을 따라 악귀들이 출몰한 곳으로 가셨습지요."
“아니 당최 왜 굳이 혼자 가셨지..?”
"갑사장님, 천검 착호장이 오셨습니다!"
관아로 달려온 천검 역시 당황스러웠다. 지금 대벽 고을에서 발생한 사건은 지난 미월 관아에서 일었던 악귀 환난보다 규모도 더 컸다. 누군가 멀리서 봤다면 필시 전쟁이 났다고 믿을 판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오?"
"형님, 오셨소.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대벽 고을이 무슨 저주에라도 걸렸는지. 올해만 두 번째 아니오?"
"이번에도 악귀들의 소행인 것 같은데."
“그렇지요. 저희는 이렇게 큰 귀신판은 처음 봅니다. 이런 건 훈련 병법에도 없는데."
"필성아."
"네, 형님."
"넌 여기 중갑사들이랑 꼭 관아를 사수해라. 난 애들을 데리고 들어가 포도부장님을 찾겠다."
"아니, 형님이 직접이요..?"
"내가 여기서 산지도 십 년이 넘었다."
“진짜 직접 가시려구요..?"
"시간이 없다. 악귀들은 전염성이 강해서 술에 취하거나 아편을 한 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조금만 사람들을 의심하거나 분노하면 쉽게 홀린다. 이 마을을 지키려면 일각이 아쉽다."
"알겠습니다. 형님."
천검은 곧 병팔과 진둘 그리고 대 여섯의 수하를 더 데리고 악귀가 날뛰며 춤을 추는 화마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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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휙. 휘휙. 휙휙.'
"끄아아아악. 끼아아아악."
차선이 날린 단촉 화살이 남의 집 담을 넘어 구렁이처럼 기어들어가는 악귀 넷을 단숨에 제압했다. 부적을 녹인 쇳물로 만든 화살촉은 여러모로 강력한 능력을 보여줬다.
"에잇."
소백이 여귀들 무리에게 달려가더니 번쩍하고 뛰어올라 무리 속으로 몸을 날렸다.
'부웅. 붕. 파박 파바박.'
'끄아아. 끼아아아악. 끄아아.'
소백이 휘두른 봉에 그에게 달려오던 여귀들이 여기저기 바람처럼 날아가 박혔다. 삽시간에 수십의 여귀가 소백의 봉에 기진맥진 못하고 소멸한 것이다.
소백은 악귀 대여섯은 맨주먹으로도 쉽게 제압했기에 웬만한 규모의 악귀들이 아니면 봉을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수백, 수천의 악령에 맞서려면 그에 걸맞은 무기가 필요했다. 그런 소백의 봉에는 황천경(黃泉經: 귀신을 내치는 경문)의 일부가 새겨져 있었다.
'부웅 붕. 파바바바박.'
"전신아! 지금이야!!"
소백의 신호에 담벼락에 숨어 때를 기다리던 전신은 가슴팍에 숨겨둔 부적 여러 장을 꺼냈다.
부적들을 여귀 떼를 향해든 전신은 심호흡을 하고 축귀경(逐鬼經)을 외기 시작했다.
"청사원사진군 육정육갑제대신장 오방영신사자
동방청제사자 남방적제사자 서방백제사자
북방흑제사자 중앙황제사자등은 각솔귀병하야"
전신이 축귀경으로 입을 떼자마자 전신의 손에 들려있던 축사문 부적들이 공중에 떠올랐다.
"황혼불귀 남여귀 비명횡사 남여귀 요약유독 남여귀
천하지하 남여귀 요사객사 남여귀 무죄인생 침범귀
사귀요귀 흉악귀 벌목장목 목신귀 지대지정 흉관귀"
'휙. 휙휙. 휘휘휘휙휙.'
전신이 두 번째 구절들을 읇조리자마자 축사문 부적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부스럭거리며 주변을 돌며 목표물을 찾더니 전방의 여귀 떼와 역귀들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팍팍. 파바바바바박. 팍.'
'끼아아아아. 끄아아아아.'
전신의 부적이 날아간 곳 여기저기서 귀를 찢을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부적들은 일순간에 어림잡아 수십의 악귀들을 태워 봉인할 정도로 강력했다.
"잘했다, 전신아! 오랜만에 솜씨를 보는구나. 크하하. 어떠냐 이 놈들아!"
"전신아, 잘했어! 오라버니, 이제 어디로 갈까?"
"전방이 뚫렸으니 직진이지. 조무래기들을 이렇게나 많이 끌고 왔다면 필시 어딘가에 두목이 있을 거다. 거인귀인지 뭔지 그 자식을 잡아보자고!"
"도희까지 왔으면 다 끝났겠는데?"
분명 무서운 환난이었지만 소백은 괜히 신이 났다. 오랜만에 합이 맞아 축사도 일사천리였고 비록 도희가 빠져있지만 셋의 조합으로 악귀 두목도 금방 잡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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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팔이는 이 셋을 데리고 왼쪽 동네를 샅샅이 살펴라 나랑 진둘이는 나머지와 함께 오른쪽으로 가겠다."
"네."
"넵, 형님!"
불길은 삽시간에 여기저기로 번졌다. 악귀들이 어찌나 설쳐대는지 얼핏 보면 마치 자연발화라도 하듯 사방의 집들이 불타올랐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포도부장님을 찾아 구조하는 것이니 귀신 들린 사람들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해라."
"네!"
"그럼, 가자."
천검 일행이 관아 밖으로 빠져나가 마을로 들어갈수록 여기저기서 피신하는 사람들이 뛰어왔는데 정상과 비정상이 뒤섞인 환난 속이다 보니 누가 사람이고 누가 귀신인지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휙. 휘휙.'
"끼아아아아.'
진둘이 그들 앞으로 달려오는 귀신 들린 자 둘을 화살로 제압했다.
"형님,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들을 분간하기 너무 힘든데요."
"맞다. 그래서 최대한 이들을 피해서 가야 해. 지금처럼 우리에게 달려들면 죽여라."
"이 집에는 없습니다!"
"여기도 아무도 없습니다. 얘들만 쪽방에 숨어있습니다."
천검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곳곳이 온통 불타오르며
주변이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는 중이었다.
"차석아, 넌 그 애들을 데리고 관아로 돌아가라. 나머지는 계속 나랑 같이 간다."
천검과 진둘은 조금 더 속도를 냈다. 이번 환난 역시 부패한 관리들 때문인지 악귀들 때문인지 이유는 아직 모르지만 확실한 건 둘 다 대벽 마을에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눈꽃이 필 무렵은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 리그와 문피아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 리그: https://novel.naver.com/my/myNovelList?novelId=1020387
• 문피아: https://novel.munpia.com/245153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snow-moun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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