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대악(大岳) - 불타는 밤 3

by Rooney Kim


"형님, 보이십니까? 마을이 난리가 났습니다. 미월의 난 보다 더했음 더했지 적지 않은 규모예요.."


아닌 밤 중에 홍두깨였다. 아니 그보다 더했다. 근중은 마을에 불이 난 걸 보자 먼저 마을로 내려가있던 척결패의 수하들이 생각났다.


"애들은 어디 있냐? 다들 괜찮냐?"


"네, 형님. 다행히 산기슭 쪽이라 다들 피신했다고 들었습니다."


"형님, 저희는 어떡할까요? 가서 도와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 지난 환난 때도 누명을 쓸 뻔했지만 결과적으로 수많은 주민들을 구했지 않나. 단, 이번 난은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


"그럼 어떻게 하죠?"


"우선, 애들을 세 개 조로 짜라 그리고 산기슭에 있는 집의 불을 먼저 끈다. 저 아래에 필시 귀신 들린 자들이 정신을 놓고 덤벼들게다."


"그렇죠. 형님."


"그럴 때만 스스로 몸을 보호하고 방어해라. 죽음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이상 무작위로 죽이면 안 된다."


"네, 형님."


"그래, 가보자."


----------


천검은 어느덧 마을 깊숙이 들어왔다. 주변의 집들은 다행히 불이 붙지 않았거나 이미 다 타버려 매캐한 내음과 함께 희뿌연 연기만이 타올랐다.


'여기는 벌써 이렇게 조용해졌구나. 혹시 이 근방에서 이 난이 시작된 건가.'


"형님, 여긴 조용한데 너무 수상쩍습니다. 오싹한 기분마저 드는데요."


"그래, 조심해라. 너 호랑이랑 귀신의 공통점이 뭔지 아냐?"


진둘이 천천히 천검을 돌아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뭔데요. 형님?"


"사람을 홀려. 그것도 순식간에. 발이 땅에 얼어붙듯 꼼짝도 못 하고 달아나야겠다는 생각보다 공포심이 더 커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지."


"그래서요?"


천검은 의외의 대답에 진둘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진둘의 눈빛과 행동이 어딘지 모르게 부 자연스러워 보였다.


"진둘아, 너 괜찮냐..?"


“지요? 네, 괜찮.."


진둘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입을 꾹 하고 닫아버렸다.


"야, 진둘아. 너..?"


진둘은 가뜩이나 큰 두 눈을 더 크고 동그랗게 뜬 채로 한동안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녀석, 홀렸나..?’


천검은 본능적으로 칼춤에 손이 갔다. 하지만 상대는 진둘이었다. 빙의를 풀기만 하면 다시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크아아아악-"


진둘이 갑작스러운 괴성과 함께 천검에게 달려들었다. 칼을 들었지만 휘두르지 않는 걸로 보아 귀신에 홀린 게 확실했다.


'탁. 파박. 퍽퍽.'


천검은 진둘의 목덜미와 팔의 혈자리를 짚으며 방어했다. 진둘의 혈이 막히며 팔과 목은 뻣뻣해져 쓸 수 없었지만 그 상태로 다시 천검에게 달려들었다.


‘에잇.’


‘퍼벅. 퍽’


천검은 어쩔 수 없이 진둘을 기절시켜야 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몸을 악귀에게 내어준 터라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계속해서 천검에게 달려들었다.


‘휙. 휘휙’


천검이 진둘을 막느라 몸싸움을 하는 동안 별안간 멀리서 단촉의 화살이 날아왔다. 천검은 진둘이 화살에 맞을세라 녀석의 목을 쳐 꺾고는 옆으로 던져 버렸다.


‘누구지? 갑사들인가?’


“여봐라, 여기에 사람이 있다. 화살은 그만 쏘거라!”


천검이 소리치자마자 오른편 집 대문에서 역귀 네댓이 또 갑작스레 튀어나왔다.


‘슈아아아악-‘


순간 화살이 날아왔던 골목에서 부적이 하나 날아오더니 악귀들을 향해 날아가 붙었다.


“끼아아아아. 끄아아아아.”


악귀들은 순식간에 불에 타오르더니 연기가 되어 부적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져 버렸다.


‘누구지.. 축사패인가?’


곧 키가 큰 사내 하나 그리고 소년 하나와 젊은 여자 하나가 골목 어귀에서 튀어나왔다.


“누구냐?”


천검이 장검을 빼들고 묻자 소백이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어라, 그럼 댁은 뉘시우? 전신아 저기 부적부터 챙겨라.”


“네, 형.”


비록 악귀들의 난에 익숙하지 않은 천검이었지만 천검의 눈에도 이들은 사람으로 보였다.


“아저씨, 아니다. 복장을 보니 갑사나 병사인 것 같은데. 저희들은 축귀 하는 신무패라고 해요. 혹시 이 근처에서 키 큰 귀신은 못 봤어요?”


천검이 악귀나 귀신 들린 사람이 아닌 걸 확인하곤 차선이 대뜸 물었다.


“축귀.. 축사하는 자들이오? 잘됐소. 저기 저 자의 몸속에 들어간 귀신을 하나 빼주시오. 하난지 몇인지 모르겠다만.”


천검이 가리킨 곳에는 여전히 혈자리가 막혀 팔과 목을 움직이지 못하는 진둘이 쓰러져 버둥거리고 있었다.


“어머! 저거 저거 내가 아까 잡으려던 귀신 놈 아냐?”


천검은 아까 날아든 화살이 생각났다.


“아니오. 사람이오. 내 부하인데 순식간에 귀신에 홀려서 이렇게 됐지. 이 녀석은 이런 난은 처음이라.”


“전신아, 부적으로 풀어줘라. 안에 있는 녀석들도 아까 그 부적에 다 넣어버려.”


“네, 형.”


“끄아아아아. 끼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


곧 전신이 흡귀부를 진둘의 이마에 대자 괴성과 함께 악귀 셋이 부적 속으로 연기처럼 빨려 들어갔다.


“헉헉헉..”


전신이 흡귀부를 진둘의 이마에서 떼자마자 진둘이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진둘아, 괜찮냐.”


“헉헉, 혀.. 형님 여기가 어디오. 꾸.. 꿈을 꾸었습니다.”


“괜찮다. 니가 귀신에 홀렸었다. 그거 개꿈이야..”


“아닙니다, 형님. 여.. 여기에 아주 큰 귀신이 나타났었습니다.”


‘큰 귀신..?’


진둘의 한마디에 소백 일행이 관심을 가지며 모여들었다.


“얘기해 보시오. 어떤 귀신이오? 당신이 직접 보았소?”


진둘이 소백 일행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천검을 바라보았다. 천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진둘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분명 우리 마을이었소. 그리고 중앙에 큰 귀신이..”


“거인귀? 키가 십 척도 넘지 않소?”


“맞, 맞소. 거인귀. 그런데 자신의 입으로 이무.. 뭐, 뭐라더라.”


“이무..? 이무라면, 형, 이무량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전신이 소백을 돌아보며 묻자 소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무량, 이무량일 것 같은데.. 어, 뭐야.. 그럼 금정이가 꾼 꿈이 이무량이었던 거야..?!”


‘이무량이라고?!’


이무량의 이름을 듣자마자 천검의 머릿속에 퍼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진짜냐? 진둘아, 꿈에서 이무량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네, 형님.. 비록 꿈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 그 거인 같은 귀신 놈이 이무량이라고 했습니다.”


“오호라.. 이거 재미있어지겠는데? 차선아, 전신아, 우리 오늘 큰 거 제대로 한 건 할 수 있는 거 아냐?”


하지만 이무랑이라는 이름이 언급된 이후 소백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이무량은.. 전설로 내려오는 악의 근원이자 화마와 질병의 뿌리, 그 자체요. 그 녀석은 전쟁도 일으키고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로 엄청난 위력의 대악령이란 말이오.”


천검의 말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형. 우리가 아무리 다 뭉쳐도, 형이 아무리 세도 이무량은 아주 급이 달라요.”


“나도 알아. 이무량. 진짜 무식하게 세고 악독한 놈이잖아. 내가 먼저 녀석과 붙어서 시선을 끌면 차선이가 활로 몇 군데 쏘고 전신이가 부적 한 열개 정도 날려서 봉인하면 되지 않을.. 까?”


“오라버니, 아유 진짜, 전설로만 들었다고 또 저리 쉽게 말한다. 할매, 할배들한테 못 들었수? 우리는 이무량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서 정말 행운이라는 말도 못 들었냐고. 어르신들은 아예 이무량 이름도 못 꺼내게 하는데. 혹시나 이름 얘기했다가 다시 이승에 나타날까 봐.”


“뭐야.. 그럼 우리 방금 엄청 많이 얘기했는데.. 진짜 나타나겠네?”


‘쿠당탕. 쾅.’


이들이 이무량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뒷에 있던 빈 집에서 별안간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뭐야. 가보자.”


소백과 천검이 동시에 빈집으로 달려들어갔고 뒤따라 전신과 차선도 들어왔다.


“어?! 포도부장님!!”




눈꽃이 필 무렵은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 리그와 문피아에서 동시 연재됩니다!

• 네이버 웹소설 베스트 리그: https://novel.naver.com/my/myNovelList?novelId=1020387
• 문피아: https://novel.munpia.com/245153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snow-mountain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6화 대악(大岳) - 불타는 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