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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Aug 11. 2023

DP: 슬프도록 선명한 젊은 날의 서시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군입대를 기다렸다.


캠핑과 야외생활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뭔가 군대를 통해 더 강해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빠른 년생이었던 나는 당시 입대 영장을 발송하는 체계가 바뀌는 바람에 친구들이 모두 입대를 한 뒤에도 한창이나 영장이 나오지 않아 1년 가까이 기다렸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입대하는 방법을 찾아보다 결국 해병대까지 지원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육군을 갈 운명이었던 나는 02년 6월 25일에 입대영장이 나왔고 따라서, 7월 초에 입대 예정이었던 해병대는 자연스레 취소됐다. 그렇게 훈련소를 거쳐 강원도 최전방의 포병부대로 배치되어 8인치 포의 사격제원을 계산하는 FDC가 되었고, 병장이 된 후에는 대한민국 국방의 자랑 K-9 자주포로 부대 개편 시험을 통과시킨 뒤 말년 병장의 유격 훈련을 끝으로 군생활을 마무리했다.


벌써 내년 7월이면 제대를 한 지 20주년이 된다. 제대 후 지금까지 약 7천여 일은 이렇게나 빠르게 흘렀는데 그 당시의 790여 일은 길고 긴 까마득한 밤과 같았다. 그렇게 입대를 하고 싶었던 나도 자대에 배치되고 나서는 군대의 쓴 맛을 봤다. 당시에 폭행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폭언은 난무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폭력과 격투 그리고 하극상은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좋은 고참들이 많았고 친구처럼 의지하는 동기가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사람들 덕분에 이래저래 버티며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20대 초반, 가장 혈기왕성한 시절, 건강한 대한의 남아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군대지만, 모두에게 똑같은 군생활이 주어지진 않는다. 나라가 자신에게 준 시간을 쫓으며 제대만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대한민국 군대 곳곳에서는 분노와 고통의 변주가 매일 밤 연주되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쫓았나


준호와 호열은 뛰어난 DP다. Deserter Pursuit은 말 그대로 탈영병을 쫓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탈영병은 왜 군복무지를 이탈했을까. 사연은 절절하고 상황은 다양하다. 여자친구와의 이별,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한 걱정과 같은 개인적인 사연도 있지만, 부대 내 왕따, 폭행, 괴롭힘과 같은 내부적인 원인도 있다.


DP의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고참에 의한 폭행과 괴롭힘에서 발생한다. 군대를 가본 자들이라면 안다. 군대가 얼마나 폐쇄적인 곳인지. 내가 복무했던 강원도의 인제 그리고 인제에서도 산골짜기에서 군시절을 보낸 나는 세상과 내가 단절되었다는 것과, 수틀리면 그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는 곳이 군대라는 걸 오감으로 체득했기에 그곳에서의 괴롭힘은 감히 상상조차하기 싫다.


탈영병들은 부대에서의 폭행과 괴롭힘, 놀림, 모욕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대를 탈출하거나 휴가 후 미복귀한다. 그리고 DP는 그런 그들을 쫓기 위해 출동한다.


그런데 좀 의아하다. 표면적으로는 탈영으로 중대한 군질서를 위반한 병사를 쫓는 게 맞다. 그렇다면, 탈영의 주원인이 되는, ‘탈영병들이 탈영을 하게 한 이유’는 누가 쫓아가서 해결할 것인가. 탈영의 주요 원인은 개인적인 문제보다는 집단의 병폐나 오염으로 인한 경우가 더 많은데, 이런 시스템의 문제는 누가 집요하게 쫓아 해결할 것인가."


탈영병을 잡기 위해 전국을 누비는 DP들이 쫓는 건 과연 군법을 어긴 범법자들이었을까, 아니면 억압, 불안, 분노, 슬픔, 아픔, 고통에 짓이겨진 자신을 보다 못해 일탈한 젊은 날의 아리고 시린 얼굴들이었을까.


물론, 그 어떤 변명으로도 범법 행위가 정당화될 순 없지만, 그럼, 소수를 보호하지 못하는 병든 시스템은 누가 고치느냐 말이다. 



탈영병이 고참으로 왔다


그럼에도 군대 내 사건사고는 발생하고 인명 피해는 늘어났다. 굳이 DP에서의 에피소드뿐만이 아니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에도 타 부대에서 탈영한 사람이 전출을 온 적이 있다. 그것도 무려 나보다 1년이나 고참인 사람이.


보통 탈영을 해서 타 부대로 오게 되면 거의 제대일까지 관심병사가 된다. 그 사람은 상병으로 왔지만 부대의 고참들은 대부분 모두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을 무시했고 나중에는 후임병들까지도 은근히 피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 고참은 내 ‘아버지 군번(군대에서는 1년 차이가 나면 아버지와 아들, 2년 차이가 나면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병만의 전통이 있다)’이었고 당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내 동기들에게 ‘아들~’이라고 부르며 유독 친한 척을 하며 다가왔다.


하지만 군대는 군대이고 고참은 고참이다. 나는 이후 단 한 번도 그 고참 앞에서 경례를 게을리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그 앞에서는 더 깍듯하게 인사했으며 웃기지 않는 농담에도 낄낄대며 장단을 맞춰줬다. 그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면 종종 나와 동기들을 PX로 데려가 먹을 걸 사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군대 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보여준 적이 없는 미소와 편안한 얼굴로 우리를 대해주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는 거지만, 우리가 그를 끝까지 고참으로 인정하고 깍듯하게 대한 덕분인지 그가 제대하던 날 우리에게 와서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가는 모습에 나름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군대라는 계급 사회에서 후임이 고참을 위해 뭘 할 수 있겠냐 싶겠지만, ‘하극상’을 가장 큰 범죄 행위로 간주하는 군대인 만큼, 후임들에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는 것은 군인의 자랑이자 명예이기도 하다. 그리고 군인에게 명예는 생명과도 같다.



드라마  현실에 대하여


DP에서도 누군가는 도망가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며, 또 누군가는 어떤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이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이제는 20여 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당시에도 군대에서의 폭행, 괴롭힘, 탈영, 자살, 사건사고는 특히, 내가 있던 곳에서는 흔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곳에서도 과거 화장실, 근무지, 창고 등에서 자살한 사건은 있었고 그 이야기는 마치 부대 전설처럼 내려왔지만.


그럼에도 내 주변 부대에서는 제법 심심치 않게 사건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00부대에서 사병이 화장실에서 목을 매어 자살’
‘00부대에서 훈련 복귀 차량이 전복되어 4명이 사망’
‘00부대에서 포탄 사격 훈련 중 사고로 사망’
‘00부대에서 무장한 병사가 산으로 탈영’


위 모든 사건사고들이 모두 내가 군복무를 하던 시절 주변 부대들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물론, 더, 훨씬 많다. 지금 생각나는 것만 이 정도 일 뿐.


이후, 우연히 ’0000년도 전군 사건사고 일지’를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유인즉, 백과사전 두께만 한 사건사고 일지를 대충 훑었는데도 1년에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천 건은 넘었기 때문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기를


쫓는 자 그리고 쫓기는 자, 그들 모두 슬프도록 찬란한 청춘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죽도록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 자유를 쫓기 위해 범법을 저지르는 자도, 그런 사정을 가진 자를 쫓아 잡아들여 죗값을 치르게하는 자도 모두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는 국방부의 시간’을 쫓는 20대 초반의 아이들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연대감이 있다.


‘저 사람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견뎌냈겠구나.’
‘저 사람도 나와 같은 괴롭힘을 참아냈겠구나.’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우울함을 이겨냈겠구나.’


그 나이대에 만 겪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격랑을 고스란히 넘어온 고통과 인내의 기록들은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공유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서로 공감하는 무언의 인정이 있다.


나의 제대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안타깝게도 이후, 끔찍한 군부대사건은 더 많이 일어났다. 내가 쫓던 ‘제대의 시간’은 사회에 나와보니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현재 그 시간을 쫓고 있는 이들에게 ‘국방부의 시간’은 여전히 느리고, 여전히 힘겨우며, 여전히 눈물겹다.


이제는 길에서 군인들을 보면 혼잣말로 응원한다. 조금만 그 시간을 버티고 알차게 보내기를, 그리하여 그 시절이 흐른 후 돌아보면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한 자신이 시간이 자랑스러웠길 바라며.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sniper_sougo13/2231492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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