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중산층, 그것이 바로 빠반인의 정체성이니까

by Rooney Kim



삐빅, 빠반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와이프와 나는 스스로를 빠반인으로 칭했지만 여전히 빠반인의 정의는 모호했다. 과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많을 수 도 있고 너무 적을 수 도 있다. 어, 그러다 문득, 고래들 사이에 낀 새우마냥 소수인 줄 알았던 빠반인은 어쩌면 소수가 아닐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의, 우리의 동지들도 많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잠시 마음이 설레기도.


빠반인은 ‘팬, 덕후’가 주 소비층인 엔터 등 주요 IP 산업계에서 주목해야만 하는 중요 계층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즉, 하이브, SM, JYP, YG와 같은 엔터업계의 메이저 기업들은 물론, 애니메이션, 게임, 카툰 & 웹툰 등 ‘팬’이 주요 소비자층인 모든 산업계는 이제 ‘빠반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아니, 진짜 귀를 좀 기울여줘요)


물론, 제아무리 빠반인이 중요하다고 말을 한들, 자본주의 체계에서 기업은 매출에 중점을 두고 사업의 방향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즉, 스타, 아이돌이라면 그들의 ‘음반 구매, 콘서트 티켓 구매, 굿즈 구매’ 순으로 주요 타겟층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냉정하다고? 그런데 그게 돈이 되니까.


이 시대에 ‘돈’은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연료와 같은 역할이기에 수익이 모든 결정의 기준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관점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덕후의 역할은 무엇일까.


당연하게도 ‘덕후’는 가장 중요한 엔진이다. 즉, '팬덤의 크기와 화력'은 자동차의 '출력(차가 낼 수 있는 최대 힘, 소위, 마력)과 토크(바퀴가 한 번 돌아가는데 쓰이는 힘)'와 같다. 출력이 '음반 판매량'이라면, 토크는 '콘서트'다. 둘 다 높을수록 좋다."



빠반인의 기가 막힌 포지셔닝


그럼, 여기서 빠반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또 한 번 믿기 어렵겠지만, 빠반인은, 빠반인은 무려 자동차의 바퀴다. 도대체 그게 무슨 희망사항에 빠져 희망고문하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아래의 글을 읽다 보면 바로 이해될 것이라 믿는다.


제아무리 엔진의 출력과 토크가 좋아도 바퀴가 없다면 그 힘이 전달되어 나아가기 힘들다. 즉,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잔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는 한 자리에서 엔진이 공회전을 하더라도 음반이 팔리고, 콘서트가 잘되니 돈을 벌 수 있다. 덕후라는 연료가 계속 주입되기에 그들만의 신나는 잔치는 한동안 이어질 것처럼 보인다.


굳이 따져보자면, 이름은 한 번 알려졌지만, 음원 랭킹과 TV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기에 어디서 뭘로 돈을 벌고 있는지 잘 모르는 아이돌들 혹은, 대중은 거의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싱글을 내고, 해외에서 콘서트를 하는 등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돌이 그 예이다.


쉽게 말하자면, 대중성은 없지만, 팬덤은 갖춰졌기에 엔진은 빵빵한 자동차를 만든 셈이다. 그럼 기획사는 그들을 통해 번 돈으로 연료를 채우고 또 엔진을 가동하면 된다. 부릉, 부릉~ 어,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질 않네?"


그렇다. 빠반인이 없는 스타는 바퀴 없는 슈퍼카를 탄 사람에 불과하다. 앙꼬만 있는 찐빵도 찐빵은 아니지 않나. 후후.


즉, 덕후, 열성팬은 못되었지만, 일상에서, 출퇴근길에 음원을 스트리밍 하고, 저녁마다 TV, 유튜브 등을 보며 스타들의 음방 무대, 프랙티스 영상, 뮤비, 리액션, 챌린지 영상을 보며 음원 순위는 물론, 검색량과 조회수를 올려주며 소위, ‘대중성’을 만들어주는 빠반인들이라는 ‘바퀴’를 달아야만 스타는 비로소 ‘대중성’을 가진 아이돌이 되어 드디어, '대중 문화 트렌드'라는 도로를 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빠반인의 경제학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세상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상류층과 하류층 그리고 중산층"


보통 중산층은 계층의 중간 역할을 하며 상류층으로 가기 위한 사다리가 되기도 하고 혹은 하류층보다는 나은 삶의 여유를 누리기 위한 하류층의 목표가 되는 계층이다. 때문에 중산층은 계층 간의 버퍼(buffer) 역할을 하며 한 나라의 경제를 단단하게 지지해 주는 버팀목을 하는 계층으로도 불린다. 각 국가의 정부들이 중산층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늘리려고 하는 까닭 역시 이와 같다.



덕후 산업의 계층 구분


우리는 보통 스타나 브랜드 등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빠져드는 정도에 따라 이들을 일반인과 덕후(마니아, 빠)로 나눈다. 그냥 가끔가다 한 두장의 앨범을 구매하거나, 필요할 때 음악을 듣는 정도를 일반인이라고 한다면, 앨범도 (왕창) 구매하고, 팬클럽에도 가입하고, 팬사인회도 가고, 음방도(자주) 가며, 콘서트에도 가면서 시간과 비용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덕후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제는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단어인 ‘빠순이와 빠돌이’는 이들 중에서도 거의 모든 시간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따랐다닌 극성팬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과거, 일본의 애니메이션, 게임 매니아층을 뜻하는 '오타쿠'라는 단어에서 변형된 ‘덕후’.


초기에는 Nerd, Geek과 같은 의미로 주로 부정적 혹은 놀림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최근 몇 해 동안 ‘너드 문화’가 뜨고 덕후들의 깊이 있는 전문성이 주목을 받으면서 ‘덕후의 경제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덕후’들의 인지도는 소위 떡상했고, 이제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맹렬히 떨치는 중이다.


그런데 덕후의 세계에서도 서열은 나뉜다. 아래의 분류를 한 번 살펴보자.


덕후력 입문레벨

단순히,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고, 콘서트 피겟팅(피 터지는 티켓팅)을 성공하는 정도. 아, 이 정도는 누구나 한다고? 나 같은 빠반인에게는 콘서트 피켓팅의 성공 여부가 덕후 레벨로 넘어가지 못하는 주요 관문 중 하나다.


덕후력 궁극레벨

‘팬사인회’를 위한 수십, 수백 장의 앨범 구매, 스타의 실물을 보기 위한 음방 직관, 스케줄 쫓기 등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단계. 사실상, 누구나 인정하는 덕후다. 빠반인에게도 꿈같은 인물들이다. 하지만 결코 따라잡을 순 없다.


덕후력 초월레벨

아니, 궁극레벨보다 더 윗단계가 있다고? 있다. 덕후력 레벨의 끝에는 대포 카메라로 스타의 더 디테일한 부분(노 사생활)을 담고 이를 경제활동에까지 활용하며 ‘일상과 생존을 위한 일이 모두 ‘스타’’를 향한, 스타의 활동이 자신의 주 수입원이 되는 단계다. 물론, 종종 순수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궁극레벨러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의 질타를 받기도 한다.


덕후 산업의 중산층, 빠반인


일반인들은 물론, 나 같은 빠반인 역시 덕후의 단계에 도달할 순 없을 것 같다. 뭐, 굳이 솔직하게 말하자면, 실은 그 단계까지 이를 생각조차 없다. 우리 같은 빠반인들은 분명, 자신의 주변인들보다는 ‘아이돌과 스타’에 관심이 많아 이를 콘텐츠로 소비하고 분석하며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지만, 덕후들의 틈에는 낄 수 조차 없는 게 냉혹하리만치 전문적인 덕후 산업의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제아무리 날고 기는 빠반인이라도 덕후 산업의 상류층은 엄두도 못 내지만, 그렇다고 덕후 산업의 일반인으로 분류되기에는 이제, 시대가 허락한 자존심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회차에서 스스로는 '빠반인'으로 정의하기로 했지만, 더 나아가 이제 이를 사회에서 용인하는 경제학의 용어로 분류하고 싶은 욕망에 이르렀다.


부릉, 부릉 이제 빠반인을 업고 달려 보즈아!


그리고 그 종착지는 바로 중간계다.


스타를 좋아하고 캐릭터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세상에도 중간계가 있다는 것을 마흔 번의 새해를 맞이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일반인과 덕후 사이에서 조용하고 은밀하게 중간계를 살아가며 일반인과 덕후층를 마치 프라이팬과 식빵 사이의 버터처럼 부드럽게 연결하여 그 두 대형 집단이 이 세계에서 마찰 없이, 불에 타지 않도록, 마치 like, 버터처럼 부드럽게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계층,


즉, ‘빠와 일반인의 중간에 있는 매개인이자 그 중심에서 각자의 스타를 조용히 떡상시키는 중산층, 그것이 바로 빠반인의 자리’다."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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