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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연대기 23: 끝을 알아도 끝을 바라지 않는

아이유 꽃갈피 셋: 네버 엔딩 스토리

by Rooney Kim


아이유 꽃갈피 셋: 네버 엔딩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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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가끔은 나이 들수록 내 속도가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더 빠르게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기억의 창고 깊은 곳 보관되어 흐릿하고 뿌옇게 변색된 어린 시절의 추억은 이미 밝고 맑은 기억들만 남아 더없이 아련하고 끝없이 그립다. 그런데 그건 아마도 삶을 살아갈수록 더 힘들어지는, 이겨내면 이겨낼수록 더 막연해지는, 알면 알수록 더 알 수 없는 생이라는 숙제가 쥐어주는 무게감으로 인한 그리움이라는 착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무언가를 꿈꾼다. 아니, 실은 끝나도 괜찮다. 원래, 행복이라는 감정은 그 따스함과 포근함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또, 곧 다시 다가오길 바라는 욕심으로 꾸는 찰나의 경험이니, 모두들 현실적으로는 행복의 유한함과 영원의 영원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왠지 그럴 것 같은 또는 어쩌면 그럴 것만 같은 기분’으로 잠깐의 유희를 완전히 누리고픈 마음에 그저 한숨 쉬듯 내뱉는 소원이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다. 만약,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사라지길 바란다면, 그 역시 바라는 것이다. 비록 그 방향의 끝이 평균에서는 많이 벗어나있지만.


누구는 순수하고 푸릇한 일상으로 넘치는 삶을 꿈꾸고, 누구는 활활 타오르며 자신의 영향력을 널리 떨치는 뜨거운 삶을 꿈꾸며, 또 누구는 넓고 아득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슬픔으로 아픈 이들이 그들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이타적인 삶을 바란다.


참 희한하다.


모든 것은 유한한데, 그 짧은 생에서도 마치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꿈꾸고 말하며 약속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든, 채 이루지 못하든 결국엔, 그 과정 속에서 조용히 온기를 잃어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의 스위치는 꺼진다.



유한하기에 가치 있는


사랑과 꿈이 영원하지 않듯, 당신의 아픔과 슬픔도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다고 해서, 영원을 약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도, 낙담할 것도 없다. 이토록 나약하고 유한한 존재면서 무한한 애정과 끝없는 보살핌을 약속하고 또 바란다는 건, 불가역적인 삶의 선택과 끝을 되돌릴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마치 마음만큼은 유한의 한계를 기꺼이 뛰어넘을 정도로 뜨겁게 넘치고 무한히 퍼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역설적으로 그 유한한 존재가 참으로 고맙고 애잔하다.


지금 사라진 누군가가 있다면, 지금 놓을 수밖에 없는 손이 있다면, 보내기 싫어도 보낼 수밖에 없는 마음이 있다면, 그 결과는 나의 원함과 관계없이 알아서 흘러갈 뿐이다. 당신은 거의 예외 없이 슬프고 가슴 아프겠지만, 이제 당신의 역할은 흐르는 물 길이 어디를 향해 흘러가는지 지켜보며 그와 함께한 시간이 아름다웠노라고 되뇌고 짙은 슬픔에 갇히는 것 외엔 다른 길은 없다.


그럼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간을 그와 함께 했다는 것, 그리고 내 마음속에선 영원히 환하게 빛날 얼굴과 살가운 행동과 감미로운 마음씨가 끝없이 재생될 것이고, 그것은 오직 그와 나만의 것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고 상기하는 것, 그리고 그 기억과 함께, 나는 나의 물 길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우리는 약하고, 삶은 덧없지만


그래서 가슴에 뭉클한 파문이 인다.


작은 물결은 이내 곧 다른 물결과 만나 큰 파도가 되어, 당신이 주저앉아 울먹이는 해변을 거슬러올라 당신의 발을 적신다. 어쩌면, 영원이니 뭐니 그런 기대도, 긍정의 마음가짐이니 뭐니 그런 조언도, 삶의 가치나 행복과 같은 타인의 이야기는 고급 백화점의 어느 부띠끄에나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사치품으로 여기는 누군가에게는 삶의 이유를 찾는 게 먼저다.


어쩌면 당신의 발은 계속해서 밀려오는 작은 파도에 오래도록 젖어있었을지도 모른다. 동일한 온도의 물속에 오래 있으면 물의 온도를 느끼지 못하듯, 마음의 항상성은 슬픈 고뇌라는 물속의 온도와 동기화되어, 당신은 지금 옆사람의 온기조차 차가운 얼음장인 것 마냥 손을 빼내려 애쓰고 있는지 모른다.


상상해 보자.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먼 훗 날,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과거의 어리고 약한 당신은, 어느새 거친 세월과 날카로운 생을 지나온 나이 든 당신을 올려다보고 있지만, 저 얼굴이 누구인지, 그 미소와 옅은 코웃음이 지니는 의미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당신은 그저 안쓰러운 마음을 담은 미소와 함께,


‘곧 다 지나갈 거야, 금방 괜찮아질 거야, 금세 툭하고 터져 나온 웃음과 함께 날려 보낼 거야’하며 생각하겠지.



당신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누군가의 생에서 재현되고 재생된다. 살가운 약속과 서슬 퍼런 헤어짐의 아픔은 무수한 변주를 통해 수 만 가닥의 다른 이야기가 되어 끝없이 이어진다.


당신의 기쁨과 슬픔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기에, 수 천만 번, 수 억 번도 넘게 펼쳐지며 끝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당신의 아픔도 언젠가는 끝을 보고,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스르륵 그 바톤을 이어받는다.


그렇게,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는 영원히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마치, 끝날 것을 알면서도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seoy_11_/223880652505

https://blog.naver.com/compose85f/223879927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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