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고 가르다보면 결국 자아마저 갈라야 할 것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편 가르기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고 때론 편 가르기를 주도하기도 한다. 물론, 심각하게 누구를 괴롭히고자하는 의도는 없다. 그저 나와 뜻이 다른 누군가가 낯설게 느껴졌고 그를 내 편으로 만들고 싶었거나 그게 아니면 그냥 사라지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왜 그랬냐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고, 언젠가 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기에 그랬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편 가르기가 아니었다. 그저 생존을 위한 본능의 발현일 뿐이었다.
선사시대, 신석기의 씨족사회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같은 핏줄끼리 모여살기 시작했다. 이는 이후 부족사회로 발전하면서 점점 커졌고 후에 지연사회로 발전하면서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즉, 혈연이든, 지연이든 같은 편끼리 모여 사회가 구성되고 국가가 된 것이다. 즉, 국가는 가장 큰 단위의 공식적인 같은 편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여러 편으로 나뉜다. 국가라는 집단이 워낙 큰 규모다 보니 당연한 결과다. 우리가 TV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는 국회의 정당들만 봐도 그렇다. 여당과 야당은 처음부터 이합집산의 본질을 보여준다. 당 내 조직원들은 수시로 오가며 바뀌기도 하지만 여와 야로 나뉜 순간 편 가르기 싸움이다. 그 덕에 국민들도 나뉜다. 여러 이유와 상황들이 있지만 여당과 야당을 지지하는 세력과 이를 보며 응원하는 국민들은 매일 밤 술자리에서 밤이 새도록 그들의 현란한 정치논리를 자랑하며 ‘내 편’의 존재이유와 장점을 늘어놓기 바쁘다.
일상도 다르지 않다.
가족이라고 다 같은 편일까?
물론, 이런 이유로 핏줄을 내치지는 않겠지만 가족 내에서도 엄연한 니 편, 내 편은 존재한다. 이는 부모, 자식 간에 생기기도 하고 부부사이 혹은 자식 간에도 생긴다. 각자의 개성, 철학, 삶의 방식이 전부 다르기에 당연한 현상이다. 편 가르기의 주제도 다양하다. 종교, 교육, 꿈, 직업, 가치관 등 나와 다르면 적어도 해당 분야에서는 내편이 아닌 것이다. 유치하다고? 곰곰히 생각해보자.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소심하게나마 나와 뜻이 다른 가족과 적어도 그 분야에 관해서는 소원해지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있을 것이며, 일부러 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직장이나 친구가 아니라서 좀 약할 뿐 가족 간의 니 편, 내 편 편 가르기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친구 사이는 어떤가?
나와 취미도 비슷하고 잘 어울리면 내 편이지만 그렇지않으면 우선 거리를 둔다. 강도가 심해지면 적대시하며 그 친구 뒷담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설사,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는 친구가 내 마음이나 성향을 알아주지 않음에 대한 서운함으로 시작 하지만 그게 조금만 더 발전하면 곧 적대감으로 변하게 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대표는 외롭다.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잘 이해하고 따라와주는 직원이 이뻐보일 수 밖에 없다. 일을 잘하는 건 그저 당연한 거지만 자신을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건 무한신뢰로가는 지름길이다. 외로운 자신의 길에 항상 응답해주는 고마운 길동무 처럼 느껴질테니 말이다. 회사의 대표 눈 밖에 나는 건 단순히 일을 잘하고 못하고에 달려있지않다. 대표의 뜻을 헤아려주는가 그리고 그걸 받아들여 대표를 따라가는가에 달려있다. 대표를 제외하더라도 이익, 승진, 생존을 위한 직원들 간의 편 가르기는 또 어떤가? 후, 상상하고 싶지않다.
2019년 상반기를 달궜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종영을 1주일 앞두고 시청률의 23%을 상회하는 등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매서웠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학력지상주의를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관계의 다양한 딜레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요인이 바로 ‘니 편, 내 편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자식, 내 부모는 당연히 내 편이니 안심일 것 같지만 살다보면 때때로 그 당연함이 자신의 뒤통수를 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극 중 오롯이 핏줄로 된 ‘내 편’ 하나 없는 혜나는 끝까지 ‘내 편’을 찾기 위해, 세상을 떠난 유일한 내 편이었던 엄마를 위해 그리고 살아있는 유일한 핏줄로 알고있는 아빠의 관심을 얻기위해 짧고 굵은 독한 삶을 살다간다. 또, 코믹하게 묘사됐지만 인간적인 삶의 살기위해 엄마(노승혜)와 자녀들이 뭉쳐 아빠(차민혁)을 떠나는 장면에서도 니 편, 내 편의 온도차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직장은 더 심하다.
누구의 라인, 즉, 편에 들기위해 끝없는 경쟁 체제에 어쩔 수 없이 뛰어들어야한다. 니 편도 내 편도 아니라면 도태되기 십상이고 어느 편을 선택했다면 그 편이 살아남기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야한다. 병원 내 상사인 강준상의 눈에 들기위해 양심을 저버리는 일도 마다하는 우양우, 병원장인 최인호의 눈에 들기위해 병원장의 총애를 받던 황치영보다 더 눈에 띄려 발악하는 강준상이, 직장 내, 니 편, 내 편의 라인 경쟁을 잘 보여준다. 이 노력엔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것도 포함되니 이 생을 살아가기위해 얼마나 치졸 해져야 하는지, 참 눈물 겨운 인간의 삶이다.
또, 극중, 수임이 ‘영재의 죽음’을 소설을 통해 파헤치려 하자 스카이캐슬 주민들이 모여 노발대발하는 사건을 봐도 그렇다. 아이가 죽어나가는데도 ‘나만 아니면 돼’ 식의 내로남불의 정석은 물론이요.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않은 집단이기주의(내 편)가 발현되면서 수임은 여러 고초를 겪게된다. 같은 캐슬 식구라서 ’내 편’인 줄 알았는데 집단의 약점이 드러나게되자 바로 남으로 만들어 파묻어버리는 야만성, 이게 어디 남의 나라 일일까?
여기까지 살펴보니 편 가르기는 선택이 아닌 본능에 가깝다는 걸 알게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싫은 사람 앞에서 티는 잘 안내지만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이유로 그 사람이 내 편 혹은 내 과가 아니기에 더 이상 친해지기 어렵고 불편하기에 가까이하고 싶지않은건 나의 판단이나 생각보다 내 감정이 더 잘 알고 있다. 즉, 편 가르기는 본능적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편 가르기는 종의 다양성에 위배된다. 즉, 살아남기위해 나와 비슷하거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위주로 뭉쳤다는 건 생물학적,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같은 종, 유사종 끼리는 기형, 질병 등 결국 종이 도태되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이는 관계나 조직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살기위해 끼리끼리 뭉쳤지만 큰 관점에서 보면 이는 다 같이 죽는 길이다. 따라서, 살기위해선 나와 다른 종,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생태계를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살기위해 내 편을 받아들이는 건 본능이다. 하지만 더 잘 살기위해선 설사, 나와는 뜻이 다르고 내게 적대적이더라도 받아들여야한다. ‘우리끼리만 잘 살면 된다’는 건 없다. 길어야 몇 년에서 조금 더 갈 뿐이다. 같은 편 내에서도 조금만 수 틀리면 색출하고 버려지는게 태반이다. 그럼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런 집단에 속하고 싶을까? 나랑 반대의 사람도 받아들여보자.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조금 불편해도 곧 새로운 시너지가 만들어지는게 느껴질 것이다.
음식을 보면 사람들의 다양성 추구 실천의 적극성을 체감할 수 있다.
퓨전음식이나 짬짜면 그리고 반반치킨이 왜 인기있는지 보라, 다양성의 시도이자 적극적인 받아들임이 아닌가? 반반 치킨을 선호하는 이들은 잘 알 것이다. 양념의 편에 들 것인가, 프라이드의 편에 들 것인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들은 그저 누구의 편이 아닌 이 둘,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가히, 편협한 시대의 호인이 아닐 수 없다. 탕수육을 두고 부먹이냐, 찍먹이냐로 편 가르기를 하고 있을 때 그런 편 가르기 고민을 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처 먹으라'는 한 개그맨의 말처럼, 편 가르고 니 편이니 내 편이니 할 시간에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의 장단점을 수용하라는 말이다.
편 가르기로 정의와 인정이 메말라가는 시대, 서로의 화합을 위한 '반반 치킨'이 그리운 밤이다.
[이미지 출처]
메인, 붉은 데모, 대립, 다양성 이미지: https://unsplash.com/search/photos/diversity
스카이캐슬 혜나: https://publicfr.tistory.com/4059
반반치킨: http://hochicken.co.kr/chicken/984
(이 글은 호치킨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이미지가 예뻤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