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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Nov 14. 2021

여자애 다리가 이게 뭐냐

내 몸의 역사

나의 스포츠의 역사란 곧 부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고학년이 넘어간 이후 제대로 스포츠를 해 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체육시간에 피구나 배구 등은 했지만 뭔가 수업 시간에 하는 스포츠이니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도 스포츠의 재미를 알려준 적이 없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엄마 몰래 자전거를 타다가 이런저런 부상을 많이 입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그때 생긴 흉터가 지금도 무릎을 꽉 채우고 있을 정도다. 



내가 다치고 돌아올 때마다 엄마는 화를 내며 ‘여자애 다리가 이게 뭐냐’고 야단쳤고 그러다 얼굴에 작은 상처라도 생길 때면 ‘시집도 안 간 처녀 얼굴이 그게 뭐냐’는 꾸지람을 들었다. 나는 여자애 다리는 상처가 없고 매끈해야 하는데 내 다리는 이미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는 순간부터 몸에 상처가 생기지 않았다. 운동을 싫어해 매끈한 피부를 가진 언니의 다리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다칠지도 모르는 운동을 하지 않게 됐다. 그렇게 30대가 된 것이다. 



폴댄스 2일 차, 몸의 중앙에 위치한 폴이 몸의 오른쪽으로 올 수 있도록 몸을 비트는 동작을 배웠다.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여러 연결 동작을 부드럽게 하나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한번 본 동작을 그대로 카피하는 게 나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지라 초반엔 몇 가지 동작을 빼먹고 만다. 문제는 그렇게 빠뜨린 작은 동작이 몸 전체의 균형을 깰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나는 폴댄스 2일 차만에 날개뼈 부근의 근육에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는다. 이런 부상에 대처하는 방법은 부상당한 부근을 잘 마사지해주는 정도로 끝. 여러 운동을 접하며 잦은 부상을 경험한 내게 이 정도 부상은 그냥 하루 자고 일어나면 되는 가벼운 부상이 됐다.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길래 근육이 놀라는 통증 정도는 가볍게 넘어가게 되었냐면 때는 3년 전 발레에 도전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생 시절 4년 정도 무용을 했던 나는 그때 만들어 놓은 유연성에 빨대를 꽂고 평생을 살았다. 다이어트에 중독되어있던 20대 때에는 스트레칭에도 중독되어 꾸준히 다리 찢기를 했었는데 성인이 된 후의 스트레칭은 굳어가는 근육의 속도를 늦출 뿐이었다. 



직장을 다니고 나서는 걷기 운동만 근근이 하며 몸을 방치하다시피 했는데 그럼에도 마음만은 내 유연성이 초등학교 때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항상 가장 눈부실 때를 각인하지 않나. ‘나 다리도 찢을 정도로 유연했어!’ 



발레핏과 함께 보낸 고관절 근육 

발레를 배우기 전까지 내가 했던 운동은 가벼운 덤벨을 하루에 100개씩 들어 올렸다 내리거나 스쿼트나 레그 라이즈를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건강한 몸보다는 가녀린 몸의 외형을 원했기에 소위 ‘무게를 친다’고 할 수 있는 동작 없이 거의 맨몸 운동 수준이었다. 당연히 부상을 입을 일은 없었다. 



3년 전 면역력이 떨어져 스테로이드성 약물과 항생제를 번갈아가며 3개월 간 복용한 적이 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다. ‘아 내 몸이 더 이상 젊지 않구나’. 마감이 필연적인 잡지 기자 생활을 하며 한 달에 일주일은 제대로 잠도 못 자는 강행군을 몇 년째 하던 참이었고 이를 참지 못한 몸이 비명을 질렀다. ‘살려줘’. 



그래서 운동을 하기로 했다. 몸이 예뻐지는 운동이 아닌 튼튼해지는 운동. 그렇게 선택한 것이 발레핏이었다. 우아해보이는 몸짓과 달리 발레는 상당히 격한 운동이었다. 그럼에도 어릴 때부터 한 번쯤은 꼭 배우고 싶었던 발레였기에 매 수업 열심히 동작을 따라갔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몸을 이 정도로 써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온 몸 구석구석의 근육을 전부 늘어뜨렸다. 결국 참지 못한 고관절이 저항했다. 다리 찢는 동작을 하던 중 ‘뚝’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렇게 내 고관절 근육은 찢어지고 만 것이다. 



그대로 발레는 중단했고 유명하다는 정형외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처음 갔던 병원은 확실한 진단 없이 체외충격파 치료만 권했다. 한 번에 10만 원꼴인 체외충격파 치료를 대여섯 번은 해야 한다는데 당시 아무런 보험이 없던 내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인터넷을 뒤져 ‘착한’ 진단을 내린다는 먼 거리의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했더니 고관절 근육이 찢어졌고 간단한 물리치료를 처방해주었다. 치료를 해도 통증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하체 스트레칭을 겸한 운동을 못하는 몸이 됐다. 처음 해본 나름 격한 운동의 결과는 건강을 찾으려다 되려 건강을 잃은 느낌이었다. 



어릴 때부터 ‘부잡한’ 기질로 여기저기 부상을 달고 살았던 친동생은 생애 첫 큰 부상에 마치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좌절하던 내게 별 거 아니라는 투로 ‘그런 건 치료법도 없어.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나아’라고 말했다. 


스노보드와 함께 보낸 꼬리뼈 

그해 겨울 스노보드를 시작했다. 그때 마음은 ‘내 몸이 더 늙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해봐야 해!’였다. 평생 스키장엔 한 번 안 가봤던 상태로 바로 스키장 시즌권을 끊고 비싼 장비를 할부로 긁어모았다. 다행히 스노보드는 데크에 두 발을 묶고 하는 스포츠라 고관절을 쓸 일이 없었다. 안심하고 데크에 발을 묶고 보드를 타 본 첫날, 나는 꼬리뼈 부상을 입었다. 미끄러지는 눈 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튕겨 넘어지면서 그대로 꼬리뼈로 착지한 것이다. 



이번에는 한의원을 전전했다. 침을 맞고 적외선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부상의 전문가가 된 보드 동호회 사람들 말로는 꼬리뼈 부상 또한 기다리면 낫는다는 것이다. 부상을 입었다고 스노보드를 접지는 않았다. 이미 장비와 시즌권을 사는데 돈백을 썼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본전을 찾아야 했다. 꼬리뼈 자체는 보드를 탈 때 사용하는 부위가 아니라서 넘어지지만 않으면 되었다. 그러나 초보 스노보더가 보드를 타는 기술보다 더 연마하게 되는 기술은 바로 낙법이다. 슬로프를 한 번 내려오면서 최소 5번은 넘어지기 마련. 넘어지면서 생긴 손목의 염좌나 목 부상 등은 시즌 내내 달고 살았다. 


서핑과 함께 보낸 이마 

지난여름엔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서핑을 배웠다. 서핑도 내 로망의 정점에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인데 언젠가 발리에서 온갖 시름을 잊고 서핑만 하며 사는 삶을 가슴 한켠에 품고 산다. 한 달 내내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서핑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제주에 갔으나 파도에 치인 내 몸은 매일 곤죽이 되었고 잔잔한 제주의 바다는 서핑하기 좋은 파도를 자주 내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단 바다에 나갔다. 서핑 보드 위에서 3시간을 바다만 멍하니 보고 있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바다에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바다에 나간지 10번째 날이 되었을 때 라인업(파도를 탈 수 있는 지점)으로 나가던 중 파도를 타고 오는 서퍼의 보드에 얼굴을 그대로 들이 받혔다. 서핑의 룰 중 파도를 타고 오는 서퍼의 진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라인업으로 나가는 서퍼는 멀리 돌아서 라인업 지점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당시 서핑을 했던 사계 해변은 돌이 많은 지형으로 유일하게 돌이 적은 협소한 구역 안에서만 서퍼가 움직일 수 있었다. 멀리 돌아가기 위해 안전한 구역을 벗어나 혹시라도 파도나 너울에 휩쓸릴 경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제한된 구역 안에서 라인업으로 나가던 중 전방주시를 미처 하지 못한 서퍼와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고 내 이마엔 주먹만 한 혹이 생겼다. 



이번엔 해녀 전문 병원으로 갔다. 상처를 본 의사 선생님은 능숙하게 진단을 내리고 혹이 가라앉을 수 있도록 압박 붕대를 감아주었다. 멍과 붓기로 2주 내내 얼굴이 엉망인 채로 지내야 했지만 몇 센티미터 차이로 눈이 아닌 이마를 부딪힌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어제 폴댄스를 하며 날개뼈 부근 근육(정확히 어떤 근육인지는 모르겠으나)이 찢어지는 듯한 부상을 입었다. 하루 종일 날개뼈 부위가 뻐근했지만 뼈에 이상이 없는 한 시간이 지나면 나을 정도로 생각됐다. 예상했던 대로 하루가 지나니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날개뼈의 통증은 잦아들었다. 



3년 전이었다면 호들갑스럽게 바로 정형외과를 찾았을 것이다. ‘날개뼈에 부상을 입은 것 같아요 선생님!’ 그러나 여러 스포츠를 접하며 이런저런 부상을 입다 보니 이제 이 정도 부상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게 됐다. ‘괜찮아. 괜찮아. 별 거 아니야’ 마치 걸음마를 배우며 넘어져 우는 아이에게 부모가 하는 듯한 말을 스스로에게 해준다.  



건강하게 만수무강하면 그보다 좋은 삶이 없겠지만 험난한 인생에서 어차피 이런저런 부상을 입어야 한다면 부상에 담대해지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굳이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며 부상을 달고 살 필요는 없지만 부상과 맞바꿀 수 있을만큼의 재미가 있다면 기꺼이 그 스포츠에 몸을 내던질만하지 않겠나. 우리 몸은 생각보다 강하고 스스로 치유한다. 남동생은 학창 시절을 보내며 이를 이미 깨우친 것 같다. 



여러 스포츠를 해보며 몇 번의 부상을 겪고 다치거나 상처를 입는 게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이 됐다. 근육이 찢어졌다 다시 붙으며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내 몸도 부상을 당하고 이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더 튼튼해졌다. 분명 정신도 단단해졌을 것이다. 물론 큰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고, 부상이 무서워 스포츠를 하지 않을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폴을 잡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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