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문해력의 뿌리를 찾아서
우리 반 교실에는 올해 8살이 된 17명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당연히 얼굴도, 키도 하다못해 이빨 빠진 모습까지 모두 다르다. 그 중엔 세 쌍둥이도 있는데 (세 명 모두 우리 반이다.) 그네들끼리도 얼굴과 성격, 식성까지 뭐 하나 같은 게 없다.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온종일 보고 있자면 문득 교실이 꽃밭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란 민들레부터 하늘빛 수국, 진분홍빛 달리아처럼 하나 하나 다른 아이들의 개성과 매력은 서로 다르다는 이유 그 하나만으로도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다만 딱 하나, 아이들마다 달라도 너무 달라서 안타까운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학습과 초기 문해력의 바탕이 되는 '문해력의 뿌리'다. 이는 기초 문해력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식물의 뿌리는 수분과 양분을 빨아 올리고 줄기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문해력의 뿌리 또한 아동이 자신에게 주어진 외부 환경과 교육에 대해 얼마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의미를 풀어 보자면 태어난 직후부터 학교 입학 전까지 가정에서 아이가 습득한 문자와 언어, 어휘, 인쇄물에 대한 포괄적인 인지를 뜻하는 개념이다. 즉, 어릴 때부터 가정 내에서 받어온 언어적 자극, 독서등 모든 언어적 경험을 통해 아동이 갖게된 언어적 잠재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문해력의 뿌리는 어떤 사교육이나 학원으로 키워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노출되어 온 환경, 아이의 주된 양육자, 책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 등 아이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여기에 영향을 미치다 보니 이를 통제하거나 입맛에 맞게 조절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흔히들 부모가 아이에게 세습하는 물질적인 자산을 수치화 시켜 '금수저'니 '은수저'니 표현하곤 하지만, 문해력의 뿌리만큼은 어떤 식으로든 수치화나 요목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금수저'부모 일지라도 아이에게 금으로 된 뿌리를 준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다.
그러니 이제 막 여덟 살이 되어 학교로 온 아이들의 학습이 서로 다른 출발점 위에 서 있는 건 단순히 부모의 경제적인 격차나 선행학습의 결과라고 단정짓기 어렵다. 그보다는 그들의 8년차 인생 전반에 걸쳐 겪었던 문해 환경과 받은 언어적 자극, 경험한 어휘의 양 등 다양한 요소가 누적되어 생긴 차이로 보는 게 합당하다.
이러한 차이가 문제가 되는 것은 문해력의 뿌리가 약한 학생일수록 초기 문해력 시기인 1,2학년동안 기초 문해력이 제대로 형성시키기 어려운 데 있다. 3학년부터는 '학습을 위한 읽기'가 시작되는데 그 때가 되서는 다른 학생들과 좀처럼 벌어진 격차를 좁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1학년 담임교사로서 나는 기를 써서라도 아이들의 서로 다른 ‘문해력의 뿌리’에 개입하려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공교육의 필요성 또한 여기 있다. 가정에서 각기 다르게 만들어진 ‘문해력 뿌리’의 격차를 줄이고 '모든' 학생들의 기초 문해력이 단단해 지도록 하여 교육의 출발선의 평등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공교육이 현존하는 이유이자 끝없는 교권추락의 현실 속에서도 내가 교사라는 직업의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꽃처럼 아름다운 아이들이 언젠가 깊이 뿌리를 내려 단단하고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그 바람이 나를, 그리고 아이들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