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이야기
코끝에 달콤한 오렌지 마멀레이드 향이 올라온다. 잔에 따라두고 시간이 좀 지나자 마치 요거트에서 나는듯한 향에 군침이 돈다. 한모금 입에 넣자 후추 같은 향신료의 향기와 커피의 늬앙스가 느껴지며 달콤하다. 어디선가 나무의 스모키함도 느껴진다. 목을 넘어가는 느낌은 부드럽지만 단 나무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글렌 모렌지 18 디 인피니타는 그 이름처럼 무한의 복합미가 느껴진다. 맛있다.
글렌모렌지의 증류기는 길이가 5.13m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길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글렌모렌지 증류소는 목이 길어 즐거운(?) 기린을 자신들의 시그니처로 내세우고 있다. 구리 증류기의 목이 길다는 것은 구리와 원액 증기가 접촉할 수 있는 면적이 커져서 불순물과 황을 걸러낼 수 있다는 의미고, 높이 올라가야 하는 만큼 무거운 증기는 걸러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글렌모렌지의 위스키는 가볍고 깨끗하다.
처음부터 가벼운 원액을 만들어내고자 목이 긴 증류기를 제작하고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글렌모렌지 농장에서 남는 보리로 밀주를 계속해서 생산해 오다 1843년 윌리엄 메더슨이 증류소를 인수한다. 하지만 매더슨이 부자는 아니었나보다. 자금이 부족해 새 증류기를 살 수는 없었기에, 진을 생산하던 증류기를 중고로 설치하였는데, 그 증류기가 목이 길었을 뿐이다. 글렌모렌지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가벼운 개성을 지닌 원액을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우연히 산 중고 증류기가 만들어 낸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가 토마시를 만날 때 그녀는 위스키 바에서 일하고 있었다. 평소 책을 읽는 남자를 동경해 왔던 그녀의 눈에 바에서 책을 보고 있는 토마시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때 흘러나오는 노래가 마침 자기가 좋아하는 베토벤의 음악이다. 대화하다 보니 그의 방번호는 그녀가 퇴근하는 시간과 같은 6호실이다. 그들의 만남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보여졌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가 그린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키치에 대한 에세이라고 표현했었다. 키치(kitsch)는 원래 '바르다, 문지르다'를 의미하는 독일어 방언 kitschen에서 유래한 말로 '물감을 아무렇게나 바른 것'이라는 뜻이었다. 19세기 중반, 뮌헨의 미술품 시장에서 팔았던 싸구려 그림들이 바로 키치로 오늘날 '저급한 물건들, 싸구려 모조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19세기 부르주아 사회가 형성되면서 중산층 사람들도 예술을 소비하고자 했고, 키치들이 그들에게 그 욕구를 풀 수 있는 길이었다.
쿤데라는 이런 키치를 사물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이미지로 왜곡하고 신봉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했다. 쿤데라에 따르면 키치는 존재의 확고부동한 동의에서 나온다.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 "신은 똥을 싸느냐"라는 유아적인 질문을 던진다. 종교는 그들의 확고부동한 동의인 신성불가침 때문에 신이라는 존재가 천박하게 똥을 싸면 안 된다고 설명해야 한다. 인간이 신을 닮게 만들어졌다면 신도 똥을 싸야 할 텐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똥을 신성하게 하던지 인간이 신을 닮으면 안 된다. 하나 더 방법이 있다. 똥에 대한 이야기를 터부시하면 된다. 이것이 종교의 키치이다. 이러한 자기 자신, 자기 집단, 자기 사회의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확신은 다른 생각들을 부정하게 되어 관념은 획일화되고 다양성을 부정한다.
키치는 두 가지 감동의 눈물을 흘러내리게 한다. 첫 번째 눈물이 말한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 번째 눈물이 말한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전 인류와 함께 감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두 번째 눈물만이 키치를 키치로 만든다. 모든 인간의 우애는 키치를 바탕으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사비나는 말한다. "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키치에요." 그녀는 자신을 얽매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키치이다. 우리는 절대 키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키치에서 벗어나려고 하더라도 결국 새로운 키치들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만약 모든 키치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면 어떨까? 쿤데라에게 그런 상황은 모든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존재의 가벼움은 참을 수 없다.
지금까지 배반의 순간들이 그녀를 들뜨게 했고, 그녀 앞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그 끝에는 여전히 또다른 배반의 모험이 펼쳐지는 즐거움을 그녀의 가슴에 가득 채워주곤 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모, 남편, 사랑, 조국까지 배반할수 있지만 더 이상 부모도 남편도 사랑도 조국도 없을 때 배반할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을까. 사비나는 그녀를 둘러싼 공허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곧 키치의 독재에 파묻혀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러 키치가 공존하면서 서로를 제한하는 사회에서는 하나의 키치 독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키치에 빠질 수는 있지만 세상에는 절대적인 확고부동함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존재의 가벼움을 인정한다면 다양함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키치에 빠지는 이유는 존재의 가벼움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양각색의 의견이 있으며, 또한 각양각색의 키치도 있게 마련이다. 카톨릭 키치, 개신교 키치, 유대인 키치, 공산주의 키치, 파시스트 키치, 민주주의 키치, 페미니스트 키치, 유럽 키치, 미국 키치, 민족주의 키치, 국제주의 키치.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의 반쪽에 좌익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나머지 반쪽엔 우익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실제로 이 개념이 근거한 어떤 이론 원리에 따라 이 개념의 한쪽을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 정치 운동은 합리적 태도에 근거하지 않고 표상, 이미지, 단어, 원형 들에 근거하며 이런 것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정치적 키치를 형성한다.“ (민음사 p416)
30대 초반 시절 진중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많은 것을 알지 못하기에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척하고 싶었다. 아도르노나 벤야민의 책을 들고 카페에서 읽고 있었고, 20대에는 즐겨 읽었던 알랭드 보통,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글들을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글에는 진짜 진리가 들어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아도르노나 벤야민의 일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글과 함께하는 나란 존재를 만들고 싶었다. 아마 나란 존재의 가벼움을 어렴풋이 느끼고 무게감을 주고 싶었던 것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커피를, 와인을, 위스키를 처음 접할 때도 무거운 느낌의 위스키를 찾았다. 무거운 카베르네 쇼비뇽이나 쉬라를, px 캐스크나 올로로소 캐스크를, 바디감이 무거운 다크 로스팅 원두들을 마셨다. 가벼운 것은 무거움에 물 탄 것 뿐이라고 생각했고, 가벼운 것은 의미가 가볍다고 오해했다.
글렌모렌지 18년은 처음 15년은 미국산 오크 버번 캐스크에서, 그 후 3년을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서 피니시 숙성을 거친다. 2023년 이전에는 익스트림 레어라고 불리었으나 2023년 리브랜딩을 거치면서 디 인피니타라는 코드네임을 얻는다. 글렌모렌지 측은 무한한 복합성을 지닌 이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경이롭고 새로운 풍미를 선사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위스키 바에서 글렌모렌지 18을 마셨을 때 가볍게 시작하지만 너무도 다양한 향이 공존하고 있었다. 가벼움은 의미가 옅음, 의미가 없음과 동의어가 아니었다. 가볍기 때문에 찾을 수 있는 향들, 가볍기 때문에 마실 수 있는 내 기분들이 있다. 무거운 캐릭터만 찾다 보면 나의 기분을 산뜻하게 해줄 꽃향기, 사과향기, 배 향기 같은 캐릭터를 놓칠 수 있다. 무거움만 추구하다보면 가벼움이 주는 캐릭터를 잃듯, 하나의 키치만을 바라보면 세상의 일부를 보지 못하고 살아가게 된다.
기본적으로 위스키에서는 버번 캐스크 숙성 위스키가 가벼운 캐릭터를 갖고, 와인 캐스크 숙성 위스키들은 상대적으로 무거운 캐릭터를 갖는다. 글렌모렌지 18은 15년을 버번 캐스크 숙성을 거쳤기에 기본적으로 가벼운 캐릭터들이 주를 이룬다. 거기에 3년의 올로로소 셰리 숙성으로 복합미까지 더 해진다. 마시기 전 향에서 느껴지는 오렌지 마멀레이드나 자스민 같은 향, 마실 때 느껴지는 견과의 고소함과 약간의 나무 스모키, 그리고 길게 뒤를 끌어주는 달콤함이 그만 무거운척하고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라고 이야기한다.
거대 명품 기업 LVMH가 2004년 이 증류소를 인수하면서 글렌모렌지에는 명품의 이미지가 섞인다. 글렌모렌지 제품에 붙어 있는 문양들이 글렌모렌지의 명품 느낌을 더해준다. 이 문양들은 8세기 말 스코틀랜드 북동쪽, 픽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힐튼 오브 캐드볼 스톤(Hilton of Cadboll Stone)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캐드볼 스톤을 세운 픽트인들은 로마 제국 시기부터 10세기까지 스코틀랜드 지역에 거주하던 부족으로 '몸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란 뜻의 그리스어 Prettanik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명칭대로 그들은 얼굴이나 상체에 푸른 물감으로 문신을 그리고 다녔다고 한다. 영어의 Picture가 여기서 나온 말일까? 실제 캐드볼 스톤은 현재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으로 이동되어 있고, 현재 그 장소에는 조각가 베리 그로브(Barry Grove)가 1998년 재현한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다.
글렌모렌지는 스코틀랜드의 곡창지대를 처음으로 개척한 픽트족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이 문양을 글렌모렌지의 심볼로 삼기로 한다. 위스키는 잉여 작물로 만든 것이 시작이었으니, 곡창지대 개척은 곧 위스키를 만들 수 있게 해줬다는 의미가 아닐까?
존재의 의미는 이렇게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확고부동함을 가져야만 그 존재가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 우리의 존재 역시 어떤 확고부동함을 지녀야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연을 통해서, 또는 스스로 만들어낸 어떤 가치에 의해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살아가다 보면 내가 작아지는 기분에 허무함을, 권태를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자꾸만 더 무거워지려고 노력하다가 지치고, 번아웃이 오고,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나란 존재를, 나의 삶을 가끔은 가볍게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가벼움엔 꽃향기와 과일 향기가 가득할 것이다.
글렌모렌지 한잔해보자.
글렌모렌지 증류소 정보
소유주: LVMH
위치: 하이랜드, 테인지역
의미: 고요의 계곡
역사:
- 1703년부터 농장에서 만들다가 1738년 증류소 건설
- 1843년 윌리엄 매더슨(William Matheson) 농장 인수
- 1849년 증류소 개조후 본격적 가동 시작
- 1887년 제대로 증류 시작
- 1918년 이후 계속 인수당하다가
- 2004년 LVMH 인수, 리브랜딩
물: Tarlogie Spring (경수)
글렌모렌지 10년을 기본으로 캐스크 피니쉬를 함
1981년부터 증류소에서 위스키를 생산하는 인원을 16명으로 한정하는데, 이들을 증류소가 위치한 지역명인 테인(Tain)의 이름을 따 "테인의 16인"이라고 부르며 캠페인화 함
문양들은 8세기 말 스코틀랜드 북동쪽, 픽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힐튼 오브 캐드볼 스톤(Hilton of Cadboll Stone)에서 영감을 받음
글렌모렌지 18 디 인피니타 테이스팅 노트(출처: 데일리샷)
- 향: 캐러멜, 오렌지 마멀레이드, 자스민, 허니서클
- 맛: 오일리, 견과류, 향신료, 무화과, 우드 스모크
- 여운: 긴 여운, 달콤한, 말린 과일, 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