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동 May 02. 2024

카트에도 배려가 있다.

본디 사소한 것이 쌓이다 보면 의아해진다.

의아해지는 것들에 답을 찾다 보면

서운해지고 억울해지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너무 사소한 것들이라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 경우엔 마트에 갈 때의 장바구니와 카트가 그 경우였다.




우리 집은 음식을 꽤 많이 먹는 편이라

대형마트를 자주 간다.

장바구니를 2-4개 정도를 들고.


빈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에 도착하면 밖에 있는 카트를 챙겨 오고,

장본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옮기는 건

왠지 모르게 내 몫이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그 일에 별로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하물며 우리가 가는 코스트코는 외부에 카트가 있는데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남편은 핸드폰을 보고 있고, 

난 빈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밖으로 뛰어나가 카트를 끌고 왔었다.


하녀 근성이 있었나.


집에 올 때는 또 어떤가.

신혼 초 그 사람은 평생을 운동을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인지라

무거운 짐을 들기도 버거워했었다.


그래서 난 늘 먼저 뛰어가서 공동 현관문을 열어놓고,

그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고,

무겁지 않은지 살피고 도와주려 애쓰곤 했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세월들이 어느덧 10여 년이 지나

어느 날 평소처럼 마트를 향했다.


난 빈 장바구니를 주섬주섬 차에서 들고 내리고,

평소처럼 그 사람은 차키를 들고 저만치 가서 서있고,

나는 카트를 가지러 가다가

갑자기,

문득,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날씨가 화창해서 그랬을까.

어떤 다정한 부부를 봐서 그랬을까.

왜인진 모를 일이다. 


그때부터 그냥 빈장바구니가 내 눈에 밟히기 시작했고,

카트를 가지러 가기 싫었지만

사소한 일이었고, 늘 내가 해왔던 일이라

말하기 치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여전히 난 빈 장바구니를 어깨에 둘러메고,

카트를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한 번 의식하고 나니 

왜인지 자꾸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다가 카트가 무거워지면 

나에게 카트를 앞쪽에서 끌어달라고 하고

남편은 카트를 밀었다. 

그 편이 사람 많은 마트에서 움직이기 수월하다고. 


난 미는 쪽이 편했다.

끄는 쪽은 턱에 걸리면 카트가 무거워져서 방향 조절도 어렵고,

팔목도 아파서 힘들다고 했더니 

그게 더 쉬운 거라며, 쉬운 걸 하게 해 줘도 왜 못하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작은 한숨에 생각했다.

카트에도 배려를 담을 수 있구나.

그 어떤 사소한 거에도 배려는 담을 수 있는 거였구나.




이제는 남편에게 많은 걸 이야기하는 편이라

최근에 마트에 가면서

장바구니와 카트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동안 참 사소한 것 같아서 말을 안 했는데"

"응, 뭔데?"

"이 장바구니 말이야, 왜 당신은 한 번도 안 들어줘?"

"어떤 거? 내가 항상 들잖아?"

"무거울 때 말고, 비어있는 거 말이야. 이건 왜 항상 내가 들고 가야 해?"

"아니, 난 항상 자기가 들길래. 남자는 이런 거 들면 안 되는 거야, 머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했지."

"머라고?"

"당신, 아들한테도 이런 거 안 시키잖아?"

"난 자기가 안 하니까 아들하고 가면 늘 이런 거 들라고 시켜. 일부러, 당신 보라고."

"그랬어? 난 못 봤는데. 알았어. 난 진짜 몰랐어. 자기가 좋아서 하는 줄 알았어. 앞으론 내가 들께. 이게 뭐라고."

"그러니까 말이야. 이게 뭐라고. 이런 사소한 게 십 년 넘게 당연하게 하다 보니까 날 참 초라하게 만들어."

"얘기를 하지 그랬어."

"그러게 말이야."


그리고 내친 김에 마트를 나오면서 말을 이어갔다. 


"아! 그리고 또 생각났다."

"또, 왜, 뭐, 내가 뭘"

"카트 말이야. 이거 앞에서 끄는 거 난 정말 너무 힘들어."

"그게 더 쉬운 거라니까."

"아냐, 난 팔목 아파서 더 힘들고 앞에 사람들도 많은데 헤치면서 가야 되잖아."

"아닌데 그게 더 쉬운데."

"그럼 당신이 해 그게 더 쉬우면. 난 미는 게 더 쉽다니까. 내가 잘 못하니까 당신 막 한숨 쉬고 그랬잖아."

"내가? 내가 언제? ㅎㅎㅎ 아니, 잘 좀 하지 그랬어."

"... 머라고?"

"아냐 아냐 ~~"




이렇게 웃으며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기까지

우린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건너왔을까.

그리고 사실 그 안에 내 눈물이 얼마나 많았을지

그 사람은 알까.


이런 이야기들을 진작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었지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도 난 알고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내가 지금 내 마음을, 감정을 전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이 많이 변했다는 뜻일 거다.

나 역시 많이 변했겠지만

그 사람이 변한 게 가장 큰 변화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때나 지금이나 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못했을 사람이니까.

들리지 않았을 사람이니까.

이제는 나 역시 변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 시작은 날 초라하게 만드는

이런 작은 사소함들의 이야기가 좋을 듯하다.




"부부의 말" 연재는 매주 "일요일"에만 연재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이전 18화 버리는 마음, 담고 싶은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