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사소한 것이 쌓이다 보면 의아해진다.
의아해지는 것들에 답을 찾다 보면
서운해지고 억울해지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너무 사소한 것들이라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 경우엔 마트에 갈 때의 장바구니와 카트가 그 경우였다.
우리 집은 음식을 꽤 많이 먹는 편이라
대형마트를 자주 간다.
장바구니를 2-4개 정도를 들고.
빈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에 도착하면 밖에 있는 카트를 챙겨 오고,
장본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옮기는 건
왠지 모르게 내 몫이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그 일에 별로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하물며 우리가 가는 코스트코는 외부에 카트가 있는데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남편은 핸드폰을 보고 있고,
난 빈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밖으로 뛰어나가 카트를 끌고 왔었다.
하녀 근성이 있었나.
집에 올 때는 또 어떤가.
신혼 초 그 사람은 평생을 운동을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인지라
무거운 짐을 들기도 버거워했었다.
그래서 난 늘 먼저 뛰어가서 공동 현관문을 열어놓고,
그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고,
무겁지 않은지 살피고 도와주려 애쓰곤 했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세월들이 어느덧 10여 년이 지나
어느 날 평소처럼 마트를 향했다.
난 빈 장바구니를 주섬주섬 차에서 들고 내리고,
평소처럼 그 사람은 차키를 들고 저만치 가서 서있고,
나는 카트를 가지러 가다가
갑자기,
문득,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날씨가 화창해서 그랬을까.
어떤 다정한 부부를 봐서 그랬을까.
왜인진 모를 일이다.
그때부터 그냥 빈장바구니가 내 눈에 밟히기 시작했고,
카트를 가지러 가기 싫었지만
사소한 일이었고, 늘 내가 해왔던 일이라
말하기 치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여전히 난 빈 장바구니를 어깨에 둘러메고,
카트를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한 번 의식하고 나니
왜인지 자꾸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다가 카트가 무거워지면
나에게 카트를 앞쪽에서 끌어달라고 하고
남편은 카트를 밀었다.
그 편이 사람 많은 마트에서 움직이기 수월하다고.
난 미는 쪽이 편했다.
끄는 쪽은 턱에 걸리면 카트가 더 무거워져서 방향 조절도 어렵고,
팔목도 아파서 힘들다고 했더니
그게 더 쉬운 거라며, 쉬운 걸 하게 해 줘도 왜 못하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작은 한숨에 생각했다.
카트에도 배려를 담을 수 있구나.
그 어떤 사소한 거에도 배려는 담을 수 있는 거였구나.
이제는 남편에게 많은 걸 이야기하는 편이라
최근에 마트에 가면서
장바구니와 카트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동안 참 사소한 것 같아서 말을 안 했는데"
"응, 뭔데?"
"이 장바구니 말이야, 왜 당신은 한 번도 안 들어줘?"
"어떤 거? 내가 항상 들잖아?"
"무거울 때 말고, 비어있는 거 말이야. 이건 왜 항상 내가 들고 가야 해?"
"아니, 난 항상 자기가 들길래. 남자는 이런 거 들면 안 되는 거야, 머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했지."
"머라고?"
"당신, 아들한테도 이런 거 안 시키잖아?"
"난 자기가 안 하니까 아들하고 가면 늘 이런 거 들라고 시켜. 일부러, 당신 보라고."
"그랬어? 난 못 봤는데. 알았어. 난 진짜 몰랐어. 자기가 좋아서 하는 줄 알았어. 앞으론 내가 들께. 이게 뭐라고."
"그러니까 말이야. 이게 뭐라고. 이런 사소한 게 십 년 넘게 당연하게 하다 보니까 날 참 초라하게 만들어."
"얘기를 하지 그랬어."
"그러게 말이야."
그리고 내친 김에 마트를 나오면서 말을 이어갔다.
"아! 그리고 또 생각났다."
"또, 왜, 뭐, 내가 뭘"
"카트 말이야. 이거 앞에서 끄는 거 난 정말 너무 힘들어."
"그게 더 쉬운 거라니까."
"아냐, 난 팔목 아파서 더 힘들고 앞에 사람들도 많은데 헤치면서 가야 되잖아."
"아닌데 그게 더 쉬운데."
"그럼 당신이 해 그게 더 쉬우면. 난 미는 게 더 쉽다니까. 내가 잘 못하니까 당신 막 한숨 쉬고 그랬잖아."
"내가? 내가 언제? ㅎㅎㅎ 아니, 잘 좀 하지 그랬어."
"... 머라고?"
"아냐 아냐 ~~"
이렇게 웃으며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기까지
우린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건너왔을까.
그리고 사실 그 안에 내 눈물이 얼마나 많았을지
그 사람은 알까.
이런 이야기들을 진작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었지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도 난 알고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내가 지금 내 마음을, 감정을 전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이 많이 변했다는 뜻일 거다.
나 역시 많이 변했겠지만
그 사람이 변한 게 가장 큰 변화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때나 지금이나 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못했을 사람이니까.
들리지 않았을 사람이니까.
이제는 나 역시 변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 시작은 날 초라하게 만드는
이런 작은 사소함들의 이야기가 좋을 듯하다.
"부부의 말" 연재는 매주 "일요일"에만 연재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