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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동 May 05. 2024

[삐졌어?]라는 마법의 단어

변기가 막혔다.


아마 손이 여물지 않은 막내가

화장지를 잔뜩 넣었으리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어찌저찌 해결은 했지만

(내내 아들과 내가 용쓰다가 결국 남편이 업자를 불렀으니 남편이 해결한건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사무실로 쓰고 있는

오피스텔의 화장실도 막혀버렸다.

잠시 차를 빼러 간 사이에

청소를 해주겠다고 나선 막내가 물티슈를 넣은게 아닐까 싶다.


   해결하려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그 사이 남편이 왔다.


난 시험이 끝난 아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가 있었고

짜증이 있는대로 난 남편에게선 카톡이 와있었다.


"대체 뭘 넣은거야? 누구야? 교육 좀 시키라니까"


기분 좋게 나섰다가 카톡을 보고 밥 맛이 뚝 떨어진 나는

사무실 근처에서 밥을 먹었지만

남편에게 들리지도 않고 

카톡에 답장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사춘기 아들하고도 요즘 날 선 분위기로 대화를 이어가느라

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기며 꼭 필요한 말만 하며 밥을 먹던 터였다.




편이 나한테 짜증을 내서 화가 아니었다. 

사춘기 아들이 나에게 툴툴거리며 말을 해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당연히 내가 막내 교육을 시키지 않았을거라 믿고 

툭툭 배려없이 내뱉는 그 사람의 말이 지독히 싫었다.

언제나 나를 믿지 못하는 날 선 말들이 싫었다.


당연히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거라 믿고 말하는

자기 중심적인 그 사고 방식이 그 날따라

서러울 정도로 싫었다.


일이고 머고 그냥 다 당신 알아서 하라고

공부고 머고 다 너 알아서 하라고

나도 나 알아서 살테니 서로 찾지 말자고 

말하고 떠나고 싶어질만큼

그냥 우울했다.


남편은 남들과 평범하게 똑같이 키우고 싶어하지만

막내는 특수성이 있는 아이이고

가르침에 조금은 힘듬이 있는 아이이다.

보듬어 가고 있지만

남들이 비해 느리게 보듬어 가야하는 아이이다. 


그런 아이에게 한 번 말해서 해결이 될거라고 생각을 했던걸까.


사실 변기가 막힐 때마다 해결을 한 건 나였다.

집 안에 일들이야 같이 해결해 나가고

남자가 많은 일을 해결해나가겠지만

귀찮거나 더럽거나(?) 손이 자주가는 일들은

내가 해결할 때가 많았다.

아들이 크고 나서는 아들이 나설 때도 많았다.


이러한 억울함들이야 많았지만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번에도 난 말을 꺼내기로 했다.


다음 날 맥주 한 잔을 하며

꾹꾹 눌러 남아 한 마디를 건냈다.


"내가 막내한테 말을 안했다고 생각해서 그런 카톡을 한거야?"

"응"

"..."

"나도 짜증이 나서 그랬어."

"알았어. 그래 짜증 많이 났겠네."

"아 왜 ~ 삐졌어?"


그래.

 난 저 말도 참 싫다.

내 모든 감정을 나타내는

[삐지다]라는 마법의 단어. 


아름다운 우리 말에는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 많다.


서운하다.

화가난다.

짜증난다.

억울하다.

답답하다.

불편하다.

서럽다.

허전하다.

공허하다.

울적하다.

울컥하다.

속상하다.

불쾌하다.

불안하다.

편치않다.


그 모든 감정들을 아울러 어떻게 "삐졌냐"고 퉁쳐서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삐진게 아니고 어떻게 내가 막내한테 이야기를 안했다고 단정해서 생각할 수가 있는지, 

나한테 그정도의 믿음도 없는건지 이해가 안가서 그래. 그건 삐진게 아니고 화가 난거야."


"그게 그거지 머, 나도 짜증나서 그랬다고."



어쨌든 우리의 대화는 각자의 마음에 앙금이 남은 상태로 마무리 되었지만

내 생각에 자기중심적이기만 한 그의 의사소통 방식이,

이제 지쳐버린 나의 마음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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