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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동 May 12. 2024

비 오는 날에는 늘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어제는 비가 한참 내렸다.

비가 오는 날에는 늘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남편은 지금은 잊었길 바라겠고,

어쩜 내가 이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못할 테지만


남들 앞에서는 잘 울지 않는 내가

아는 언니를 붙잡고 펑펑 울었던 날을 내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사 오고 가장 힘든 건 교통편이었다.

그리고 아이들 병원.

원래 이사 후에 엄마들이 제일 신경 쓰는 건 아이들 병원이 1순위일 테다.

동네 병원들을 죄다 한 바퀴 돌아봐야

여기는 항생제를 남발하네 ~ 

여기는 항생제를 너무 안 쓰네 ~

여기는 의사가 별로네 ~

여기는 간호사가 별로네 ~ 

등등 결국 엄마 마음에 드는 병원에 안착하게 된다.


문제는 그렇게 찾은 병원이 꼭 집이랑은 거리가 멀다는 것. 


당시에 나는 운전을 못했고

집에서 병원까지 가는 버스도 없었다.

남편은 택시 타고 다니라고 했지만

여긴 오지산골은 아니지만 눈 오면 배달도 안 오는 지역이다.


(지금은 지하철역도 연결되고 많이 좋아졌지만 

처음 이사 왔을 때 배달도 안되고 택시도 안 왔을 때의 문화충격이란...)




폭우가 내리던 여름에 택시가 잡힐 리 없었다. 

처음엔 잡히겠지 하며 30여분을 넘게 기다리다

결국 차로 15분 밖에 안 되는 거리를 버스로 돌고 돌아 1시간이 넘어 도착했다.

병원에서 대기, 약국에서 대기, 다시 택시가 혹여 있을까 대기하다

결국 다시 1시간 넘는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을 했는데


문제는 그 사이에 일어났다.


난 남편에게 평소 전화를 잘하지 않는 편인데

(여기에도 사연이 있지만 일단 패스....'ㅇ')

남편은 중간중간 한 번씩 전화를 하지만 내가 받질 않으면 짜증을 많이 냈다.

"뭐 하느라 전화를 안 받아"

"그래도 전화는 받아야지"

"전화를 한 번도 확인을 안 했다고? 말이 안 되잖아"

그 사람은 항상 자기 기준이었고

전화를 안 받은 나는 늘 죄인이었다.


그래서 부재중 그의 전화는 늘 나를 두근거리게 만드는 편이다.

(좋은 건가?)


아기띠를 하고 또래에 비해 과다체중인 아이를 안고, 

기저귀에 여벌 옷까지 바리바리 챙긴 백팩을 메고,

한 손에는 우산을, 한 손에는 큰 아이 먹일 간식을 사들고

뭐였는지 모르지만 1층 언니에게 전해줄 무언가도 들고 있었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안고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카드를 찍고 오르내리고 우산을 폈다 접었다

암튼 그 험난한 여정에 내가 핸드폰 확인 할 사이가 어디 있었을까.


벨소리를 들은 건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고

이미 남편은 여러 번 전화를 했던 터였나 보다.

우산을 어깨와 귀 사이에 끼고 전화를 받으니

대번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뭘 하느라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아, 전화했었어? 병원 갔다가 이제 버스에서 내렸어."

"전화소리가 안 들려? 그 정도면 전화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부재중을 보면 전화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몰랐다니까. 애는 보채고 버스는 타야 되고 비도 오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

"몰랐다는 게 말이 되냐고."

"아니, 당신이 애 안고 비 오는 날 버스 타봤어? 정신이 하나도 없다니까."

내가 버스를 왜 타. 난 그럴 일이 없어.




십 년도 더 지난 지금, 쓰고 있는 지금은 화가 뻗히는데

그날은 유독 서러웠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1층에 사는 언니에게 전해줄 게 있어서 벨을 누르는데

언니가 인터폰 속 내 모습을 보고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세상에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어딜 다녀오는 거야 

애기 병원? 언니한테 말하지. 차로 가면 금방이잖아. 이 미련한 것아.

춥다 추워 ~ 들어와 잠깐이라도 들어와 몸 좀 녹이고 가

비 와서 전 부치고 있었어.


무언가를 전해만 주고 금방 가려던 내가 언니의 그 속사포 같은 한 마디에 

현관 앞에서 그만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내 마음의 응어리가 많이 풀려서 이 날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 사람은 기억하지 못했으며

자기가 그럴 리 없다는 말을 하며 장난스레 넘겼지만


아마 그날 이후 남편에게는 꼭 해야 할 말 외에는 잘하지 않게 된 

계기가 사건이었던 같다.


남편은 늘 자기중심적 화법이 먼저인 사람이고 자기 상황이 먼저인 사람이다.

난 따지자면 배려하는 사람인 쪽이지만

그래도 마누라가 비 오는 날 그것도 폭우가 쏟아지는 날

우산 들고, 애 안고,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서서 갔는지, 앉아서 갔는지

급하지 않으면 나랑 주말에 가면 안 됐는지 등등

생각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었을까

그 정도 배려는 꼭 배려하는 사람이어야만 할 수 있는 생각 인 걸까


그 상황에서 

난 버스탈 일이 없는 사람인데

왜 그런 생각을 해봐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했던 이 남자




어젠 비가 오길래 (사실 내가 먹고 싶어서) 파전을 사들고 사무실로 가니 

"비 오는데 고생스럽게 멀 이런 걸 사 오고 그래"

"고생은 차가 했지 난 전화 해놓고 찾으러 간 거밖에 없어 흐흐흐"

하며 웃으니

왔다 갔다 하는 게 고생이지 고마워


하는 이 남자

그때 그 남자랑 같은 남자가 맞나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 하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사는 결혼이라는 게 쉬운 것도 아니지만

내리 평생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부부 관계도

무언가를 기점으로

무언가의 이끌림으로

교차점을 지나고 있구나 느끼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평생선은 만나지 않지만 두 줄이다.

한쪽만 외롭게 가고 있지 않다.

다른 한쪽도 아마 외롭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을 테다.

부부라는 평생선은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분명 중간중간 서로를 바라보다 어느 기점에서는 

외롭지 않게 교차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양쪽 모두의 노력과 이해가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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