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3년 남짓, 부부로 14년을 살았지만 나는 늘 그 사람이 낯설다.
10년이 넘어갈 즈음 진지하게 이혼에 대해 생각했었지만 말을 꺼내본 적은 없고 주말부부를 하게 되며 본의 아니게 서로의 시간을 가지며 위기를 잘 넘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떨어져 지낸 4년 만큼 우리의 대화엔 공백이 생겼고 각자의 마음은 회복했지만 대화가 부족했던 우린 서로에게 이해되지 않는 말들로 살아가게 된 것 같다.
살면서 대화라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한건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었을 때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40이 되어서였던 것 같다.
내가 우리의 대화와 나의 생각을 기록하고자 한 이유는, 그 사람의 잘못이나 말재간을 흉볼 마음이 아니라 우리의 대화를 통해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욱해서 내뱉는 말들, 생각없이 던졌던 말들, 농담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일이 커진 일들. 말로 인한 마음 상함은 비단 나의 문제만은 아닐거다. 그 사람도 상처받고 극복하고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서로를 위해 하지 않는 말들이 있을테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우리의 말들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나를 성장시켜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대화(대할 대對 말씀 화話):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
난 싸우는 것을 싫어한다. 완벽한 회피형 인간임이 틀림없다.
문제를 마주보는 데 두려움이 있고 한 가지 일에도 마주하거나 행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큰 소리 나는 것도 싫고 나로 인해 사람들이 마음 상하는 것도 싫다.
그렇다고 내 마음을 졸이며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는 스타일은 또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지만 선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현실을 직시한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해결하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사람들이 말을 하면 해결해주고 싶어하지만 그 해결해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오로지 나로 국한된다.
말하는 그대로 해석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말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 역시 자기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도 하는걸 남들이 하지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우리가 대화라는 걸 제대로 해보지 못한 이유는 결국 나 때문인 것 같다.
난 원하는 바를 잘 표현하지 못했고 그저 하자는 대로 하는 걸 좋아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사람이 나의 거절로 인해서 싫어할까봐 그냥 아주 싫은게 아니라면 그냥 모두 yes였다. 그래서 불편함을 참는 건 늘 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판도가 바뀌기 시작한건 남편이 내 말을 들어준다고 느꼈던 4년의 주말부부를 끝내고 변화된 그의 모습을 본 후였다. 자기 멋대로 살던 그는 내 말을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생각도 많이 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예전에 비빔밥을 만들다가 간이 너무 짜다고 하길래
"이런거 사랑과 전쟁에 나왔어. 40년동안 음식에 조금씩 짜게해서 남편을 죽게만든다는."
물론, 웃자고 한 이야기다.
40년 동안 음식을 짜게해서 죽게 만드는게 암살인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저 농을 건냈던 것 뿐인데
"나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거야?"
"아니 엊그제 유튜브 보다가 봤는데 생각이 났어. 40년이 무슨 암살이야, 웃자고 한 말이지"
"넌 왜 그런 걸 농담이라고 하냐?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잖아."
"..."
이런 식이었다면 최근에는 그래도 먼저 이런 식의 농담도 할 줄 아는 남자가 되었달까.
그래서 안심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