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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동 Mar 10. 2024

대화가 필요해

내가 이러한 부부관계에 대해 심적으로 힘들다고 말을 하면 주변에선 묻곤 한다. 

"연애할 때도 그랬어?"




우린 3년 가까이 연애를 했고 부부로도 벌써 14년을 살고 있다. 

연애 때를 떠올려보면 사실 이 남자는 변한 부분이 없다. 

변한 건 사실 나인 것 같았다. 


그 때는 MBTI가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INFP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는 

나를 제대로 잡고 이끌어가는 사람에게 끌렸고 남편은 너무나 걸맞는 사람이었다. 

나는 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통통 튀어다니는 농구공 같았고 

그런 나의 모습이 스스로도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내 뜻을 따라주고 나에게 휘둘려주는 자상한 남자들에게서는 항상 무언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지금 남편을 만났을 때 이 사람은 마치 나를 꽉 잡고 날 이끌어주는 사람 같이 느껴졌고 

그게 큰 안정감을 주었고, 결혼할 이유가 되었다. 

(결혼한 이유가 결국 이혼한 이유라던데...)


10년 동안의 육아와 가사를 반복하며 살다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도 여기저기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다보니 

잃어버렸던 나의 자아가 다시 꿈틀대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나의 모습을 다시 찾아가니 집안에 생기가 돌았지만 

우리 사이는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내 마음과 의견을 내기 시작하니 이 사람은 내가 대체 왜이러는지 알지를 못하는 눈치였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그래서 우리 사이엔 혼란으로 메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혼도 고려했으리라. 


10년 동안 상대방의 의견에 따라 살았다곤 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사실 억울할 수도 있다. 

항상 내 의견을 물어봤고 난 그저 당신이 좋을대로 해 라는 말로 나의 의견을 대신했다가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그냥 다 싫다고 하니 

그 사람 입장에선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어느 토요일 밤에 내가 서점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니 남편이 내일은 거기 가보자고 먼저 말을 꺼내온다. 

서점같은 데는 딱 질색하는 남편이 먼저 가자고 하니 난 정말 좋았는데 

다음 날 낮 2시가 되어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아이들 밥에 청소에 설거지 이야기를 하길래 

어젠 그냥 지나가는 말로 했나보다 싶어서 나도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막 고무장갑을 끼는데 언제 나가냐고 묻는다. 


"거기까지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언제 가서 둘러보고 언제 돌아와. 

나보고 설거지하고 가자길래 나갈 생각이 없는 줄 알았지. 설거지만 다해도 3시가 넘어."

"아니, 안나갈거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준비 다하고 있는 나는 생각안해?"

"나갈 생각이었으면 오전부터 갔어야지. 이제가서 언제 들어와."

"그거 다 둘러보고 오는데 3시간 정도면 되지 지금 나가도 충분하잖아. 그리고 무슨 설거지가 1시간이나 걸려"

"우리집은 원래 설거지하면 1시간은 걸려, 해먹는게 많아서. 그리고 이왕 나갔으니 책도 좀 읽고 구경도 좀 하고 와야지 왔다갔다 하는 시간보다 적게 있을거면 머하러 가 됐어 담에 나혼자 가면되니까 신경쓰지마."


그러자 남편은 다시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안방에 문을 닫고 들어가서 TV를 보기 시작한다. 

분명 화가 난 거 같은데 난 짜증을 내며 말한 것도 아니고 가기 싫은 데 안가도 된다고 좋게 말한건데 왜 화를 내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설거지를 끝내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말을 걸었다.

"화 났어? 왜 화가 나?"

"..."

"아니, 가기 싫어하는 거 같은데 머하러 같이 가. 그냥 나중에 나 혼자 가도 된다니까."


한참을 말이 없이 앉아있던 남편이 

"이게 중년의 위기인가? 얘기 좀 해."

"중년의 위기까지야 머... 난 당신이 가기 싫어한다고 생각했어. 자기 가고 싶은데 가면 오전부터 일어나서 애들 밥도 빨리 해주고 설거지도 나중에 갔다와서 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서점은 왜 후딱 가서 돌고 오려고 해? 난 그러기 싫어. 가서 책도 맘껏 보고 싶고 좀 더 머물다 오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언제 나 가고 싶은데 가면 그렇게 했어?"

"당신 백화점 좋아하잖아. 저번에도 백화점 가자고 하는 날이면 오전부터 나 채근하면서 빨리 가자고, 백화점 문 열기도 전에 도착하는 당신이야. 가서 한나절 있는 건 일도 아니고 애들밥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다 챙겨놓는 사람이잖아."

"난 그런 적이 없는데?"

"그랬어. 당신이 기억 못하는거지. 자기 같이 가고 싶은데는 같이 가. 난 내가 가고 싶은데 따로 다니면 되니까. 이건 머 억한 심정에서 하는 말도 아니고 이제 그런게 더 서로에게 편한거 같아."

"난 그러는거 싫어. 중년되서 다들 각자 좋아하는 데 각자 다니고 한다는데 그게 무슨 부부야. 난 당신이랑 같이 다니고 싶어. 근데 당신이 뭐가 좋은지 뭐가 싫은지 얘기를 안해주니까 난 다 내가 좋은데로 하잖아. 당신이 싫어하는 걸 말해주면 내가 노력해볼께."


그런 대화를 하다가 사실 좀 놀랐다. 

사실 우리가 싸우지 않고 10분 이상 대화같은 대화를 이어간다는 사실에 놀랐고, 

10여년 간 난 포기가 쉬운 사람이었고, 난 늘 그 사람이 제멋대로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사람도 결국 나를 위해 이거 하자 저거 하자하며 그 사람 식의 응석 아닌 응석을 부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그 사람은 30년 넘게 독불장군처럼 살아왔었고 그 환경을 이제와 내가 바꿀 수는 없다. 

기본적인 배려가 몸에 배지 않는 사람이었고 어떻게 소통하는지 어려워하는 사람이구나 싶은 마음으로 바라보며 무엇보다 이제 그 사람도 자신의 모습에 변화를 원하고 대화를 원하며 바뀌어가려 노력하는 모습이 사실 기특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 나 역시 내 성격을 바꿀 수는 없어 그냥 참는 것 뿐이야. 

하며 바꿔가려 노력하는 그 모습을 보며 

난 현명한 어른이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꽁꽁 숨겨놓았던 마음들을 조금씩 풀어가며 

그렇게 서로 남은 인생을 맞추며 살아야하는 건 아닐까. 


항상 우울하고 배려없는 날만 있는 건 분명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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