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이의 두 돌을 준비하며

by 뿌리와 날개

빈이의 두 번째 생일이다.


외국에 살아도 첫 돌은 다들 자그마한 돌상이라도, 하다못해 셀프 돌복 사진이라도 찍어주던데, 우리 빈이는 돌상조차 받지 못했다.


언제나 마음에 걸렸고, 생각할 때마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두 번째 생일만큼은 꼭 제대로 치러주리라 결심하고 몇 달 전부터 베아테와 계획해왔다.


집도 작고, 마당도 없는데 부르고 싶은 친구들을 다 부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것 같아 정말로 친한 친구들만 골라 불렀다.


그래서 초대한 아이들은 마라, 핀, 리프케, 희야, 밀라, 조안나 여섯 명이다. 아이 생일인데 너무 내 친구들 위주로 부른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하다.


빈이 친구들인 놀이방 아이들도 부르려고 했었는데, 알다시피 이렇게 잘려서......

차라리 잘됐다.


걔네들 빼고도 6명에 엄마들까지 오면 12명, 형제자매 끼면 15명에 나랑 빈이, 베아테까지 어이쿠.


방금 쓰면서 나도 이제야 세보았는데 18명이다.


음... 괜찮겠지.

나 사는 형편 다들 모르는 거 아닌데.


그나마 이번에 인테리어 바꾸며 제일 큰 방에 빈이 놀이방을 꾸며줘 다행이다. 아이들은 거기에 때려 넣고 어른들은 거실에서 놀면 될 것 같다.


그동안 독일에서 아이 생일파티는 세 번 초대받아봤다. 각자 특징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 맘에 드는 것들만 뽑아다 활용하고 있다.


그 밖의 독일식 파티 매너는 베아테가 도와줄 것이다. 베이킹 못하는 나를 대신해 생일 케이크도 구워오시니 다행이다.


파티를 준비하며 베아테랑 나랑 둘 다 아주 흥분해있다. 너무 재미있을 거라며!


집안 인테리어까지 바꾼 터라 내 친구들조차도 엄청 흥분해있다. 다들 궁금해 죽겠다고 한다.








빈이는 1월에 키가 많이 컸다. 더 이상 86 옷이 맞지 않는다. 신발도 23으로 바꿔주었다.


2월에는 말이 트였다. 18-21개월까지 말이 정말 많이 늘었는데 22개월부터는 문장으로 쏟아내더니, 23개월 들어서면서 동화책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외우기 시작함과 동시에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말을 배울 때 문장이 그런 식으로 트인 다는 걸 아이를 통해 알았다.


처음에는 소리를 따라 하더니, 그다음에는 단어를 따라 하고, 그다음에는 원하는 단어를 내뱉다가, 그다음에는 문장을 따라 하고, 그러면서 아는 단어들을 이어서 긴 단어나 어설픈 문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러 단어를 자연스럽게 붙여 쓰면서 어설픈 문장이지만 정보들이 더 많이 담기고, 책을 외우면서부터는 완벽한 문장을 외웠다 적재적소에 사용했다.


그러면서 언어구사력이 폭발적으로 늘더니 이제는 자기가 원하는 문장을 너무나 매끄럽게 만드는 게 아닌가.


특히 시간 부사와 현재, 과거 시제를 정확하게 알고 쓰면서 문장이 아주 자연스러워졌고, 의문문을 만들 줄 아니 아이가 대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아기가 아니라 이제는 대등한 하나의 인격체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면,


- 엄마, 계속 안아줘.

- 엄마, 우리 같이 책 보자.

- 엄마, 오늘 빵 먹을까?

- 엄마, 아까 볶음밥 먹었지!

- 엄마, 토끼 아니고 여우지!

- 엄마, 다니엘 아저씨 어저께 사다리 올라갔지!

- 엄마, 물 마시고 싶어요. 물 주세요.

- 엄마, 하빈이 배고파요. 우리 이제 밥 먹을까?

- 엄마, 잘 잤어? 하빈이 잘 잤어.

- 엄마, 괜찮아? 하빈이 엄마 눈 아팠어?(엄마, 하빈이가 엄마 눈 아프게 했어?) 미안해.

- 하빈이 소리 질렀지. 엄마 화났지. 소리 지르면 안 돼!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 뭐 거의 어린이나 다름없다. 특히 어저께, 아까, 방금, 이제와 같은 시간 부사를 정확히 사용할 줄 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아이들은 시계를 볼 줄 알기 전까지 시간 개념이 없다는데 이걸 감으로 아는 건지 어쩐 건지...








책을 외는 것도 재미있다.


한 번은 나 때문에 통로가 막히자, "비켜주세요, 엄마"하길래 "응, 알았어." 하고 비켜줬는데 나를 지나가며 바로 이어서 하는 말이, "불났어요!" 아닌가!


동화책에서 배운 문장을 그대로 이어서 써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나자 문장을 매끄럽게 구사하기 시작했다.


문장이나 글을 통째로 외우는 것은 아주 흔하면서도 효과적인 외국어 공부방법인데, 모국어든 외국어든 말이 트이는 데는 역시 문장을 통째로 암기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나 보다.


그리고 빈이는 인형놀이나 소꿉놀이를 하면서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만들며 놀고, 장난감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인형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가,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라던가 "여우 젤리 곰 먹고 싶어? 자, 여기" 이런 식이다. 옆에서 구경하면 정말 재밌다.


그리고 레고를 가지고 놀 때는 "쾅쾅쾅! 망치!! 망치다!! 두두두두두 보마쉬네~(드릴) 두두두두!!! 슈우우우우우~ 청소기~~" 이러면서 논다.








나는 그전까지는 아이에게 절대 독일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데 필요한 간단한 문장은 독일어로 알려주고, 특히 단어는 꼭 한국어와 독일어 두 개를 알려준다.


왜냐하면 내가 일부러 알려주지 않아도 어차피 아이가 스스로 찾아서 배운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알려주지 않은 독일어 단어들은 주변 독일 사람들을 통해 들으면 기억해뒀다가 내가 한국말로 단어를 알려주면 꼭 자기가 아는 독일어와 매치를 시켜 나에게 확인했다.


어떤 단어라도 자기가 아는 것이면 늘 한국어와 독일어로 두 번 말을 하고, 아는 독일어가 없으면 자기가 생각했을 때 비슷한 독일어를 대입시켰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아이가 찾아낸 비슷한 독일어 단어를 정확하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빈이는 독일어와 한국어를 전혀 혼동하지 않고 비슷하게 배워나가고 있다.


또 독일어 노래도 혼자 노래책을 듣고 배우길래 가르쳐줬다. 혼자서 부를 때는 후렴구만 2주가 넘도록 부르더니 가르쳐주니 세 번 만에 완창을 했다.


빈이가 제일 잘 부르는 독어 노래는 "Bruder Jakob"이다. 한국어 노래는 비행기, 달, 오리 꽥꽥, 곰 세 마리,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자전거, 작은 별 등이다.


그리고 같은 멜로디에 자기 마음대로 가사도 붙여 부른다. 이것도 정말 웃기다.


특히 달이랑 작은 별 멜로디는 모든 상황, 모든 가사에 전부 갖다 붙여 부르는데, 바꾸는 가사는 주로 Gummibärchen(젤리 곰), kakaomilch(핫초코), Schokolade(초콜릿) 등으로, 먹고 싶지만 결코 먹을 수 없는 화자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노래한다.








말장난도 엄청 늘었다.


이 녀석이 언젠가부터 내가 기분이 나빠 보이면, "누나? 엄마 아니고 누나지? 누나! 누나!" 하며 활짝 웃는다. 무심코 나한테 누나라 그랬다가 내가 웃는 걸 기억한 모양이다.


농담인 줄 알면서도 아들 입에서 누나 소리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광대가 승천을 하니 참.. 난감하다. 내 기분 풀어주려고 누나 소리도 하고.. 요 녀석 정말 많이 컸다.


어제는 다니엘이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변기통 앞에 서서는 큰 소리로 마마!(엄마) 카카!(응아)를 반복해서 내가 얼굴이 시뻘게지기도 했다.


카카는 생전 쓰지도 않던 말이라 빈이가 아는 줄도 몰랐는데 다니엘이 있다고 독어로 말을 한 것이다.


빈이는 철저하게 한국사람 앞에서만 한국말만 쓰고, 중국인 언니를 비롯해 서양스럽게 생긴 외국인에게는 당연히 독일어를 쓴다. 이것도 신기하다.


아이가 말을 술술 하기 시작하니 이것 말고도 뒷목 잡을 일, 배꼽 잡을 일이 참 많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는 "엄마, 사랑해. 엄마, 뽀뽀. 엄마, 안아줄게"와 같은 애정표현이다.


고 귀여운 얼굴로 사랑스러운 반달눈을 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가 저에게 해준 톤 그대로 사랑해~ 하면 정말 심장이 아이스크림 녹듯이 사르르 녹아버린다.


이 모든 게 2월 한 달 동안 일어난 일이라면 믿어질까? 아이들은 정말 금방 배우고 금방 큰다. 스펀지 같다는 말이 그야말로 정확하다.








노래를 좋아하는 빈이가 항상 레고로 기타를 만들어 놀길래 생일선물로 주려고 우쿨렐레를 샀다.


산 김에 빈이의 생일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려고 연습 중인데 빈이가 자기도 하고 싶대서 곰 세 마리를 같이 불러보았다.


어제 자고 일어나서 연습 없이 즉흥적으로 찍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훌륭해서 어쩌면 생일날 미니콘서트도 가능할 것 같다.


곰 세 마리랑 브루더 야콥 두 곡으로. 다행히 두 곡 다 코드가 C, G7 밖에 없다.


참나는 가사를 두 번이나 틀렸는데(아빠곰 대신 엄마곰, 히쭉히쭉 대신 으쓱으쓱..) 빈이는 가르쳐 준 그대로 틀리지 않았다.




너의 두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6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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