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뻔뻔한 독일인들, 그러니까 더 당당해져라!

싱글맘 본격 맘고생 5/5

by 뿌리와 날개

놀이방에 가지 않으면서 우리는 다시 아동복지센터 산하 아침식사 모임에 나가게 되었고, 아이가 놀이방에서 잘린 것은 그곳에서도 큰 화두가 되었다.


엘비라 선생님과 시빌레 선생님, 요한나 아줌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심각하게 얘기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엄연히 계약서가 있는데 일방적으로 나가라는 통보를 한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고 했다.


다행히 내가 수업 없이도 시험을 칠 수 있으니 망정이지 만약 직장을 다니거나 학교에 다녔다면 당장 생업에 차질이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분들은 이 분야 전문가들이다. 그분들 눈이 가장 정확하다는 뜻이다. 모임이 끝나고 더 자세한 정황을 듣자고 했다.








그동안 나는 놀이방 건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놀이방에는 빈이, 요나스, 닐로, 알렉시오가 있다. 그중에 닐로는 보육교사인 율리아의 늦둥이 아들이다.


놀이방을 관두자 알렉시오 엄마 디아나에게서 유감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었다.


나는 우리 아이가 때린다는 말을 아이들이 집에 가서 자주 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교육을 잘못시켜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디아나는 알렉시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빈이가 좋은 아이라고 했다.


그럼 남은 것은 닐로와 요나스다. 닐로와 요나스는 일 년 넘게 놀이방 친구이고 사이가 좋다. 결국 요나스 엄마와 율리아가 빈이에게 불만이 있었다는 뜻이다.


빈이는 공감능력이 잘 발달해 우는 친구들 위로를 잘해주고, 웃음이 많은 아이이다. 이것은 내가 한 얘기가 아니라 율리아가 늘 나에게 해준 이야기이다.


또 빈이는 재치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재미있는 아이라고 한다. 이것은 주변 엄마들에게서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다.


빈이는 다정다감하고, 유난히 웃음이 많으며, 어린아이답지 않게 재치가 있어 주변 사람들을 잘 웃긴다.


이런 빈이는 다른 친구들과 다툼이 생겨도 잘 안 운다. 힘이 세고 동작이 빨라 장난감을 잘 뺏기지도 않지만 뺏겨도 우는 대신 다른 장난감을 찾아 논다.


놀이방이 닐로네 집인 만큼 모든 장난감은 닐로 것이고, 빈이가 뭐만 가지고 놀려고 하면 닐로는 자기 거라며 곧잘 실랑이가 붙었다.


닐로가 빈이보다 7개월이나 빠르지만 닐로는 몸이 가늘고 힘이 없어서 자주 빈이에게 장난감을 뺏겼고, 닐로는 그 장난감을 자기가 가질 때까지 울었다.


빈이는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뺏겨도 울지 않고 금세 다른 걸 찾아 가지고 논다.


그럼 닐로는 다시 쫓아와 자기 장난감이라며 울었다. 닐로는 늘 빈이때문에 징징거리고 울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닐로는 두 돌이 넘었으니 자기 것에 대한 개념이 생겨 그러려니, 시기적으로 그럴 때이려니 했다.


하지만 율리아는 자기 아이가 빈이와 부딪혀 자주 스트레스받는 것을 두고 보기 어려웠으리라..








처음 상담하러 갔던 날 내내 율리아 품에 한 아이가 안겨 있던 걸 보고 이 사람은 아이를 참 자기 자식처럼 돌보는구나 싶어 인상적이었는데 대화 말미에 그 아이가 그녀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좀 기분이 그렇기는 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필요할 때 자리를 만들어준 율리아가 고마웠고, 또 보육환경이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보육교사가 자기 아이를 함께 돌보는 놀이방에 아이를 보낼 거라고 했을 때 한국 엄마 한 명은 절대 반대를 했었고, 또 다른 독일 엄마는 그런 곳은 별로라고 했지만 나는 그녀의 직업정신을 믿었다.


그것이 프로니까.


또 하나, 그녀는 허리디스크가 있다. 그래서 12월부터 자주 병가를 내는 바람에 나도 독어 수업에 못 나간 적이 많았다.


놀이방에 다른 세 아이들은 모두 뼈가 가늘고 몸이 가볍다. 내가 다 안아봐서 안다.


그런데 빈이는 통뼈에 몸도 무겁다. 특히 닐로는 정말 가늘가늘한데 빈이는 체형이 정반대이다.


그런 아이가 관심은 또 유난히 필요하니 자주 안아달라고 하고, 또 버티기 시작하면 힘이 엄청 세서(이번에 이케아 책장을 조립하는데 빈이가 판을 다 날라줬다ㅡㅡ) 젊은 나도 감당하기 벅찬데 마흔 넘어 늦둥이를 낳고 디스크까지 있는 율리아는 육체적으로 오죽 힘들었을까 싶다.








나도 빈이 못지않게 율리아를 귀찮게 군 사람이었다. 하루 두 번씩 꼭꼭 만나는 사이였고 아이 옷 입히고 벗기며 머무는 시간 동안 나는 그녀에게 나의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아주 친절하고 수다스러운 그녀의 성격 덕에 나도 마음이 편했고, 독어 수다는 나에게 독어 연습의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늘 내게 말했었다. 뭐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뭐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도와주겠다고..


그래서 나는 정말로 Mutter-kind-kur를 준비하며 질문을 많이 했었다. 특히 11월 초반에 보험사와 조율할 일이 많을 때 율리아가 통화를 도와주고는 했었다.


그 뒤에도 몇 번.. 하지만 그것은 전부 율리아가 오케이 했기 때문에 부탁한 것인데 결국 나에게 돌아온 말은, '너는 모르는 게 많고 혼자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 독일에서 혼자 살기는 어려워 보여 유겐트암트에 도움받을 사람을 연결해주겠다.'였다.


아마도 나를 도와주는 일들이 상당히 귀찮았던 것 같다. 너와 빈이를 돌보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고 했던 말은 바로 그것이 아니었나 싶다.


차라리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지 말던가... 그랬으면 부탁도 안 했을 텐데..


그리고 내 상황을 다 아는 그녀가 어떻게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이럴 수가 있지 했던 것도, 역으로 내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예전에 경험자로부터 그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내 처지가 이러하면 어떠한 경우라도 나서서 나를 적극 도와주는 사람도 열에 하나는 나오지만, 내 처지를 이용하는 사람도 반드시 하나는 나온다고.


물론 율리아가 그 정도로 나쁜 사람도 아니고 나 역시 큰 손해를 본 것도 아니지만, 나는 그녀가 어느 정도 나의 상황을 이용한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외국인이라 독일 실정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 독어가 짧아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도 마땅히 호소할 방법을 모른다는 것, 끝까지 맞서 싸우는 독일 여자들과 달리 온순하게 통보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 이혼으로 아이가 상처 받았다는 부분을 건드리면 눈물이 툭 터질 것이라는 것 등등..


그리고 이런 생각까지는 차마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율리아를 소개받은 것은 율리아가 닐로를 그렇게도 보내고 싶어 하던 유치원의 원장님을 통해서였다.


그 원장님의 특별 부탁으로 빈이는 갑작스럽게 그 놀이방에 다니게 되었고, 9월 말까지만 해도 나와 율리아는 모두 그 유치원의 합격통보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10월에 내가 먼저 불합격 통보를 받고, 닐로는 1월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빈이는 2월 중순에 쫓겨났다. 시기적으로 참 그렇다.


2월부터 루카라는 아이가 새로 다닌다고 들었는데 율리아는 분명 아이를 4명만 돌본다고 했었다. 빈이 자리도 사실은 엑스트라로 열어준 거라고 해서 그때도 내가 엄청 고맙다고 했었지만 결국 다른 아이 한 명을 받지 않기로 해서 4명이 되었다.


그런데 루카가 들어오면 5명이 된다. 허리디스크로 지금도 놀이방을 자주 쉬는데 5명?


정말 나는 머리가 단순한가 보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을...


빈이를 내보내고 더 편한 아이로 받고 싶었던 것이다 율리아는..








나는 독일에 와 살면서 참 친절한 독일 사람 둘을 만나보았다. 정말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가는 사람이 두 사람 있었다.


하나가 클라우스 할아버지이고 하나가 율리아였다.


클라우스는 내가 법정 증언이 필요했을 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사인을 해주지 않아 나를 힘들게 했고, 율리아는 결정적일 때 내 뒤통수를 쳤다.


늘 내가 주는 것 없이 마음이 끌리는 사람들은 결과가 이렇다. 나는 사람 보는 눈에 문제가 있었다.








엘비라 선생님과 요한나 아줌마는 율리아 문제로 유겐트암트에 Weiterleiten을 하자고 했다. 부당한 처사이니 항의하자는 뜻 같았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녀의 의도 중 가장 우선은 본인과 본인의 아이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분명 나와 빈이를 위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고, 가장 바빴고 또 바빠야만 했던 시기에 그녀 덕분에 많은 일들을 해결하고 다닐 수 있었다.


4월 시험도 치를 수 있다고 하니 정말 중요한 것은 문제가 없었다.


또 이번 일을 통해서 나는 자식 교육에 대해서, 나의 교육관과 육아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이도 나와 함께 있어서 안정을 되찾고 있고, 나도 그 덕에 일이 터지고 정말 처음으로 편안하게 쉬고 있다.


율리아가 브레이크를 걸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빠듯하게 하루를 살며 지쳐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핑계로 나는 지금 정말 푹 쉬고 있다.


그래서 좋다.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한다.


참, 내가 빈이에게 못 가르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친구들이 빈이를 때리거나 빈이 물건을 뺏거나 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때리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늘 사과하라고만 가르쳤고, 누가 빈이 물건을 뺏으려고 하면 주라고 가르쳤다.


실랑이가 벌어지면 늘 빈이 손에서 빼앗아 다른 아이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 자기 물건을 빼앗기고도 울지 않는 아이는 가만히 보니 빈이뿐이었다.


보통 독일 엄마들은 먼저 가지고 있던 아이에게 우선권을 주었지만 곧 바꿔 놀자며 순서를 기다리는 법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도 야니나에게 그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독일어를 물어봐서 외웠다.


또 친구가 때리면 Stop(그만), Lass mich in Ruhe(날 내버려 둬)와 같이 자기를 보호하는 방법과 독일어를 가르쳐주었다.


독일 사람들에 비해서 몸에 밴 듯한 굽신거림이 있는 것 같다, 난....


이게 나뿐만 아니라 내가 가르치지 못해서 아이에게도 넘어가는 것 같아 슬슬 신경이 쓰인다. 독일 사람들의 그런 단호한 부분은 참 마음에 든다.


그리고, 언제나 우는 아이 곁에는 빈이가 있어서 본의 아니게 빈이를 많이 혼냈다. 특히 놀이방에서 잘리면서부터는 어디 가서 누가 울기만 하면 빈이가 때린 것일까 봐 불안해서 늘 도끼눈을 하고 빈이부터 찾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빈이는 늘 우는 아이 곁에 다가가 등을 쓰다듬어주고 뽀뽀를 해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놀이방을 관둔 뒤로 아이는 단 한 번도 다른 아이를 때리지 않았고, 유난히 다른 아이를 때리는 것도 생각해보면 결국 놀이방 아이들이었다.


아마도 빈이는.. 율리아 말대로 정말 놀이방 아이들과 맞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누가 자기를 예뻐하고 싫어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는데 자기 아이를 더 신경 쓰는 율리아의 그런 모습에 어쩌면 아이 역시 나름 스트레스를 받으며 더 엇나갔던 건 아닐까?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6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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