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사유리 씨가 자발적 비혼모가 되었다는 기사가 연일 화제다. 사유리 씨의 선택도 놀랍지만, 그것보다 나는 기사마다 따라붙는 “자발적 비혼모“라는 말에 눈길이 갔다. 미혼모, 비혼모 그리고 자발적 비혼모. 이 단어들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가 아직 한국에 살던 2010년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미혼이나 미혼모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다. 보통의 사람인 내가 미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대학 새내기나 사회 초년생들이 스스로 미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을 보면, 미혼이라는 단어에는 “결혼을 진작 했어야 할 나이지만 아직 “이라는 뜻이 생략되어 있다고 보인다. 또한 아직 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하지만 언젠가는 결혼할”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생략과 내포를 유도한 주체가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이 바로 미혼이라는 단어 안에 들어있는 한국 사회의 통념 자체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이 단어에서는 어떤 결핍이 느껴진다. 무엇인가 부족해서 언젠가는 채워 넣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그에 반해 비혼은 아직 듣기에 생소하지만 미혼과 대비되어 그 뜻만큼은 확실히 전달된다. 미혼이 어쩔 수 없는 수동적인 느낌의 혼인하지 않은 상태라면, 비혼은 본인의 주관이 뚜렷하게 반영된 주체적인 결정으로서의 혼인하지 않은 상태로 들린다. 후자가 훨씬 당당한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붙는 한 글자. 어머니…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미혼모와 비혼모의 차이는 분명하다. 미혼모는 결혼을 하려 했거나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채로 아이를 낳은 어머니이고, 비혼모는 스스로 혼인상태 없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어머니인 것이다. 사유리 씨는 여기에 앞에 한 글자가 더 붙어 “자발적 비혼모“라고 불리고 있다. 아마도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임신을 하는 데 있어서 최소한의 조건이라 여겨지는 연인(아버지)의 존재마저도 없이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낳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충분히 자발적인 비혼모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파격적 행보를 강조하고자 만든 단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에서는 싱글맘을 어떻게 부를까? 일단 독일에서는 영어의 싱글맘, 싱글대디처럼 미혼, 비혼, 이혼 구분 없이 “알라인에어찌헨데 무터/파터(Alleinerziehende Mutter/Vater)“라고 한다. Allein은 “혼자, 홀로, 단독으로 “라는 뜻이고 “erziehen “은 “기르다”라는 뜻이다.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이를 “혼자 기르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독일 사회에서 한 개인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있어서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머니인지 아버지인지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엄마, 아빠라는 단어 없이 “Alleinerziehende “라고만 해도 뜻이 통한다.
내가 이렇게 단어를 곱씹어보는 이유는, 말에 담긴 생명력과 의미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카테고리를 나눠 사람을 분류하고 명칭을 붙이는 순간, 단순히 그 명칭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생기게 된 배경, 그것이 쓰이는 사회의 정서와 맥락도 함께, 마치 영혼처럼 그 단어 안에 깃든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그 명칭이 부여된 사람에게 어떤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그 명칭을 쓰는 사람들은 특정한 정서를 그 사람에게 기대한다.
예를 들자면,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할 때에는 다 같은 어머니이지만, 홀어머니라고 카테고리를 나눠서 따로 부르는 순간, 그 카테고리 속으로 분류되는 일부의 어머니들은 자신이 단순한 어머니가 아니라 홀어머니라는, 남보다 복잡한 서사가 있음을 매 순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 단어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남편의 부재가 늘 담겨있으며, 그로 인해 그 어머니는 남편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항상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홀어머니라는 단어를 쓰면서, 억척스럽게 자식을 키우는 강인한 어머니, 책임감과 강한 정신력, 심지어 남편을 대신해온 자식과의 끈끈한 유대로 인한 며느리나 사위의 피곤함까지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한국에서 쓰이는 미혼모, 비혼모에 대한 개념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5년 전 남편과 별거를 시작함과 동시에 나에게 주어졌던, 독일 사회에서의 낯설었던 첫 이름표. 관공서의 수많은 서류들을 작성하고, 유치원과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자리에 나를 소개할 때마다 수천번, 수만 번 읽고, 쓰고, 듣고, 말해오면서 이제는 나에게 가장 익숙한 말이 된 그 단어 - “Alleinerziehende “.
지금 생각해보면 혼인 여부나 상태에 상관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해당되는 그 단어 덕에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혼을 했다는 패배감이나 좌절감, 수치심을 무의식 중에 잊게 되었던 것 같다. 처음 혼자가 되었을 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너무 엄청나다고 느꼈고, 가혹했고, 힘겨웠다. 그러나 지난 5년간 독일 사회에서 수도 없이 많은 Alleinerziehende 들을 만나며 나는 내가 유별나게 비참한 서사를 가진 애 딸린 이혼녀가 아니라 아이를 혼자 키우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혼을 당하고, 남편이 함께 양육하기를 거부한 아이를 어쩔 수 없이 혼자 키우게 된 나나, 남자 친구가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채로 아이를 낳아 혼자 기르는 내 친구 A나, 합의 이혼을 하고 평화롭게 전남편과 일주일 씩 번갈아가며 아이를 키우는 B나, 마흔이 넘어가는데 만나는 남자는 없고 아이는 갖고 싶어서 휴가지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 잠자리로 임신하고 아이를 키우는 C나, 아이는 안중에도 없는 전처를 대신해 아이를 혼자 키우는 D나 우리는 모두 혼자서 양육의 주체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한 부모인 것이다.
언어에는 그 사회의 문화와 역사가 깃들어있고, 어휘 구사력을 통해 그 사람의 사회적 계급을 알아볼 수 있듯이,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단어와 맥락을 통해 우리는 그 사회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비혼모“라는 단어에서, 나는 서서히 개인의 삶에 대한 선택과 주체성을 인지하고 존중하려 하는 한국사회의, 이제 막 변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읽는다.
독일에서는 “Ich bin Alleinerziehende.”라고 하면 될 것을, 한국어로 소개하자면 말이 자꾸 길어진다. 나를 소개할 수 있는 한국어 단어를 열심히도 찾았었다. 고심 끝에 나온 것은 “싱글맘이에요”이라는 영어단어 내지는 “혼자 키워요.”라는 모호한 서술형 표현뿐이었다. 한국에서 나를 굳이 명사로 표현하자면, 미혼모도 비혼모도 아닌, 아직 한 단어로 분류조차 되지 못한 “애 딸린 이혼녀” 정도 되겠다. 참나.
그래도 세상이 많이 달라져 이제는 한부모 가정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여전히 “저 한부모예요.”는 이상하지 않은가? 아직도 나는 나를 수식할 만한 뭔가 괜찮은 한국어 명사를 찾고 있다. 아직 없다면 내가 만들어 볼까도 생각 중이다. 싱글맘이나 알라인에어찌헨데처럼, 딱히 짠내 나지 않고, 최대한 담백하고 가치중립적인 그런 멋진 단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