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싱글맘 둘, 그리고 독일의 밤

by 뿌리와 날개

친구가 일주일째 아이 없는 휴가를 즐기고 있다.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고 돌아온 그녀와 오랜만에 단 둘이 Mädelsabend(여자들의 밤)을 보내기로 했다.


아이를 재워놓고 나가려고, 남자 친구에게 우리 집에 와서 자는 아이를 좀 봐달라고 했더니 자기들도 Männerabend(남자들의 밤)을 보내겠단다.


자기 집에 데려가서 재우고 다음날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 빵 사 가지고 올 테니 친구랑 좋은 시간 보내다 오라고 했다.


내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늘 적극적인 남자 친구는 언제봐도 매력적이며, 그의 세심한 배려가 나는 늘 고맙다.


저녁 7시, 아이는 남자 친구가 데려가고 나는 친구랑 시내로 나왔다.











저마다 지고 가는 삶의 무게는 어쩜 그렇게도 다채로운지. 우리는 오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 삶의 모든 면에서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육아를 하는 동안 나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지킬 수 있도록 한두 개의 문은 열어둬야 한다.


이를테면,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내가 원할 때 부담 없이 나가서 혼자 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던가 하는 옵션들.


많은 한국인 엄마들이나 또는 남편이 있는 독일인 여자 친구들이 그런 거 없어도 괜찮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이 없는 휴식시간을 정기적으로 갖고 살 때와, 24시간 꼼짝없이 아이와 붙어 지낼 때의 육아의 질 및 내 마음 상태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이 없는 휴식을 충분히 취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왜 아이를 키우는 사람일수록 아이 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지.











남편 또는 파트너가 있는 독일인 친구들은 아이 키우고 살림하느라 피곤에 찌든 얼굴로 살면서도, 싱글맘인 내 앞에서는 힘들다는 투정 하는 것을 꽤 멋쩍어한다.


하지만, 남편이 있든 없든 친정과 시댁이 있든 없든 양육자가 필요할 때 충분한 도움과 휴식이 뒤따르지 않으면 육아는 고되다.


그녀들도 싱글맘인 나 못지않게 아이를 키우며 수고하고 있고, 휴식이 필요하다.


당장 애 떼어놓고 쉬지 않는다고 죽지는 않지만, 일부러 그런 시간을 내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이 키우는 동안 어영부영 시간은 금방 가고, 그 사이 나의 심심은 지쳐 망가지고, 부부간에 애정은 식는다.


그러므로 엄마든, 아빠든 본인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아이 없는 휴식을 취하고, 둘만의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건강을 잃기 전에 건강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마음 건강도, 부부간의 애정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망가지기 전에 부지런히 가꿔야 한다.


그 중심에 언제나 내 심신의 안정과 건강이 있다.











남자 친구와 보내는 시간도 좋지만, 때로는 마음 맞는 동성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필요하다.


남자 친구 또는 남편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있고, 가족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듯이, 마음 맞는 동성 친구와 나눌 수 있는 것이 또 따로 있다.


얼마 전 남자 친구도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친구 6명과 아지트에 모여 밤새도록 그릴에 맥주를 마시며 카드게임을 했다.


요즘 일이 많아 그도 많이 지쳐있었는데, 친구들과 밤새도록 얼마나 즐겁게 놀았는지 웃느라 배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나이 먹고 연애를 하면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고, 상대가 행복해하는 것을 지켜보며 나도 행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길을 걷다 보니 어디서 요란한 비트에 음악 소리가 들려 두리번거리니 가정집 꼭대기 층이다.


코로나로 클럽이 문을 닫으니 주말 밤을 다들 저렇게 집에서 불태우는가 보다.










밤 12시에 가까워 온 시간, 어느 카페.






우리는 그렇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행복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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