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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독일남자와 이혼하記(기)

독일인 남편과의 이혼 과정을 공개하기로 한 이유

2015.07.05.


2015년 7월 현재, 독일 나이로 29살에 15개월 아들을 데리고 이혼의 절차를 밟기 시작한 지 열흘 남짓이다.



2015년 3월, 아기 돌 때까지만 해도 시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며 나름 평범한 가정생활을 유지 중이었지만, 6월 22일 이혼을 결정하고 23일 아기와 집을 나오며 우리는 졸지에 낯선 독일 땅에서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다.






내가 이혼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차차 쓰겠지만 일단 간략히 요약하자면, 남편이 직장상사와 바람을 피웠고, 내가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이혼 외에는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가 6월 20일이었다. 



14일까지는 내가 정말로 이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남편과 내가 이혼을 기정 사실화한 날이 6월 22일 오전이었고, 아기와 집을 나온 게 23일 저녁이었으니 갑작스러워도 보통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 하나 바라보고 넘어온 독일이었고, 남편 그늘 밑에서 간단한 독일어 회화 정도나 하며 집에서 아기 키우고 살던 내가 하루아침에 어린 아기와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을 때의 그 암담한 심정이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남편과 오손도손 살 때에도 우리의 사생활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이 꺼려졌던 내가, 가정이 깨지는 이 상황을 블로그에 공개하기로 한 이유가 바로 그 "암담함"이다. 



지난 1년 여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몇 안 되는 지인들의 소중한 도움과, 또 1년 전 꼭 나와 같은 상황으로 같은 처지에 놓이신 다른 한국분의 도움으로 나는 그 암담함 속에서 더듬더듬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정말 이 낯선 독일 땅에서 아기와 둘이 땡전 한 푼 없이 아무런 권리도 찾지 못한 채 쫓기듯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작은 친절이었을 수도 있고, 지천에 널린 정 보였을 수도 있고, 사소한 댓글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작은 조각조각들로 인해 지금 나와 아기는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지내며 앞날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혼이 정식으로 처리될 때까지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더 남았고, 나는 이제 막 홀로서기 위한 첫 발을 내디딘 셈이지만, 분명 독일 어딘가에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누군가 또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분명 내 기록들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걸 알기에 모든 것을 공개하려고 한다.







언젠가 누군가 오늘의 나와 나의 아기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나는 나의 아들 외에는 살 집도, 직업도, 통장 계좌에 잔고도 없는 사람이지만 1년 뒤에는 분명 우리가 살 작은 집도 있고, 아기도 유치원에 다니고, 나도 공부가 됐든 일이 됐든 뭔가를 하고 있을 거라고.

그리고 모든 상황이 안정되고 다시금 행복이 찾아왔을 거라고.



그래서 1년 뒤 블로그에 내가 올린 글들이 그 증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나의 어린 아들도 지금 그렇게 힘내고 있으니,

부디 당신도 힘내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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