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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네가 있는 한 나는 더 바랄 게 없었다

Frauenhaus (여성 보호소)에 처음 가던 날

2015년 6월 23일 저녁, 나와 빈이는 당장 필요한 옷가지와 생필품, 아기 기저귀와 장난감 몇 개만 챙겨서 보호소로 들어갔다.



친구의 남편이 우리를 차로 실어다 주었는데 여성 보호소의 위치는 철저히 비밀이라고 했다. 특히 남자들에게 배타적인 곳이라 유겐트암트(우리나라로 치면 청소년 복지과 정도일까?)에서 근무하는 친구 남편에게 조차도 위치를 노출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쪽에 연락을 하면 그쪽에서 장소를 정해주고 그곳에 우리를 내려주면 그들이 우리를 데리러 오는 형식이었다.






교회 앞에 내리니 레몬색 머리의 젊은 여자와   옆을 바리깡으로 밀고 변발처럼 정수리만 묶어 올린   나이  여자가 우리를 마중 나왔다. 레몬색 머리는 B, 꽁지머리는 S라고 했다.



무거운 가방 두 개와 트렁크 하나, 유모차 한 대, 백팩 하나, 그리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두서없이 사 모은 기저귀 더미 봉지를 나눠 맡은 우리는 5분 남짓 빗길을 걸어 보호소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첫 느낌은, 담배냄새가 매우 역했다는 것.



1층에 아주 넓은 공동거실이 있었고 구석에 아기가 놀만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절대 아기를 그곳에서 놀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담배냄새가 배어있었다. 그리고 거실에 이어진 적당한 크기의 주방에는 싱크대와 조리대, 오븐 두 개와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같은 처지의 여자들이 모여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아기와 함께인 젊은 여자는 나뿐이었고 다들 싱글이었다.



코소보에서  60 정도의 할머니, 30 초반의 독일 여자 B, 40 초반의 독일 여자 S, 그리고 터키인으로 추정되는 키가 아주 작은 30 중반쯤의 여자와 아주 아주 뚱뚱하지만 예쁜 얼굴을 가진 20 중반쯤의 여자가 현재 입소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곳이 직장인  사람, 깡마른 Bb  몸집의 상냥한 G.



그들은 무기력해 보였지만 작은 미소로 나와 아기를 반겨주었고, 2층의 방 하나를 우리에게 주었다.



그들의 행색은 변변치 못했고, 담배냄새가 진한 그들의 공간 역시 내가 어제까지 살던, 깔끔한 옷차림의 아기 엄마들과 커피를 마시며 수다 떨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위안과 따뜻함을 느꼈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23일은 우리 빈이가 15개월이 되던 날이다.

 


나의 남편이자 내 아기의 아빠로 든든하게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던 그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아기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잔인하게 우리를 버린 그 날, 우리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생면부지의 그들은 우리에게 비를 피할 지붕과 푹신한 침대가 있는 잠자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나에게 위로와 웃음을 건넸다. 내 아기에게 눈을 맞춰 주었다.



보호소 침대에서 잠들던 첫날, 비좁은 싱글 침대에 빈이와 딱 붙어 누웠는데 엎드려 잠이 든 우리 아들 조그만 등짝이 얼마나 넓고 든든하게 느껴지던지...



손바닥으로 가만히 그 작은 등짝을 쓰다듬으며 나는 그 낯선 곳,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빙그레 웃음이 나왔고, 마음 한편이 든든했다.






그래, 지금 내 곁에 네가 있는데 내가 아쉬울 게 뭐가 있겠니.

 

돈도, 집도, 남편도, 그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마저도 있다가도 없어지는 게 지금 내 삶인데..


그래도 그 안에서 네가 나의 아기라는 사실과, 내 곁에 잠들어 있다는 것. 그리고 너에 대한 변하지 않을 나의 사랑만큼은 그대로 인 것을..


그거면 됐지.


그는 모든 것을 가져가는 대신 나에게 우리 아기를 주고 갔다.




 나는 더 바랄 게 없었다.







아래 사진은 우리에게 제공된 방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기한 없이 우리가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러도 된다. 이 날이 들어온 지 일주일쯤 되던 날인데 이 날까지도 나는 이 곳 생활이 적응되지 않아 짐도 풀지 않고 대충 지냈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꽤 오랫동안 이 곳에 머물게 될 거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짐을 풀었고 방을 정리했다. 방을 쓸고 닦았고, 장도 보기 시작했고, 어설프나마 요리도 해 먹기 시작했다.



처음은 낯설고 어려웠지만 일주일 만에 나는 금세 이 곳 생활에 적응했고 나름 지낼만했다. 와이파이가 없다는 것만 빼면 다른 것들은 그다지 괜찮았다.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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