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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고 입이 있어도 말 할 수 없는

독일 이혼 절차의 간단한 소개

나도 불과 2주 전부터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인데 이런 글을 쓰게 되어 상당히 머쓱하다.



그러나 이혼 전문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 이혼 중인 나만큼 더 정확한 정보가 있을까 싶어 아는 한도 내에서 적어본다.



지역마다 세부사항이 다를 수도 있고, 각자가 처한 상황 (예를 들면- 혼인 형태, 혼인기간, 아이의 유무, 소득이나 재산 보유 현황 등등)에 따라 다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







독일에서는 배우자 중 어느 한쪽이라도 이혼을 신청하면 1년 뒤 자동 이혼이 된다고 한다.

이 1년 간을 Trennungsjahr, "별거기간"이라고 부르며, 이 기간 동안은 반드시 경제능력이 있는 배우자가 경제능력이 없는 배우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한다.


 

이 1년의 별거기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내가 남편과 이혼을 결정하고도 함께 살 경우 서로 배우자의 역할을 절대 해서는 안된다. 남편을 위해 빨래도, 요리도, 청소도 하면 안 되고 장 본 물건을 나눠서도 안 된다.



물론 같은 침대도 써서는 안된다. 남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별거기간이 인정된다고 한다.



분리해서 살 경우, 둘 중에 하나가 나가야 하는데 보통은 아이를 책임지는 엄마가 살던 집에 남고 남편 혼자 나가 살 집을 구한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엄마인 내가 아기를 데리고 나온 케이스인데, 나름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살던 집이 자가 소유가 아니라 월세였기 때문에 매달 850유로나 되는 월세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고, 물론 함께 고른 집이긴 하지만 내가 한국에 있던 사이 남편이 혼자 이사하고 서명한 집이라 내가 동거인의 자격도 없었을뿐더러, 남편 취향을 전적으로 고려해 고른 집이라 내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내가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독일어도 잘 못하는 외국인에, 따라다니며 일일이 도와줄 사람도 없는 내가 나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보호소를 찾는 일이었다.



유겐트암트에서 일하는 사람이 말하길, 그곳에 들어가면 거처가 해결되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내가 해야  관공서 업무에 필요한 각종 서류작성과 미팅도 도와줄 거라고 했다.



기저귀나 이유식, 어금니가 날 때 좋은 연고 등 육아에 관련된 독일어만 할 줄 알던 내가, 당장 내일부터 양육수당과 생활비를 보조받기 위해 전문용어로 된 서류를 작성하고, 변호사와 법원도 찾아다니며 독일어 법률용어를 접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보호소 측의 그런 도움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기와 보호소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모든 걸 서류로 해결하는 이 나라에서 이혼 결정 2주 만에 웬만한 서류를 다 작성해 암트에 넘기고, 새로운 주소로 전입신고를 하고, 변호사를 찾고, 내 명의 계좌를 트고, 남편 앞으로 지급되던 육아수당을 전화 한 통화로 당장 정지하고 내 앞으로 돌린 것 등...



내가 만약 우리 집에 그대로 머물며 혼자 힘으로 아등바등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에 관한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G 체격이 남자 못지않게 좋은 금발머리의 독일인인데 30 중후반쯤 되었을까 싶다.



언제나 상냥하고 믿음직스러운 얼굴로 나의 모든 일들을 꼼꼼히 처리해준다.

잘 못 알아들을 때에는 몇 번이고 쉽게 설명해주고, 내가 혼자서 은행계좌를 열고 왔을 때에는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었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독일어들과 해야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도 G 도움을 받아 하나씩 해나가는 일이 재미있기도 하다.


 





남편과 살 때는 독일 생활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내가 뭔가 궁금해서 물어보면 늘 성의 없는 대답이나 엉터리 대답 내지는 나중에 알려주겠다는 말 뿐이었다.



한 번은 독일어로 검사와 변호사, 판사가 뭐냐고 물었더니 세 가지 다 Anwalt 라는 한 단어로 사용한다고 했다. 정말이냐고 몇 번을 물어도 진지하게 그렇다고 하길래 아무래도 이상해서 독어사전을 찾아 세가지 단어가 다 다르다는 걸 보여주니 그제야 웃으며 맞다고 대답했었다.



그 당시 나는 그게 그 사람의 성격이자 나름의 유머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결혼생활 동안 나는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었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었고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하나씩 깨닫고 있다.



지금 나는 느리지만 나 스스로 보고, 듣고, 말하고 있다. 적어도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파악하고 있다. 지난 3년 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다.


그래서 즐겁다.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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