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입신고도 하고, 내 이름으로 된 계좌도 만들다
2015.06.25.
25일 목요일에는 G와 암트에 가서 전입신고를 했다.
내가 남편의 집에서 나와 따로 살기 시작했다는 걸 정부에 알리는 첫 단계였다.
번호표 뽑고 1시간 넘게 기다려 간단하게 전입신고를 하고 나니, 아래 사진과 같은 서류를 받았다.
서류 내용을 적자면,
Für 현주소
Tag des Einzugs 이사날짜
Bisherige Wohnung 구 주소
Folgende Person(en) wurde(n) am 25.06.2015 angemeldet
내 이름
아들 이름
대략 이러했다.
나와 아기 이름으로 전입신고가 된 서류를 보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아기와 내가 이젠 정말 독립된 길을 가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에.
현주소는 여성 보호소가 안전가옥이기 때문에 주소를 노출할 수 없게 되어있다.
암트는 정부기관이라 서류에 실제 주소를 그대로 쓰지만 컴퓨터 열람을 할 때 빼고는 내 주소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물론 남편이 암트로 전화를 걸어 내가 어디 살고 있냐고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G에게 나중에 우리가 새 집을 얻어 이사를 하면 그때도 이렇게 내가 전입신고를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럼 그 새 주소도 남편 모르게 할 수 있냐고 했더니 요청하면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해달라고 했고, 며칠 뒤 허락한다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참, 전입신고하는 걸 Ummelden이라고 한다는 걸 이 날 배웠다.
2015.06.26.
일사천리였다.
집을 나온 지 4일 만에 드디어 내 계좌를 만들었다.
일을 진행해가는 매 순간이 뿌듯하고 기뻤지만, 지금까지 일 중에 가장 기뻤던 일이 아마 내 이름으로 된 계좌를 만든 일이 아닐까 싶다.
남편과 결혼하면서 유럽으로 넘어온 지난 3년 간 내가 가장 원했던 일 중 하나가 내 명의의 계좌를 갖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늘 계좌 만드는 일을 피했는데, 가장 큰 이유가 독일에서는 계좌를 만들면 매달 10유로씩 계좌 유지비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환율로 10 유로면 만 5천 원인데 열 달이면 15만 원 아닌가.
수입도 없는 전업주부 주제에 집에 가만히 앉아서 15만 원을 까먹을 수는 없지 싶어 그냥 그렇게 지냈던 3년이었다.
오늘에서야 알았지만 10유로가 아니라 5유로 몇 센트라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 이런 사소한 일도 거짓말을 해서 겁을 주고 못하게 막았던 것이다.
이제는 나도 양육수당이며 생활비를 받고 경제활동을 직접 해야 했기 때문에 내 명의의 계좌 개설은 당연한 일이었고, 당장 남편 앞으로 지급 금지시킨 양육수당을 내 앞으로 재신청해서 받는 일이 급선무였다.
시내에서 볼 일을 보고 은행 위치를 알려주며 지나치려는 G에게 오늘 당장 만들겠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나를 돌아봤다.
원래 G가나중에 같이 가자고 했지만 어차피 하루라도 빨리 계좌를 열어야 각종 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는데 굳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까지 기다리고 싶지도 않았고, 또 앞으로는 내가 스스로 하고 살아야 할 내 일이니까 두렵더라도 용기를 내기로 한 것이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호소 안전가옥에서 지내다 보니 거주지가 노출되면 안 되는 이유로, 서류작성이 좀 까다로운 듯 보였다.
멧혠나메(Mädchenname). 처녀 적 이름. 내 한국성을 여기서는 그렇게 불렀다.
독일에서는 남편 성을 쓰는데 내 여권에는 한국성이 쓰여있으니 이들에게는 헷갈렸던 거지.
결국 중요한 건 내 신분증, 여권에 쓰인 이름이라며 한국성으로 계좌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시간쯤 걸려서 결국 계좌를 열었다.
핀넘버는 일주일 뒤에, 카드는 이주일 뒤에 은행으로 직접 찾으러 오라고 했다.
내 주소지가 비밀인 이유로.
그렇게 원하던 내 명의의 계좌를 나는, 이혼하면서 내 이름과 내 한국성으로 갖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내 이름으로 된 계좌로 독일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뿌듯했다.
아래는 빨간 바탕에 S자 위에 찍힌 점이 상징인 독일 슈파르카쎄 바인더와 현금카드.
어딜 가든 저 새빨간 색이 보이면 슈파르카쎄다.
통장은 없고 서류만 한가득해서 바인더에 넣어준다.
서류 첫 장에 콘토눔머와 계좌에 관한 기타 개인정보가 다 적혀있다. 나머지는 아마 세부사항에 대한 설명인 듯..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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