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이와 B가 함께 한 모래놀이
Der Sandkasten, 놀이용 모래판
보호소 뒷마당에 있는 모래판을 독일어로는 잔트 카스텐이라고 부른다.
한국어로 마땅한 게 없어 사전을 찾아보니 놀이용 모래판이라고 한단다.
독일에서는 집에 마당이 있으면 보통 부모들이 하나씩 사다 놔주는 것 같다.
별 거 아닌 듯 보이는데 최고의 장난감이다.
An이 나간 뒤 보소호에는 다시 아이들 소리가 뚝 끊겼다.
"엄마! 엄마!"
외치는 우리 아들 목소리만 카랑카랑하게 울릴 뿐.
함께 놀 아이들이 없어서 아쉽다고 했더니 마당에서 일광욕 중이던 B가 모래판으로 들어왔다.
"내가 놀아주지 뭐"
고마웠다.
나랑 커피 한 잔 하겠냐고 했더니 오케이 하길래 나는 커피를 가지러 방으로 올라갔다.
공동주방에는 냉장고가 없고 뭔가 식료품을 놓아두면 금세 동이 나기 때문에 모든 물건은 자기 방 냉장고에 두고 주방을 사용할 때마다 방에서 가지고 내려와야 한다.
한 번은 소금을 가지고 오르내리기가 귀찮아 더불어 쓸 겸 찬장에 넣어두었더니 다음날 사라졌다.
다들 사용하다 동이 난 거라면 괜찮은데 어제 막 뜯은 새 소금을 누군가 슬쩍했다는 게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모두가 좋아하는 커피 역시 마찬가지.
필터에 내려먹는 커피 한 팩을 놓아두었더니 3일 만에 2/3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커피 한 번 마시려면 각자 방에서 커피랑 우유를 들고 내려와야 한다.
아침부터 집 구하는 서류를 돌리러 다니느라 피곤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모래판 위에서 노는 아이를 지켜보며 뒷마당에 앉아 B와 커피를 마셨다.
늘 웅얼웅얼 거리는 B의 독일어는 사실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독일인의 독일어라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은어나 비속어가 많아서 단어 뜻을 물어보다 민망할 때도 잦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 집단을 하나로 묶는 역할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의 언어 수준에 따라 사회계층을 정확히 가르는 잣대가 되기도 하는데, 나는 이 곳 보호소 생활을 하면서 그걸 특히 실감한다.
B의 말은 웅얼거리면서 빠르기도 하지만 특히 어려운 점은, 내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설명하는 걸 잘 못한다는 것이다.
주변의 아기 엄마들이나 G, 행정직원들 같은 경우에는 내가 이해를 못하면 알기 쉬운 단어를 사용해 다시 풀어서 알려주는데 B나 St, Y, J 등 보호소에 사는 친구들은 내가 못 알아듣는데도 불구하고 똑같은 말로 거듭 얘기를 한다.
목소리의 톤은 점점 올라가는데 정작 내가 이해를 못하는 단어는 그대로 사용한다.
내가 그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좀 더 쉬운 단어로 말해줘야 한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 덕에 내가 스스로 알아듣고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많지만,
막상 이해를 하고 나도 딱히 도움이 될만한 단어라기보다는 오히려 쓸데없는 것들이 많아 이제는 적당히 듣고 흘릴 줄도 안다.
B와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한바탕 웃고 났더니 G가 우리 먹으라며 딸기 케이크 한 조각을 갔다 주고 퇴근했다.
그걸 놓칠 리 없는 아이가 놀다 말고 의자 위로 기어올라왔다.
웃기다, 저 표정.ㅎㅎ
붕붕이까지 올라탔다.
혼자 올라타기는 하는데 아직 발을 구르며 앞뒤로 왔다 갔다 할 줄은 모른다.
집에 있었으면 타는 법을 진작 마스터했을 텐데..
지난 세 달간 여기저기 떠도느라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내 아들.
고마워.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