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08.
복지가 좋은 나라 독일.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다.
아기와 하루아침에 쫓겨나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는데 독일 정부는 이런 우리에게 살 집을 마련해준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은 내가 구하고, 정부는 집세를 내주는 거지만.
G가 책자를 펴놓고 나에게 집을 구하는 기준을 알려줬다.
Wohnung für 2 Personen / 2인 기준 집
크기 : 65㎡
월세 : 331.76유로 Kaltmitte (칼트 미테는 전기, 수도세를 제외한 집세)
155유로 Nebenkosten (네벤 코스텐은 전기, 수도세와 그 밖의 관리비를 의미)
합계 : 486.76유로 Warmesmiete (봐으메스미테는 칼트 미테와 네벤 코스텐을 합친, 실제로 지불하는 집세)
G는 칼트 미테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몇 유로 정도 나는 차이는 내가 개인적으로 좀 더 내고 살아도 되지만 그 이상이 되면 집세 보조를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네벤 코스텐이야 내가 덜 쓰면 돌려받고, 더 쓰면 더 내는 거라 큰 상관없고, 크기도 사실 저 정도 월세면 절대 65크바를 넘지 않는다.
이렇게 자세한 기준이 있었다니, 지난 2주간 나는 집 본다고 정말 뻘짓한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정부 보조받지 말고 엄마 아빠 도움을 받아 넉넉한 집을 골라볼까도 했었지만, 무직에 외국인인 나에게 집 자체도 안 보여주려 하는 현실을 깨닫고 그냥 내가 가진 선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재미있는 건,
아기와 나, 우리 둘이 몸을 누일 작은 집 하나 구하는 일이 이다지도 어려운가 하며 슬펐던 것도 잠시.
이렇게 현실의 벽은 높다는 걸 깨닫고, 집세의 기준 역시 정해지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인정할 걸 하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해졌고 그래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분명했기 때문이다.
G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도 차별하지 않고 좋은 집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 4군데에 보낼 서류를 작성한다고 했다.
나의 신상명세와 집을 구하는 조건을 적은 서류이다.
집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월세 말고는 아무 조건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상세한 조건을 체크하도록 되어있었다.
G는 지도를 펼쳐놓고 교통이 편리한 지역, 비교적 시내 중심지와 가까워 생활권이 편리한 지역을 알려주며 이 정도면 내가 살던 동네가 아니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한 지리적 정보를 얻게 된 것이다.
시내 중심지와 내가 살던 동네, 딱 두 군데만 원하면 집을 구하기가 아주 어려워진다는 말도 했다.
어느 정도는 지역을 넓혀야 기회가 많다고 했다.
층수는 한국식으로 1층 내지는 2층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더 높은 층도 상관없고, 방 크기는 40-60㎡, 발코니는 있으면 좋고, 욕조는 없어도 상관없고 등등..
하나하나 조건들을 채워나갔다.
내가 보호소에 들어와 처음 구드룬과 대화했을 때 그녀가, 집은 맨 나중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새 3주가 되었고 나는 집을 보고 있었다.
서류 작성을 마치고 나니 뭔가 서운했다.
이렇게 빨리 집을 구하게 되다니, 조금 슬프다며 여기 더 머물고 싶다는 말을 했다.
짧은 문장 속에서 내 말 뜻을 잘못 이해한 G는 깜짝 놀라며,
지금 당장 나가라는 게 아니라고, 보호소에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 기한 없이 머물 수 있고 더 오래 있고 싶으면 얼마든지 더 있어도 되지만, 서류를 작성해 낸다고 해서 당장 집이 구해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빨라도 8월 말이나 9월 초는 돼야 할 거라고.
나는 다시 차근차근 말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모든 게 낯설고 이상했어요. 빨리 집을 구해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죠.
그런데 어느새 이곳 생활에 적응을 했고, 이제는 여기 사람들이 좋아졌어요.
언젠가는 자립해서 여기를 떠나야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막상 이렇게 집을 찾기 시작하니 서운하네요."
내가 말을 마치며 눈물을 글썽이자 G는 상냥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 사이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벌써부터 보호소를 떠날 일이 서운해진다.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