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잡센터와 가정 변호사에게 다녀오다

2015.06.30.


아주 무더운 날이었다.

오전에 G 처음으로 잡센터에 방문해서 서류를 제출하고 왔다.



Antrag(신청)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략 내가 이제 싱글맘으로 아기를 혼자 키우며 Sozialhilfe(정부보조)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Job Center (잡센터)는 이름 그대로 실업자들에게 실업수당을 주고, 일자리도 소개해주는 그런 곳인데 나 같이 아기가 어린 엄마들도 일종의 실업자이기 때문에 이 곳에서 수당 신청을 하면 된다.



담당자에게 내 서류를 넘기고 간단한 소개와 학력, 할 수 있는 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했고, 당연히 유창한 한국어와 중국어, 독일어, 영어를 조금씩 할 수 있다고 했더니 잡센터 입장에서 최상의 고객이라고 했다.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도 없고, 외모가 단정하며, 어학능력이 있고 학력도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가 있는 고객들은 따로 리스트를 만들어 분류하는데 보통 노숙자 같은 외모에 뭔가 중독이 있거나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다만 내 경우, 한국에서의 학력이 독일에서 인정이 되느냐가 중요하니 관련 서류를 준비해 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지금 당장 일자리를 알아볼 건지, 아니면 엘턴 짜이트(육아휴직)를 신청할지 물어봤다.

나는 원래 직업이 없던 사람인데 육아휴직이 가능하냐고 했더니 당연하단다.



독일에서는 아기가 만 3세(36개월)가 되기 전까지는 유치원에 갈 수 없고 부모가, 특히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을 독일 정부 측에서도 권장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만 3세까지는 정부 보조금, 그러니까 일종의 실업급여를 받으며 아이를 마음 편히 돌볼 수 있다.



나는 당연히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했고, 담당자는 알겠다며, 나중에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나서 일을 하고 싶어 지면 서류를 준비해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자리에 관련된 일은 이 담당자에게 문의하고, Wohnung(집)이나 Geld(돈)에 관한 문제는 저 담당자에게 문의하라는 말을 했다.







오후에는 아이  이혼 담당 변호사 만나러 갔다.

이혼을 결정한 날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도 일주일이 넘게 기다려야 했던 테아민이었다.



50대 정도의 쇼트커트 머리인 변호사는 정적이면서도 친절하고, 특히 아이에게 상냥했는데 글씨체가 아주 독특하고 예뻤던 게 기억에 남는다. 꼭 지렁이 기어가는 것 마냥 아랍어처럼 독일어를 쓰는데 어찌나 예쁘던지.. 예술적이었다.



할 말이 정말 많아 묻고 싶었던 걸 다 적어갔는데, 막상 그녀에게서 속 시원하게 해결된 건 없었다.



1. 영주권 문제는 내가 독일 시민권자의 엄마이기 때문에 독일에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신경 쓰냐며, 정 원하거든 외국인암트에 가서 해결하라고 했다.


2. 지난 두 달간 못 받은 생활비는 돌려받을 수 없지만, 킨더 겔트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 가져가는 것이 맞기 때문에 지난 두 달치를 소급해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다.


3. 남편이 외국으로 취직할 경우, 내 부양비를 받는데 문제가 생길 수는 있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아이의 양육비는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이 독일을 떠나 있는 동안 정부가 대신 지불하고 남편이 독일에 다시 들어왔을 때 청구한다고 한다.


4. 남편으로부터 몇 년간 내 생활비를 받을 수 있냐는 질문이 가장 절망적이었다.

우리의 혼인기간이 너무 짧기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받을 수도 없고, 법적으로 남편 수입의 45%를 받는 건 맞냐고 물었더니 그 정도까지 많이 받을 수는 없을 거라고 했다.


가장 속이 상한 부분이었다. 모든 것은 남편의 3년 치 월급명세서를 받아 계산을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했다.



변호사에게 찾아가기만 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대화를 나누고 나니 더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당신은 나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게 맞죠? 어떤 경우라도 제 이익을 위해 유리한 쪽으로 일을 해주시는 거죠?



그랬더니, 물론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다정하게 내 손 붙잡고 어쩌냐고 울어 줄 사람보다는 아이와 나의 미래를 위해 실질적인 이익과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줄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나는 변호사로부터 팩스 두 장을 받았다.



두 장은 변호사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 복사본으로 3년 치 월급명세서와 그 밖의 필요한 서류를 보내라는 내용이었고, 다른 한 장은 나에게 보낸 편지였다. 남편에게 이러이러한 편지를 보냈다는 걸 알리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아마도 그 자식은 이 편지를 받고부터 나를 찾기 시작한 것 같다.

복잡한 이혼 과정에 필요한 무수한 서류더미에 깔릴 자기 모습,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 청구서 찍힌 액수대로 매달 통장에서 돈 나가는 소리가 들렸겠지.







나는 결혼 생활 중에 가끔 이혼을 생각할 때마다 그렇게 상상했었다.



만약 우리가 이혼을 한다면, 어른스럽게 이혼을 결정할 것이며, 남편은 시간을 두고 나의 자립과 영주권 문제를 친절히 도와주고, 여전히 빈이의 부모 노릇을 충실히 하며 좋은 관계로 지낼 것이라고.



그러나 현실로 닥친 이혼은 달랐다.



그는 이혼으로 치닫기까지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없이 연락을 끊고 이기적으로 굴다 지독히도 더럽게 끝을 냈고, 한 푼이라도 덜 주기 위해 끝까지 나를 속였다. 그 와중에 아기는 안중에도 없었고. 지금도 오로지 본인의 금전적, 정신적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늘 사이가 안 좋았다거나 악다구니 쓰며 살았던 것도 아닌데, 현실의 이혼은 그랬다.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 "연애시대"에 나오는 손예진과 감우성 같은 이혼은,



없었다.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검색어 "연애시대"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이전 08화 반짝반짝 빛나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