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없는 외국인이 독일에서 집 구하기란
2015.07.01.
보호소에 들어온 첫 2주간 나는 열심히도 집을 찾았다.
핸드폰을 개통하고 인터넷이 되자마자 매일 부동산 사이트를 뒤졌다.
내가 이용하는 사이트는 http://www.immobilienscout24.de/ 인데, 첫 페이지에 본인이 원하는 조건을 적어 넣으면 나와있는 집 검색을 할 수 있다.
대략 내 조건은,
Wo / 어디 : 시내 또는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졌지만 내가 살던 동네
Preis bis / 월세는 얼마까지 : 700유로 안팎
Zimmer / 방 개수 : 2-4개
Fläche ab / 사이즈는 얼마부터 : 50㎡ 이상
그 외,
1. 북향을 제외한 발코니와 욕조는 꼭 있었으면 좋겠고(아기가 있으면 발코니와 욕조는 정말 바라게 된다)
2. 세탁실이 지하에 따로 있는 것보다는 화장실이나 주방에 세탁기를 넣을 수 있는 구조였으면 좋겠고(아기 안고 빨래하고, 널고, 걷으러 오르내리기 힘드니까)
3. 주방이 Einbauküche 였으면 좋겠고 (독일은 이사 갈 때 싱크대를 다 떼어간다. 아인바우퀴혜는 주방에 싱크대, 조리대 및 가스레인지가 이미 딸려있다는 뜻이므로 내가 살 필요가 없으니 돈이 굳는다)
4. 주방 수도꼭지가 신식에 레인지가 인덕션이기를. 독일은 50년 이상 된 집들이 많아 수도꼭지가 뜨거운 물, 더운물을 따로 틀어야 하기도 하고, 보일러를 틀고 기다려야 뜨거운 물이 나오기도 하며 -0- 가스레인지는 거의 없는 대신, 인덕션도 아니면서 가스불도 아닌 아주 요상한 레인지가 있는 집이 많다.
써 본 입장에서 이거 정말 싫다.. 아기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요리만큼 중요한 게 없기 때문에 주방은 정말 중요하다.
5. 차가 없으므로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해야 하고, 유치원과 마트가 가까워야 한다. 내가 까다롭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중교통을 한국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전철역까지 걸어서 30분, 그리고 버스가 30분에 한 대 다니는 곳에 산다는 건 정말 생각보다 아주 불편하고 힘들다.
전에 살던 곳은 마트를 가려면 유모차를 밀고 20-30분이었다. 날씨 좋은 여름은 짧고, 늘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씨가 대부분이며, 겨울은 길다 이곳은. 게다가 나는 모든 짐을 차 없이 유모차에 실어 가져와야 하고 아기가 크고 나면 맨 몸으로 들고 와야 하기에 ㅡㅡ.
인건비가 비싼 이 나라에서 이사를 한다는 건 돈을 그냥 태워 없앤다는 뜻인데, 거기다 혼자 몸으로 아기를 데리고 이사를 자주 할 수도 없기 때문에 당장 월세가 조금 비싸더라도 다시 이사할 필요가 없이 오래도록 살 수 있는 괜찮은 집을 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내가 살던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미 1년이나 살아서 익숙한 데다 내 친구들도 여기 있고, 모든 생활 동선이 이미 이곳 생활에 적합하게 짜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내 조건은 이미 엄청나게 까다로웠다. 까다롭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살아봐서 불편함을 아는 것들인데 접고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조건에 들어맞는 집 자체도 적었고, 그나마 마음에 드는 몇몇 집은 연락처 없이 내가 사이트를 통해 중개인에게 E-mail을 보내고 연락을 기다리는 형식이었다.
맘에 드는 집 보고 바로 전화 걸어 집을 보러 가는 일은 없다. 중개인과 통화가 된 뒤에도 적어도 2-3일에서 일주일은 기다려야 집을 보러 갈 수 있다. 독일은 뭐든 일처리가 답답하고 오래 걸린다.
연락처가 있는 몇몇 집에는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1월에 이미 남편 없이 혼자서 집을 보러 다니면서 통화도 해봤기 때문에 독일 사람과 전화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내 어설픈 독일어를 듣자마자 집이 나갔다며 전화를 끊은 중개인이 둘이었다.
느낌이 왔다.
당연히 외국인이라 거부한 것이다.
그 집들은 방금 사이트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집이었고, 내가 사는 동네는 집 두 개가 그렇게 순식간에 나갈 만큼 수요가 있는 지역이 아니며, 무엇보다 열흘이 넘은 지금까지도 사이트에 그대로 올려져 여전히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중개인이 친절해도 결과는 같았다.
그다음 질문은 "직업이 무엇이냐" 였으니까.
독일에서는 집을 구할 때 집주인이 월급명세서까지 요구한다.
월세를 안 밀리고 잘 낼 것 같은 사람에게 집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직업이 없는 외국인에 어린 아기가 딸린 여자.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다음 중개인과 통화를 할 때는,
"나는 직업이 없지만 아기가 유치원에 가고 나면 직업교육을 받을 것이고, 그때까지는 정부에서 집세를 내주기 때문에 월세를 잘 낼 수 있다"라고 먼저 얘기했지만 이 역시도 나의 오산이었다.
그 중개인의 대답은,
"미안해요. 우리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사람을 임차인으로 들이고 싶지 않아요."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음. 이게 지금 독일에서의 내 위치구나.
현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제야 G가, 일단 정부 보조금을 위한 서류를 먼저 작성해서 제출한 뒤 집은 마지막에 천천히 함께 구하자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보호소를 나가고 싶어 수시로 부동산 사이트를 검색하고 전화를 돌렸던 건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으려면 우선 정부기준에 맞춘 집을 구해야 했고, 또한 여기저기서 일시적인 경제적 원조를 받는다 한들 독일에서 직업을 통한 고정소득이 없는 외국인인 나에게 내가 원하는 조건의 그런 좋은 집을 세를 줄리도 만무했다.
독일 사람들, 대놓고 차별하지는 않지만 임차인에 대해서는 암묵적인 기준이 무척 까다롭다.
그나마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는 덜하지만 내가 살던 동네는 돈 좀 있는 노인네들이 조용히 사는 동네라 외국인을 임차인으로 거의 들이지도 않았고, 임차인에 대한 면접기준도 높았다.
전에 살던 집은 경쟁자가 임신 중인 레즈비언 커플이었는데 집주인이 우리를 고르면서 그랬다.
레즈비언 커플이 매일 드나드는 꼴을 어떻게 보겠냐고.
정상적인 가족이 들어오게 돼서 기쁘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7월 1일 이후로 더 이상 집 찾는 일을 그만뒀다.
그리고 서류제출이 다 끝나고 일주일 뒤, G가 오늘은 집을 구하자며 나를 불렀다.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