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하는 서류를 돌리고 오다
2015.07.15.
집을 구한다고 각 회사별로 서류를 작성하면서도 사실 회사 이름이 뭔지,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안 갔다.
B.G.W 빼고는 다 처음 들어본 회사였기도 하고.
그런데 이번에 서류를 돌리러 다니면서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G 말로는, 직접 서류를 들고 가서 인사하고 제출하면 아무래도 집을 구하는데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음. 그렇군.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옷 중에 가장 예쁜 옷을 골라 입고 화장도 곱게 하고 구두를 신었다.
GAGFAH를 제외한 세 군데는 같은 장소에 모여있다고 했다.
우반 역에서 내리니 찻길 건너 맞은편에 바로 Freie Scholle가 있었다.
나는 서류만 내고 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데스크 직원이 나더러 Beratungstermin 잡고 왔냐고 물어봤다.
베라퉁스테아민? 많이 들어본 단어이긴 한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고, 테아민 잡았냐 아니냐는 걸로 문맥을 대충 파악하고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직원을 불러준단다.
한 5분 기다리니 젊은 남자 직원이 나를 불렀다.
따라 들어가며 테아민을 안 잡았는데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친절하게 지금 하면 된다고 했다.
뭘 해야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서류에 있는 내용을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이라고 했다.
구드룬이 해준 얘기도 있고 해서 나는 차분하고 정성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집을 구하는데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하다, 독일은.
어디서 들으니, 독일에서 집 구하면서 집주인 만나는 날, 면접 때도 안 입어본 옷을 차려입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클래식 듣는 걸 즐기고, 집 꾸미는 게 취미라고 말을 했다고 하니..
독일에서 집 구하는 일이 어떤 건지 감이 오려나.
그 직원은 입력을 마치고 검색을 하는가 싶더니, 당장은 빈 집이 없지만 자리가 나는 대로 편지를 주겠다고 했다.
언제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고, 다만 회사 측 연락을 기다려보다가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내 쪽에서도 먼저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해보라고 했다.
두 번째는 LEG.
프라이 숄레에서 나와 같은 건물 모퉁이를 돌아 5분 정도 걸어가니 바로 보였다.
LEG에서는 서류를 받자마자 자리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 저렴한 월세의 집은 공급도 적을뿐더러 수요가 늘 많아 구하기 쉽지 않겠지만, 매달 중순쯤 회사 측으로 연락은 한번 넣어보라고 했다.
흠. 내가 뭐라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딱 잘라 저리 말하니 좀 씁쓸했다.
그다음 B.G.W는 LEG와 거의 붙어있는 건물이었다.
친절하고 젊은 여직원이 상담을 해줬는데 나는 들어가자마자 먼저 악수를 청했고 내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의자에 앉자마자 그 직원의 이름을 한 번 불렀다.
독일 사회에서 첫 만남을 가질 때, 인사와 이름을 교환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처음에는 부끄럽기도 하고 습관이 되지 않아 악수를 청하는 게 어려웠다.
또 한국에서는 인사와 동시에 이름을 말하거나 묻는 대신 나이를 묻고 호칭을 정하다 보니 여전히 그 습관이 남아있어 나는 본의 아니게 이름도 말하지 않는 무례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런데 예전에 5살짜리 남자아이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정중하게 악수를 청한 일이 있었다.
어찌나 멋지던지..
나는 그 꼬마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 뒤로는 나도 자신 있게 악수를 청하게 되었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익명의 관계와 이름을 아는 관계는 아주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상담직원의 이름을 한번 부르면 그 직원은 무의식 중에 책임감이 생기고, 나에게 불친절하게 대하기 어려워진다는 뭐 그런...
당장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인간관계에 도움이 될만한 그런 팁들을 이제는 적극 활용하며 살려고 한다.
어쨌거나 나도 곧 사회생활에 뛰어들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집을 구하는 서류를 돌리러 다니며 나는 나름 사회생활에 대한 워밍업을 한다고 생각했다.
Beratung 사전을 찾아보니 조언, 상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마도 상담예약하고 왔냐는 뜻이었던 것 같다.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