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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년들의 향연

보호소는 오래 있을 곳이 못된다

by 뿌리와 날개

첫 주는 보호소가 낯설고 불편했다.


둘째 주는 그냥 그랬지만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셋째 주에는 어느새 정이 들어 이곳도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넷째 주...


굳이 이 곳에 오래 머물 필요는,

아니 될 수 있으면 빨리 나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사건은,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도 담배를 피우며 Ist mir egal (내 알 바 아냐)을 외치던 St로부터였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데 외출하고 돌아온 St의 무리가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더니 Ficken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뜻을 물어보니 오입질하다 정도 되는 듯했다.



자기들끼리 하는 것도 모자라 아이 앞에서도 낄낄거리며 그 단어를 발음하도록 가르쳤고, 내가 못하게 할수록 더 신이 나서 지껄였다.



주방을 나서며 한 마지막 말은,


"나는 이제 Ficken 하러 갈 테니까 너도 슈파르카쎄 은행 앞에 가서 Ficken을 외쳐봐! 아참, 니 무씨는 닫혀있겠지?"였다.



무씨인지 무찌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문맥상 당연히 Vagina 였을 것이다.

어린아이 앞에서 상식을 벗어난 음담패설이었다.







두 번째 사건은,

B와 J의 싸움이었다.



나는 잠이 들어서 몰랐는데 밤 10시쯤 보호소로 가정폭력을 당한다는 10대 소녀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그로 인해 싸움이 붙었다고 했다.



J의 입을 통해 먼저 들은 내용은 이랬다.

통화를 마치고 이미 퇴근한 G에게 연락을 해야겠다고 하는 J에게 B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고 했다.



유겐트암트에 뺏긴 큰아이를 들먹이며 네가 문제가 있으니 아이를 뺏긴 것 아니냐며 모욕을 줬고, 화를 내자 자신의 임신한 배를 때리려고 했다고 했다. 밑도 끝도 없는 스토리였다.


J는 이번에도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하느라 앞뒤가 잘린 내용을 전한 듯했다.

항상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



나중에 B에게 들은 내용은 이랬다.

그 당시 전화 담당이 J 였는데 느릿느릿 전화를 받으러 나오더니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냐며 귀찮고 피곤하다고 블라블라 불평불만을 늘어놨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10대 소녀의 보호소 입소 절차 때문에 담당자에게 연락할 일을 B에게 미뤘던 것 같다. 그래서 보니가 니 일은 네가 하라며 한 소리했고 그러다가 이죽거리느라 아이를 뺏긴 얘기도 했던 가 보다.


물론 B의 말이 맞긴 하지만 J에게는 분명 아픈 부분이다.

게다가 그냥 시늉뿐이었다 치더라도, 아무리 시비가 붙었어도 그렇지 초기 임산부의 배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는 게..

B도 정상은 아니었다.







세 번째 사건은,

금요일 아침에 일어난 일인데 가장 끔찍했다.



그 전날인 목요일 저녁부터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꺼이꺼이 울어대는 S가 안쓰러워 다가가 안아주며 위로를 해줬었다.



왜 우냐고 물었더니, 엄마랑 통화를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라고 한다며 사랑하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도 없이 혼자 이 곳에 있는 게 너무 외롭고 쓸쓸하다며 또 울었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집으로 돌아가지 왜 여기 있냐고 했더니, S가 말을 시작했다.



가부장적 문화를 가진 나라 출신인 S는 아버지와 남자 형제 세명으로부터 끊임없이 폭력과 학대를 당하다 멀리서 이 동네까지 도망을 온 케이스이다. 매를 맞다 맞다 죽을 것 같아 도망친 거고, 자기가 돌아가면 분명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이 자기를 죽도록 때릴 거라고 했다.

자기 어머니도 평생을 그렇게 맞고 살았다며...



가정폭력의 수준도 어마어마했지만, 그 속에서 자란 S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두서없이 십 여 분을 혼자 떠드니까.







금요일 아침, 아침식사를 해 먹으러 기분 좋게 내려왔더니 이른 시간부터 주방에 S가 혼자 앉아 또 울고 있었다.

나 아침 먹을 건데 같이 커피 한 잔 하겠냐고 했더니 좋다길래 커피를 끓여줬다.



아침 먹는 동안 또 쉴 새 없이 얘기를 시작하기에 다 들어주고 위로도 해주고 정리를 하려 일어나는 찰나,

갑자기 서랍에서 팔뚝 길이만 한 긴 빵칼을 꺼내더니 아이한테 칼 손잡이를 내어주며 자기 팔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얘, 내 팔목 좀 그어줘. 그러면 나도 편안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게 지금 무슨 미친 짓인가.



너무 놀라 입이 딱 벌어져있는 나를 한번 보고도 그녀는 팔목 긋는 시늉을 계속하며 똑같은 말을 지껄였다.

나는 아이가 그 광경을 볼 수 없도록 내 쪽으로 돌려 안고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아주 강한 어조로 말했다.



"너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린애 앞에서 너 미쳤니?

다시는 내 아들 앞에서 그런 짓 하지 마."



그녀는 웃으며, "Das macht nur Spass"라고 했다. (그냥 재미있으라고 한 거야)



"너는 이게 재미있니? 나는 재미없거든.

한 번만 더 내 아들 앞에서 그랬다가는 나 정말 너한테 화낼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아들 앞에서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

네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도 알겠고, 죽고 싶다는 마음도 이해해.



그런데 여기 보호소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딨니. 우리 모두 그런 시간을 겪고 있잖아.

이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분명 좋은 미래가 있을 거지만, 네가 지금 그런 선택을 하면 좋은 미래는 절대 오지 않아.



잘 생각해봐."



내가 이런 얘기를 하자 S는 마치 선생님 앞에서 혼나는 학생처럼 고개를 떨구고 기가 푹 죽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이내 더 소름이 끼쳤다.



감히 내가 보는 앞에서 내 아들에게 칼을 들이밀고 팔 긋는 시늉을 하다니..

가뜩이나 눈썰미도 좋은 아이인데, 한창 남들이 하는 거 보고 따라 하는 거 좋아하는 시기에 행여 보고 배울까 정말 소름 끼쳤다.



예쁜 것만 보여줘도 모자랄 내 아이에게 그런 꼴을 보이다니.

짜증 났다.







덕분에 아침부터 못 볼 꼴도 보고 아주 불쾌했다.

나는 이 일을 바로 G에게 말했다.



G 역시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그녀가 그런 행동을 계속한다면 보호소에 머물게 둘 수 없다고 했다.

바로 주의를 주겠다는 대답을 듣고 나는 돌아섰다.



그 밖에도 많다.

아이 교육상 한숨 나오는 일은.. 이곳에서 다반사이다.



그나마 독일인인 Y와 B는 아이에 관해서 내가 주의를 주면 알겠다며 받아들이고 물러선다.

당연하다. 내가 엄마고, 내 자식이니까.



그런데 S나 St, A 등 외국인들은 의식 수준 자체가 다르다.

내가 초콜릿은 안된다고 해도, 홍차도 안된다고 해도, 아무거나 주지 말라고 해도 실실 웃으며 내가 보는 앞에서 아이에게 내가 주지 말라는 것을 쥐어주고 좋다고 낄낄거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가 아직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라는 점.

그 점에 감사하다.



다음 주부터는 그들과 좀 거리를 둘 생각이다.


어서 좋은 집이 나와서 이사를 가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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