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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국제이혼은 법정 드라마가 아니다

변호사와의 두 번째 미팅

3주가 지나가는데도 변호사에게서 감감무소식이었다.

남편이 팔아치운 내 물건들 리스트도 전해줄 겸 테아민을 잡으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변호사가 안 그래도 내게 연락을 하려고 했단다.

남편의 수입에 대한 서류와 편지가 도착했다며.



내게 도움을 주시는 그 한국분 말씀에 따르면, 변호사마다 일처리 속도가 다 다른데 그분 변호사는 일을 맡기면 3일이 채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반면 그분 남편 변호사는 뭘 하든 3주씩 걸렸다고 한다.

내 변호사도 그쪽인 것 같았다. 느린 사람..



뭐 아무렴 괜찮았다.

일만 야무지게 잘한다면야..







사무실에 들어가 앉으니 변호사는 남편이 보내온 이메일을 프린트해 내게 전해주었다.

어제 받아 방에 보관해두고 나는 지금 아는 아이엄마 집에  있느라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않아서 내용은  모르겠다.



몇십 유로짜리 자잘한 숫자들이 항목 별로 쓰여있던 걸로 봐서 남편이 매달 고정적으로 써야 하는 돈을 적어 보낸 것 같았다.



남편이 팔아 치운 목록을 핸드폰에 적어갔더니 자기 이메일로 보내랜다.

그 자리에서 보내줬다.



변호사는 내게 내 계좌에 관한 서류와 잡센터에서 보낸 정부 보조금에 관한 서류들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녀는 전화통화를 할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남편이 보낸 편지가 왔으니 찾으러 오라고만했을 뿐.



여기는 그런 식이다.

일단 오라고 해서 그냥 빈 손으로 가면 볼 일을 못 보고 허탕치고 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필요한 서류들을 미리 물어보고 내가 챙겨가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안 챙겨준다. 그냥 내 손해..



비자를 받을 때도 암트에서 먼저 비자받으러 오라고 편지가 왔길래 그거만 들고 가서, 대기표 뽑고 1시간을 기다려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작성해 올 서류 한 장을 줘서 그거만 들고 다시 집으로 왔다.

한여름 땡볕에 유모차 밀고 집에서 시내까지 30분 넘게...



그럴 거면 대기표 뽑을 때 뭐하러 왔냐고 왜 물어볼까?

비자받으러 왔다고 대답할 때 그냥 서류 주고 돌려보내면 간단할 걸.

아니, 그보다 더 현명한 건 비자받으러 오라고 집으로 편지를 보낼 때 작성해야 할 서류도 같이 보내주는 거다.

그러면 집에서 미리 다 적어올 거 아닌가.



적어도 두 번은 와야 할 일이 한 번으로 줄어들 것을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일을 하는지..

그래도 여기는 변호사 사무실이고 일반 관공서가 아니니 뭐가 좀 다르겠지 싶어 그냥 갔는데 역시나 기대를 말아야 한다.

아무 서류도 없으니 일을 진전시킬 수 없어 다음 주 수요일 다시 테아민을 잡았다.








그러고 나서 남편에게 사적인 연락이 두 번 왔다는 얘기를 하며 조언을 구했다.

남편이 내게 메신저로 계좌번호와 은행을 물어봤는데 나는 사적인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 차단을 했다고 했다.



그녀는, 왜 그랬냐며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불쾌하기 때문이라고 했고, 모든 일은 변호사인 당신을 통해서 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했다.

계좌번호 역시 당연히 남편이 나와 사적으로 주고받을 게 아니라 유겐트암트 쪽에 물어봐도 되는 거고.



그러자 그녀는, 내가 계좌번호를 주지 않으면 남편이 어떻게 입금을 하겠냐며 당장 알려주라고 했다.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물론 사적으로 알려줘도 되지만, 일단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고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한번 공손히 그녀에게 부탁했다.



"나는 남편과 사적으로 연락하고 싶지 않아요.

그가 어떤 속임수를 쓸지 모르고, 또 그게 아니라고 해도 불쾌해요.

모든 연락은 변호사인 당신을 통해서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내 계좌번호를 전해주세요."



그러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양 손으로 제스처까지 동원해가며 나에게 말했다.



"이봐요.

당신은 그냥 메신저로 숫자 한 줄만 적어 보내면 되는 일이지만 내가 전해주려면 양식에 맞춰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컴퓨터를 켜서 프린트도 해야 하고, 상대방에게 그걸 다시 보내야 하고, 회신도 받아야 해요.

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라고 하죠?

그냥 당신이 한 줄만 써서 보내면 되는 걸."



그건.. 변호사인 그녀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 아닌가?

그게 그녀의 직업이니까.

그러나 하도 당당하게 말을 하고, 또 그 말이 맞기도 하니, 나는 주눅이 들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내 편이 되어 싸워줘야 할 내 변호사가 그리 말을 했다.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녀와 맞서 싸울 수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 한국 분도 통화로 그렇게 말씀하셨다.



보통은 변호사들이 전남편과 연락을 하지 말라고 미리 말을 해준다고.

본인 변호사도 먼저, 남편에게 혹시라도 연락이 오거든 나는 너랑 할 말 없으니 변호사 통해서 얘기하라고 하고 전화를 끊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변호사의 역할도 그런 것이다.

클라이언트를 보호하는 것.

그게 1차 임무 아닌가? 미국 드라마 "굿 와이프"를 너무 많이 봤던 걸까.. 아니면 여기가 미국이 아니라 독일이라 그런 걸까..



게다가 나는 남편의 연락을 피해 보호소에 살고 있는 사람인데...

내 변호사는 나를 무시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차피 돈이 되는 건수도 아닌데 어눌한 독일어나 구사하는 동양 여자가 자기를 귀찮게 만드는 게 싫었던게지.



서글펐다.

이래서 변호사를 고용하기 전에 잘 알아보고 고용해야 하는 거라고 한다.

대충 일을 맡겼다 잘 못한다고 해서 다른 변호사로 바꾸면, 그들끼리도 동료의식이라는 게 있어 결코 내게 득이 될 게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당시 상황이 절박했고, 변호사에 대한 조언을 받을 곳도, 기다릴 여유도 없었을뿐더러 여름휴가 기간이 끼는 바람에 이 변호사가 그나마 테아민이 가장 빨랐다.



남편이 그런 말을 했었다.

그 여자가 이혼을 종용하며, 자기가 이혼을 결정하기만 하면 가장 능력 있는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고.



그래서였을까.

6월 22일에 나더러 집을 나가라고 했지만 그는 이미 23일에 변호사가 있었다.

22일에 부랴부랴 테아민을 잡은 나는 가장 빠른 테아민이 30일이었고 나머지는 7월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그는 이미 있었다.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다 계획했던 것이다.



변호사만 선임하면 알아서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표지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검색어 "Traurige Frau"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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