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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24. 2023

이혼한 싱글맘인 딸에게 아빠란?

이혼한 내새끼 시리즈 2/3

오늘은 <이혼한 내새끼 시리즈 제2탄> 이혼한 싱글맘인 딸에게 아빠란?입니다. 영상에 들어가기 앞서 제가 전남편 집에서 나와서 아기랑 낯선 보호소에서 살던 당시에 썼던 글을 하나 읽겠습니다. 긴 글이기 때문에 짧게 줄여서 오늘 영상과 관련된 부분만 소개해 드릴 거예요.








나는 망가지고 있었다. 정말 제정신으로 견디기 힘든 2주였다. 사람이 왜 미치는지 알 것 같았다. 제정신으로 견디기 힘드니 돌아버리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그 새끼가 너무너무 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와 살아가기 위해 발악을 하며 24시간 빈이를 돌봐가며 살길을 찾고 있는데, 그게 너무 버거워 이제 나는 내 새끼가 예쁘기는커녕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아이 팔을 잡아끌고, 아이를 함부로 다루는 엄마가 되었다.


우리를 죽으라고 길거리에 내버리고 혼자 살겠다며 도망간 건 그 새끼이고, 아이와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건 나인데, 그런데 내 아이는 그런 아빠를 그리워하고 나는 도리어 매일같이 내가 얼마나 못되고 나쁜 엄마인지를 매 순간 실감하며 살고 있다.


아이를 버리고 간 건 그 새끼이고, 아이를 곁에서 지키고 있는 건 나인데, 왜 내가 이런 나쁜 엄마가 되어야 하지? 게다가 그렇게 사랑스럽던 내 아이는 어디로 가고, 정말 미친 아이처럼 악을 쓰고 침을 뱉고 온몸으로 분을, 화를 내쏟는 아이가 내 귀청을 찢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급기야는 멍해지며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몸도 떨리고 이도 떨리고, 치가 떨리는 것이다. 창 밖으로 보이는 모든 게 다 싫었다. 독일 하늘도 싫고, 독일 땅도 싫고, 독일 사람들도 싫고, 독일어도 싫고, 모든 게 싫었다. 다 싫었다.


잠든 아이를 눕혀놓고 울고 또 울었다. 창 밖으로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다. 밥을 먹다가도 울었고, 길을 걷다가도 울었고, 가만히 앉아서 울다가, 누워서 울다가, 아이를 안고 울다가, 흐느끼며 울다가 꺽꺽거리며 울다가…


아이는 우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 눈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눈에서 물이 자꾸 떨어지니 신기했나 보다. 그런 아이의 작은 손바닥이 가슴 아파서 나는 또 울었다.


아이를 보면 그렇다. 누가 꼭 내 심장을 터지라고 꼭 쥐는 것처럼 그렇게 아프다. 어떻게 이렇게 아리고 아플 수가 있는지. 오만정이 떨어진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발 붙이고 살며 독일 사람들과 섞여야 한다는 것 자체도 지금은 고역이다.



*글의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rootandwings/73








그때에는 매일매일이 저런 지옥 같은 나날들이었어요. 15개월짜리 아기를 데리고 언제 구해질지도 모르는 집을 구하러 매일같이 땡볕에 유모차를 밀고 다니던 때였는데, 그렇게 한 한 달을 지내고 나니까 어느 순간부터 사지가 떨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렇게 정신이 회까닥 하는 거예요. 저는 그 경계에 있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정신줄을 놓게 되는 거구나, 하는 걸 그때 경험했죠.


그날도 이렇게 창가에 앉아서 까만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 새카만 독일 하늘이 블랙홀같이 나를 빨아들일 것 같아서 너무너무 무섭고, 두렵고 그랬거든요. 정말 저는 그때 심정이 칠흑 같은 밤에 시커먼 바다에 빠져서 아기랑 둘이 목만 내놓고 구명조끼 하나 의지해서 동동 떠있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공포 그 자체였어요. 그래서 그날도 그렇게 우두커니 그 새카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기억 저 편에서, 아주아주 먼 저편에서 어렴풋이 뭔가가 들려오는 거예요. 아빠의 노랫소리였습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옛날에 언젠가 아빠가 저를 데리고 밤바다로 산책을 나가신 적이 있거든요. 우리는 서울에 살았지만 아빠 고향이 바닷갑니다. 아마 시골에 내려가 있던 어느 때였던 가봐요. 그 바닷가 도로 옆에 보시면 이렇게 담벼락이 있거든요. 그 담벼락에 앉아서 아빠랑 둘이 밤바다를 보고 있었어요.


저는 많아봐야 한 대여섯 살쯤 됐을 거 같은데 그때 아빠가 저를 옆에 앉혀놓고 아빠의 인생 가치관과 철학, 꿈같은 것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허세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이해합니다. 왜냐면 아빠도 그때는 아직 20대였으니까요.


아무튼 정확한 대화의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대화의 맥락이랑 분위기, 오감으로 전달받았던 그날의 느낌은 생생합니다. 밤공기는 따뜻했었고, 새카만 밤하늘에 별이 얼마나 가득한 지 어린 마음에 제 머리 위로 쏟아질까 봐 좀 걱정이 됐던 거 같아요.


그리고 밤바다가 굉장히 까매서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게 좀 무서워지려고 했다가도 옆을 보면 바로 아빠가 있으니까 다시 든든해지고 또 무서워질 만하면 아빠가 옆에 있어서 다시 괜찮아지고 그랬어요.


그리고 이야기 끝에 아빠가 저한테 노래를 하나 불러주십니다.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 아세요?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가느냐.



길지 않은 노래라서 그냥 좀 불러드리려고 했는데 울컥해 가지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눈물이 쏟아져서. 한 네다섯 번 시도를 해봤는데도 안 돼가지고 여러분이 직접 찾아보셔야 될 것 같아요. 잘 모르신다면.








제가 그 보호소 창가에 앉아서 시커만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저렇게 한없이 절망과 공포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던 그때에, 귓가에 아빠의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노래를 부르시던.


어렸을 때 기억이 그렇게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한번 그 기억의 물꼬가 트이니까 이 모든 추억들이 물밀듯이 밀려들기 시작하는데, 그 뒤로 아빠가 나를 위해서 해준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촥 스쳐지나갑니다.


내가 12살이나 먹어서도 밤에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기 싫어가지고 눈감고 자는 척하면 아빠가 굳이 깨우지 않고 집까지 안고 가셨던 거, 아빠 수염 뽑는 게 재미있어가지고 맨날 아빠 턱밑에 앉아서 수염을 뽑으면 아빠가 아프다고 그렇게 오두방정을 떨면서도 내가 한 번만 더 뽑게 해 달라 조르면 언제든 턱을 내어 주셨던 거.


제가 돈 달라 그러면 너는 돈을 허투루 쓰는 애가 아니라면서 항상 달라는 돈보다 많이 챙겨주셨던 거, 어린이는 커피 마시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자판기 커피를 마실 때면 꼭 저를 위해 한 모금 남겨주셨던 거, 그거 한 모금 얻어마시는 게 어릴 때는 정말 좋았거든요.


또 제가 뭐 잘못해 놓고도 자존심 상해서 절대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하고 고집부리고 있으면 제 옆에 와서 절대 혼내지 않으시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타일러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미안해져서 울면 가만히 눈물 닦아주셨던 거.


고등학생이나 돼서도 아빠 사랑이 확인하고 싶어서 손톱깎이 들고 가면 군말 없이 항상 손톱 깎아주시고, 귀이개 들고 가면 무릎에 누우라고 해서 잠이 솔솔 올 때까지 기분 좋게 귀를 파주시고.


또 대학 다닐 때도 아파서 학교 근처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셔서 아무 생각 없이 양념게장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밤 10시에 퇴근하시고 신선한 게장을 바로 담그셔서 한 시간 넘게 차를 몰고 오셔서 그걸 전해주고 가시던 아빱니다.


그렇게 그동안 잊고 살았던 모든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아, 맞아! 나 참 아빠 있었지! 나 이런 우리 아빠가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막 너무너무 힘이 나는 겁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자식이 죽어갈 때 다시 살게 하는 힘은 부모가 사준 나이키 운동화나 신형 아이폰이 아니라 그 쇠털같이 많았던 소소한 일상 속에서 수시로 느꼈던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이라는 걸요.


그게 제가 그 이후에도 빈이한테 다른 사람들이 물려준 옷을 얻어 입히고, 벽지가 너덜너덜한 집에 살면서 누구 초대하기가 좀 마음에 걸릴 때는 있었어도 빈이 앞에서 물질적으로 많이 못해주는 게 단 한 번도 미안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인생의 고난 앞에 쓰러진 자식을 살리는 힘! 그게 부모가 줄 수 있는, 그리고 반드시 줘야만 하는 가장 큰 유산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요.


저는 이혼하고 그 3년의 기간이 수류탄 터지는 전쟁터에서 무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숨을 곳을 찾아 기어 다니는 기분이었어요. 정말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신적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기분이 들 때마다 엄마아빠가 나를 사랑해 줬던 그 기억들이 단단한 방패가 돼서 그 어떤 포탄이 터져도 저를 지켜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1탄에서 말했듯이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라는 아빠의 그 말이 제가 독일에서 계속해서 싸워나갈 수 있는 무기가 되어줬습니다.








아빠는 그런 존재 같습니다. 엄마처럼 매일같이 통화하고 막 곰살맞은 얘기를 나누지는 않아도, 살다 보면 정말 힘든 그런 순간들이 오잖아요?


그럴 때 엄마는 내가 죽지 않게 내 입에 밥을 넣어주고, 내 몸에 피가 돌게 몸을 주물러주고, 내가 춥지 않게 옷을 입혀주는, 나를 육체적으로 직접 돌봐주는 그런 느낌이라면, 아빠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온몸으로 저에게 날아오는 화살들을 대신 맞아주면서 제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고 저를 정신적으로 끌어주는 느낌입니다.


제가 살면서 지금까지 삶의 큰 고비가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고비는, 언젠가 여러분께 말씀드릴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정말 저라는 사람 자체의 뿌리가 흔들렸을 때였고요. 이혼은 그 두 번째 고비였습니다.


그때마다 아빠는 단 한 번도 저를 혼내시거나 서럽게 만든 적이 없습니다. 제가 제 자신이 너무나 밉고 싫을 때에도, 그래서 차라리 나 자신을 다 망가뜨려버리고 싶을 때에도 아빠는 그런 제 앞에 딱 팔 벌리고 서서,


아빠가 다 막아줄 거야!

그러니까 겁먹지 마!

너는 그냥 걷던 길,
 계속 걸으면 돼!



그런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그리고 그런 아빠의 일관된 모습은 제 마음속에 깊게 뿌리를 내려서 튼튼한 기둥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아빠가 내 옆에 없어도, 아빠가 나한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어도, 매번 똑같은 위로의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아빠의 그 진심이 두고두고 제 마음 안에서 메아리처럼 울리는 겁니다.


살면서 힘들어질 때마다, 나는 아빠가 있으니까, 내 뒤에는 아빠가 버티고 있으니까. 그게 정말 큽니다, 여러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아빠가 또 완벽한 사람은 아닙니다. 집집마다 저마다 나름의 가정사가 있듯이 우리 가족에게도 아픔이 있고, 반목과 상처도 있습니다. 제가 철없는 아이일 때 빈이를 낳고 기르면서 점점 엄마로서 성장해 왔듯이 우리 엄마아빠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마 여러분들도 다들 그러시겠죠!


괜찮습니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키우셨건 모든 육아방식에는 다 일장일단이 있고요. 여러분이 자녀를 사랑하는 그 마음만 진심이었다면 그 사랑이 지금 현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든, 아직 싹 밖에 안 났든, 씨앗인 채로 여전히 자녀분 마음속에 묻혀있든 때가 되면 싹은 다 틉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자식을 잘못 키워서 이런 거 아닐까, 하는 죄책감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 생각보다 여러분의 자녀분들은 똑똑하고, 또 강인합니다. 살다 위기가 찾아오면, 여러분이 제대로 못해주셔서 마음 아려하시는 부분들은 싹 제쳐두고 여러분께서 전해주신 그 사랑만 어찌어찌 찾아서 동아줄같이 잡고 살아갑니다.


그 사랑이 비록 실낱같이 가느다란 것이었을지라도 위기를 맞게 되면 그 위기를 거름 삼아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하면서 희망으로 크게 키워서 살아갈 겁니다. 그게 바로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의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세요. 이런 영상을 찾아보실 정도의 여러분이라면, 그동안 자녀분에게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다고 느끼시건, 함께 한 시간이 적다고 느끼시건, 물질적으로 못해준 게 많아 미안하시건 삶의 위기에 빠진 자녀분을 수렁에서 건져내시기에 여러분의 사랑은 이미 충분합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또 힘들 때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영상에서는 <이혼한 내새끼 시리즈>의 마지막 편, 이혼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5가지 자세입니다. 뿌리와 날개라는 사람을 알게 되신 이후로, 이 젊은 애기 엄마는 어쩜 이렇게 힘든 일도 잘 이겨내고 외국에서 야무지게 잘 지낼까, 궁금하셨던 분들 많으시죠? 그 비법을 다음 영상에서 모두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저의 영상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고,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자유! 세상 모든 한부모 가정을 향한 자유입니다. 안녕!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생생한 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_c180PR65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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