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엄마가 처음 운전을 배우던 때가 떠오른다. 일 끝나고 밤마다 넓은 공영 주차장에 가서 엄마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앉아 엄마의 운전연습을 구경했다. 아빠는 가르치고, 엄마는 운전하고.
엄마는 운전을 곧잘 했지만, 급정거로 인해 몸이 쏠릴 때면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래서 엄마가 주차장에서 운전연습을 할 때면 나와 동생은 평소 도로를 달릴 때에도 하지 않던 안전벨트를 일부러 채웠다. 그리고는 무서운 척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의 운전 연습은 나와 동생에게 작은 놀이동산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조수석과 운전석을 바꿔 앉을 때면 동생과 서로 쳐다보며 엄마 또 운전한다고 키득키득 안전벨트를 채우던 내 모습이 기억 속에 선명하다.
30년이 흘러 이제 우리 아들이 그때 내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17년째 장롱면허 소지자이다.
교내외 백일장에 줄기차게 나가던 중학교 시절, 그렇게 배운 운전 실력으로 엄마는 나를 싣고 외부 백일장이 있을 때마다 동분서주했다. 부모님은 장사를 하시느라 늘 바빴다. 그래서 소풍 때 도시락 한 번 제대로 못 싸준 엄마였지만 적어도 백일장이 있을 때만큼은 언제나, 엄마는 나와 함께였다.
어느 해 봄, 정독 도서관에서 치러진 백일장. 벚꽃 흩날리는 나무 아래 앉아 글을 쓰면서도 흐드러진 꽃내음에 흠뻑 빠져 내가 감탄을 마지않던 그 시각, 엄마는 나를 내려주고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백일장이 끝날 때까지 주변을 한참 돌았으리라.
요즘은 젊은 여자들도 다 운전을 하지만, 우리 엄마가 운전을 배우던 90년 대에는 운전하는 엄마들이 별로 없었다. 엄마는 여자였고, 아줌마였지만 공간지각능력과 판단력이 뛰어나 운전을 잘했다. 기동력 있는 엄마 덕분에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몸이 편안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된 나는 그러나, 어째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에 영 젬병이었다.
21살, 왜 따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면허를 땄다. 남들도 다 따는 거라며 너도 더는 미루지 말고 따오라는 아빠의 말을 듣고 용돈을 받아 그냥 땄을 뿐이다.
책상에 앉아 영문법을 외우고, 수학 문제나 풀던 나에게 운전은 미지의 세계였다. 특히 공간지각능력을 요하는 주차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리를 몰라서 못하겠다는 나에게 강사는 그냥 공식대로 하라고 했다.
백미러로 벽돌이 보이면 핸들을 틀어 후진하라는 운전 공식은 가히 놀라웠다. 차바퀴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움직이는 데도 주차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버릇이란 참 무서웠다. 말을 하면서 걷다가 놀라거나 궁금한 게 생기면 걸음을 멈추는 버릇이 있던 나는, 도로를 달리다 말고도 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보며 강사는 기겁을 했다. 일단 가란다. 놀라도 그냥 가고, 길을 몰라도 그냥 가라고 했다.
면허증을 수령하고 가장 당황스러웠던 부분은 내가 여전히 운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길치였다. 왜 나는, 면허를 따면 길도 자동으로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저 강사의 지시에 따라 액셀을 밟고, 전진하며 핸들만 꺾었을 뿐인데 면허증을 받은 나는, 그렇게 면허증 소지자가 되었다. 면허증을 볼 때면 어린 시절, 엄마가 내복의 앞뒤를 구분해 내 목에 넣어주면 양팔을 뻗어 끼우기만 해서 입던 때가 떠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처음부터 운전을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면허증의 힘을 굳건히 믿었다. 암만 봐도 나는 운전을 할 깜냥이 안 되는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내 손에는 면허증이 있지 않는가!
면허를 따고 얼마 안 가 친구가 나를 보러 왔을 때 카페 대신 아빠 차에서 대화를 하자고 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겼다. 문득 아직 면허가 없던 친구에게 나의 운전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그랗게 동네 한 바퀴만 돌고 얌전히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으려고 했건만, 우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나는 깨달았다. 아무리 면허가 있어도, 운전학원에서 배운 벽돌 공식 따위로는 좁은 골목길에서 평행 주차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공식을 때려치우고 엄마아빠가 하던 대로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며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일방통행 골목길, 일렬로 주차되어 있는 차들 사이에서 우리 차는 정확히 그 차들과 90도 직각을 이룬 채 골목길을 가로막았다. 설상가상, 뒤에서 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울고 싶었다. 친구가 보고 있어 창피했고, 뒤차 운전자에게 욕을 먹을까 봐 무서웠고, 아빠에게 혼날까 두려웠다. 그래도 나는 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서둘러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집 앞으로 나와달라 했다.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서 여유 있게 차를 돌려 원상복귀를 시켜주셨다. 그리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셨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운전석에 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