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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Aug 29. 2023

바뀌지 않는

서울역 광장 앞 랜드마크

지금의 구 서울역사가 제 기능을 발휘하던 시기였다. 대구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4시간가량을 달리면 서울역에 도착한다. 광장으로 나오면 길건너에 ‘DAEWOO’라는 로고가 붙어있던 이 빌딩이 인사하듯 날 반겼다. 당시에 이 건물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촌놈티라도 내면 코 베일까 싶어 애써 담담한 척했던 기억이 난다.


몇 년이 지나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1시간 40분 만에 주파하는 시대가 왔다. 서울역도 현대식으로 새로 지어졌다.

날 반기던 건물은 ‘서울스퀘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밤늦게 서울역에 도착하면 광장으로 나가 흡연자들과 섞인다. 흡연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노숙자가 다가와 담배를 구걸하면 한 개비를 꺼내어 줬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졸라맨이 하염없이 걸어 다니는 미디어 아트를 보며 담배연기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한동안 이곳을 갈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2년 전쯤에 ’서울로 7017‘ 촬영 의뢰를 받았다. 오랜만에 서울역 광장으로 나와서 고개를 들었다. ‘wework’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세 번이나 이름이 바뀌었지만 겉모습은 그대로였다. 어릴 적 코 베일까 두려워 애써 본채 만채 했던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날 반기고 있었다.


건물 이름이 대우에서 위워크로 바뀌는 동안 나는 나이를 먹었다. 세 번의 장례를 치르고 결혼도 했다. 저녁에 욕실 거울을 보면 인상을 찡그리며 삐쭉 튀어나온 흰머리를 뽑는다. 심혈관을 걱정해야 하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피던 담배는 올해 건강검진 결과를 보는 동시에 끊어버렸다.

세월이 흘러 나도 건물도 나이가 들었다. 같이 늙어가는 저 건물이 아직도 괜찮다는 듯 그대로 서 있는 걸 보니 왠지 가슴이 미어진다. 변함없이 있어줘서 왠지 모르게 고맙다.

앞으로 20-30년 뒤에 또 어떤 로고가 붙어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건물만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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