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ot Aug 19. 2023

외진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외진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보았다. 그 말이 머라고 기분이 좋아진다. 입구를 들어서니 정원사가 누군지 궁금해질 정도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길을 열어준다. 이곳이 운동장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고 놀라면서도 ‘초등학교였으니 당연히 운동장이 있었겠지…‘ 하고 깨닫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다.


  갤러리는 정원에서 시작된다. 사진을 감상하기 전에 준비 운동을 하는 느낌이다. 저녁에 비 예보가 있어서인지 수분을 잔뜩 머금은 공기가 무거웠다. 무거운 공기를 뚫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준비 운동이 부족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파노라마에 압도당했다.


  갤러리 공간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파노라마 사진들은 다른 세계를 보는 기다란 창문 같았다. 그 세계는 고요하고 외로워 보인다.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억지로 구겨 넣으려 애쓰지 않았다.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탓에 충분히 외로워 보이는 오름은, 파노라마의 넓지만 미니멀한 감성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필름 특유의 질감과 색감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작가의 사진들은 그 시대의 감성이라기보다는 지금에 가깝다. 살아계셔서 인스타그램을 했더라면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지 않으셨을까.


  날씨 탓인지 혹은 습도로부터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에어컨이 풀가동 되고 있어 실내가 서늘했다. 오슬오슬한 몸을 녹이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뒷문으로 향했다. 뒤뜰로 통하는 문에 붙은 유리 너머 풍경도 세로로 찍은 파노라마 사진처럼 보인다.

  문을 열고 나와서 작은 무인 카페를 지나 건물 옆으로 빠져나오니 작은 들판 같은 공간이 있다. 갤러리 감상의 마지막 단계인 듯하다. 벤치에 잠시 앉았다. 왠지 어울리는 흐린 하늘을 보며 눅눅한 감정을 다스렸다. 잠시 후 비가 쏟아지기 전에 가자며 일어났다.


  두모악은 단순히 작품만을 전시한 갤러리가 아닌, 아직까지도 작가의 영혼이 머무는 장소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부터가 다른 세상이란 느낌을 받는다. 외진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보는 순간부터 최면에 걸려 외부와 단절된 것 일수도 있다. 운전대를 잡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면 그제야 정신이 든다. 만약 다른 세상에서 잠시 쓸쓸함을 즐기고 싶다면 충분히 와볼 만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걸음 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