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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Jul 15. 2023

한걸음 더

대청도 농여해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바람소리가 컸다. 구름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고, 해변의 모래는 바람에 날려와 뺨을 때렸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야만 걸음을 뗄 수 있을 정도로 저항이 심했다. 가끔 바위 뒤에서 숨을 고르며 호흡을 한다. 날아온 모래 파편들이 신발 끈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나중에 털어낼 생각에 짜증이 났다. 점퍼 안에 숨겨둔 카메라는 찍을 때만 잠깐 꺼냈다가 다시 옷 속에 감춘다.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보고 가다가 문득 정면을 봤다. 지구가 아닌 것 같은 풍경에 잠시 멈칫하게 된다.

10억 년 전 지구의 모습을 간직한 대청도 농여해변의 첫인상이다.


목적지를 수평선으로 잡고 계속 걸었다. 모래알갱이가 끊임없이 바람을 타고 바짓가랑이를 훑으며 지나간다. 풀등의 끝에서 파도와 반영을 찍고 싶었지만, 이렇게 오지 말라는 듯 방해를 받으니 포기가 쉬워진다. 게다가 만조가 다가올수록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결정과 행동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몸을 돌려서 나가다가 잠시 후 아쉬움에 뒤를 보았다. 아무도 없던 해변이었는데 갑자기 저 멀리 사람들이 나타났다. 간조 때는 바로 옆 미아해변과 합쳐지는 곳 이라더니 아마도 그쪽에서 들어온 ‘방문객’들 인 것 같았다. 그들은 내가 포기한 풀등의 끝을 보러 가는 듯했다. 마치 탐험가처럼 거침없이 걸어 들어갔다. 순간 나도 용기를 얻었지만 너무 멀리 나와버렸다. 3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후회가 된다. 한걸음만 더 갔으면 어땠을까 하고.


촬영이 끝날 때마다 생기는 아쉬움과 후회는 이제 익숙해질 정도다. 하지만 저때의 후회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배를 타고 멀미를 극복하며 4시간을 다시 가야 하는 이유보다는, 나에게 처해진 상황을 명분 삼아 이뤄낸 타협의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이곳은 이때부터 나에게 아쉬움과 후회의 장소가 되었다. 언젠가 다시 갈 일이야 있겠지만 그때의 감정이 회복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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