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훈,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지난 3월 7일, 이경훈(국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와 나눈 대화 이후에- 도시와 건축에 대한 그의 철학이 담긴 저서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2011, 푸른숲)>가 더욱 궁금해졌다. 왜 출간 이후 그렇게 뜨거운 감자가 되었는지, 행간을 면면히 읽고 난 후에야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가 생각하는 '도시'라는 것이 무엇인지 책을 매개로 하여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사실, 저서의 제목만 보아도 뜨거운 감자가 되기에는 손색이 없다. 이럴수가, 서울이 도시가 아니라니! 도시가 뭔지는 몰라도 어릴 때부터 관념적으로 "서울=도시"라고만 생각해온 사람으로써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미리 힌트를 주자면 그는 그 불분명한 '관념'에 태클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명확해지는 건, 우리들의 머리 속에서 '도시'의 개념은 매우 관념적인 위상에 놓여 있다. 이를 바꿔 말하면, 이 사회에 도시에 대한 각기 다른 의견이 산재해 있다는 뜻이 된다. 그의 저서를 읽은 8명의 애독자가 함께 이야기를 나눴고, 이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이경훈 교수를 만났다. 바이크 마니아인 그는 아직 쌀쌀한 날씨를 뚫고 트라이엄프에서 내렸고,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교수'라는 직업을 떠올렸을 때 등치되는 완고함과는 달리 시종일관 말랑말랑한 태도를 보였다.
명조체로 선명히 쓰인, 견고하게 3 X 3 행렬을 이루는 폰트. 마치 이 책을 쓴 것이 영락없는 '건축가'임을 내보이려는 의도인 것일까. 픽토그램에는 쇼퍼백, 유모차, 하이힐, 울타리, 마을버스, 도시의 전경이 그려져 있다. 분명 의도가 없지는 않을 터, 책을 펼치면 그가 생각하는 도시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목차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첫 장을 열면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아직은'이라고 씌여 있는데, 초판에는 이 문구가 없었으나 다시 한 번 찍어내면서 삽입된 문구라고 한다. 출판사 측에서 오히려 미래적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추가한 것이라 하니- 아마도 내용과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신선한 충격에 대비한 쿠션이었을 것이리라.
그는 건축가이자, 동시에 국민대학교 건축학부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술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Pratt Institute에서 건축을 전공하게 되었고, 한국과 뉴욕을 오가며 건축작업과 출강을 병행했다. 첫 번째 저서로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를 출간했으며, 이어 두 번째 저서로 <못된 건축>을 내놓았다. 같은 듯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 두 책에 이어서, 그는 '공연예술'을 도시의 키워드와 결합하여 다음 책을 써 보고 싶다고 했다. 도시를 둘러싼 수많은 조건과 변수들 중에서, 연구와 해석의 흥미가 있는 것들을 파고드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와 같은 태도 때문일까. 그는 건축가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Specialist로 고립되기보다는 Generalist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도시'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터. 그래서, 반대로 각자가 생각하는 도시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니 책을 함께 읽은 독자들은 공통적으로 뜨악해하거나 즉답을 하지 못했다. 일단 책에 대한 단상을 들어보면 의견을 추출할 수 있겠다 싶었고, 독자들은 도서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의문점을 던지며 도시를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저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구요, 그래서 막연하게 '서울'하면 '도시'라고 생각해왔어요. 이른바 '도시'란 도대체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하는 것인지- 만약 도시의 기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도시라는 개념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고민하게 되었죠.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도시라는 관념에 대해 공부를 좀 해보도록 이끌었어요. 더불어, 책을 쓴 교수님 역시도 엄청나게 어려운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구요."
"한국은 Pre-Modern, Modern, Post-Modern의 이행과정에 있어 모더니티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고, 급격히 포스트모던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는 데 동의해요. 그래서 모더니티를 통해 태동한 '도시'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불분명한 게 아닐까 싶었고요. 다만, 혹시 우리가 도시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재정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지금 시점에서 '한국의 도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논의해보고 싶었어요."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건, '그럼 그냥 서울이 도시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아?' 였어요. 도시가 아님을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도시되기에 실패하고 있다'와 같은 평가들을 팔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도시가 아닌 곳이다'라는 명제가 정해져있다고 상정해보면, 다시 불편해지는 이 마음의 원인은 또 다시 저의 관념 때문일까요?"
모더니티의 차원에서 도시가 태동했고, 그렇기 때문에 개념의 근거를 찾아 올라가면 도시는 모더니티를 통해 해석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는 인간의 문명과 테크놀러지의 총체이고, 왕을 끌어내린 시민의 힘과 의지를 통해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규칙과 문제해결능력이 집약된 곳이라는 거죠. 이처럼, 도시가 시민을 위한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진정한 도시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는 오히려 명확해집니다.
그래서, 책에서도 이야기하듯 '걷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유념할 점은, '걷는 도시'의 반대말이 '걷지 않는 도시'라기보다는 '타는 도시'라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테크놀러지는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야지, 테크놀러지 그 자체를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필요 이상으로 자동차가 중심이 된 도시의 세팅이라든지, 짧은 거리에 마을버스가 과잉 운영되는 것이 대표적이 예라고 봅니다.
육교, 지하보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왜 사람이 자동차를 피해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얼마나 사람을 배제한 도시의 세팅에 적응되어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가로수길에 개구리주차를 눈감아주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그곳은 걷는 사람들을 위한 거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뉴욕은 걷는 곳이지만, LA는 타는 곳입니다. 그래서 뉴욕은 도시의 특성이 강하지만, LA는 도시라고 보기 어려운 곳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LA가 도시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도시'의 조건을 생각했을 때 도시다운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은 뉴욕이라는 거죠. 대형마트보다는 1층에 위치한 청과물 상회가, 개인 디자인 숍과 상점들이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는 곳이야말로 시민들을 걷게 하고, 모이게 한다는 거죠.
그래서, 도시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걷기 좋은 곳', '걸어야 하는 곳', '걸음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곳', '걷는 것이 중심이 되는 곳'이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독자들은 이경훈 교수에게, 책을 읽고 난 후 크게 위의 다섯 가지 항목에 대해 궁금증을 제기했다. 한 독자는 특히 녹지공간과 관련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통계자료까지 분석해오는 열의를 보였다.
"녹지공간에 대한 통계를 비교해보면, 1인 당 할당된 녹지의 비중은 뉴욕보다 서울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녹지공간이 늘어나는 것은 도시를 망치는 요소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요."
음, '어떤 녹지인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무작정 녹지는 다 안된다는 의견은 아니고, 얼마나 도시인들에게 실질적인 녹지인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거죠. 서울에는 구릉지대가 많고, 산이 많기때문에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녹지는 부족한 게 맞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해 마치 '하나의 찬란한 섬처럼' 고립된 녹지가 배치되고 있다는 것이죠.
저의 다음 저서인 <못된 건축>에서도 언급했지만, 예를 들어 반포 래*안 아파트에 조성된 녹지가 과연 시민들을 위한 녹지냐고 반문해본다면 좀 더 뚜렷하게 다가올 겁니다. 어느 부분까지를 녹지로 이해할 것이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일상적으로 모두에게 열려 있는 녹지인가가 더욱 중요하죠. 이 차원에서의 고민은, 도시의 어떤 공간이든지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세팅될 필요가 있다는 데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뉴욕 하이라인파크는 어떻게 바라보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되는데, 하이라인파크는 오히려 있던 것을 그대로 두고, 건물 사이사이, 골목 사이사이로 이어질 수 있게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실질적 걷기'를 얼마나 배려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이동'에 목적이 있기보다 '도시의 일상을 향유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죠.
"방음벽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신데, 도로가 먼저 나고 주거단지가 들어온 경우가 아닌 주거단지가 먼저 들어오고 도로가 나는 경우라면 방음벽을 쳐 주는 것에 대해 용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많이 양보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대목에서는 도시인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비용'을 이야기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의 서두에서 다루었지만, 도시는 시민을 위한 곳이 되어야 하고 그렇다면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도시에 사는 시민 역시 도시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이 응당 맞습니다.
불가피하게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가 건설되어야 하고, 그 도로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것이 맞다면- 소음은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겠죠. '나는 어떤 경우라도 도시에서 방해받지 않는 편한 삶을 원해'라고 말한다면 그건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와 같은 관점이 최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면 오히려 도시가 아닌 전원으론 돌아가야겠죠.
"책을 읽으면서, 도시를 사는 우리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전 직장인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서울 사람들이 출근할 때는 하이힐을 신지만 직장에서는 슬리퍼를 신는다는 점이에요. 오히려 비즈니스 룩이라면 일터에서 갖추는 게 맞고, 일터가 아닌 곳에서는 편한 복장이 맞겠죠. 이처럼,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도시인으로써 모순된 라이프스타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쩌면 그것은 도시 차원에서의 이야기라기보다 문화적 코드 혹은 매너의 차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주객이 전도된 경우는 너무나도 많이 발견할 수 있겠죠. 물론, 이 부분을 의식개선과 연결시킨다면 나아가 시민의식, 그리고 시민의식과 뗄 수 없는 '도시다운 도시'로 결부하여 고민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건축과 도시계획도 중요하지만 '걷기가 중심이 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오히려 의식적인 부분에 훨씬 많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아무리 개구리주차를 금지하고 보행자중심의 도시계획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내 집 앞 눈 치우기'가 생활화되어있지 않다든지 아무데나 담배꽁초가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든지 하면 걷기에는 부정적이니까요."
맞습니다. 저는 건축과 도시계획이 '도시다운 도시'를 만드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건축을 전공했고, 이 차원에서 도시를 고민하는 사람이기에 업(業)적으로 제가 기여하고 연구할 수 있는 부분은 도시계획과 건축이기에 솔루션을 이 부분에서 더 강조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거듭해서 언급하듯 '인구, 규모, 시설 등'이 도시를 판별하는 단순한 요소로 이해되는 관념적인 요소들은 분명 이유를 가지고 설명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겁니다. 즉, 도시가 왜 필요한지, 누구를 위한 곳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곧 모더니티를 회복하는 선상에 놓여 있을 것이고- 이 회복을 통해서 서울은 다시 도시가 될 수 있겠죠.
"층간소음에 대해 묻고 싶어요. 도시의 삶에서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를 빼 놓을 수가 없는데- 공동주거의 관점에서 살인사건까지 발생하는 게 바로 층간소음이잖아요. 테크놀러지컬한 해결법이라면 흡음재를 좀 더 잘 쓰거나 방음시설을 잘 갖추는 게 대안이 될 수 있겠죠? "
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공동주거라면서 야밤에 쿵쿵거리고 뛰는 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죠. 두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파트에 들어와서 산다는 건 이미 '공동주거'에 동의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소음에도 방해받지 않고 살고 싶다는 건 과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마치, '나는 아파트에 살지만 단독주택에 살듯 살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거죠.
예를 들어, 미국에서 아파트에 거주하려면 몇 장에 걸친 입주 관련 약관에 동의하고 서명해야 합니다. 여기엔 층간소음에 대한 동의 등 '함께 사는 형태'에 있어서 고려하고 이해해야 할 수많은 부분들에 대한 항목이 명시되어 있죠. 주거 형태를 본인이 선택했으면, 기본적으로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미리 고려하고, 동의하는 게 중요합니다.
오히려 일본의 사례를 말씀드리면 참 재미있을텐데, 전후(戰後) 서양인들이 일본에 가서 가장 놀랐던 것은 분명 소음이 위아랫집에서 발생해도 서로 '못 들은 척'을 한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들었음에도 못 들은 척' 하는 게 이상적인 태도라고까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건물에 같이 사는 데에서 예상되는 불편함은 흔쾌히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죠.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책,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는 책을 탐독한 독자들의 밀도있는 고민과 질문을 통해 조금 더 선명해졌고, 동시에 다시 어려워졌다(쟁점과 의견이 선명해졌다고 해서, 그것을 둘러싼 고민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책을 거듭하여 읽고, 이야기를 직접 나눠볼수록 당초 생각했던 것처럼 받아들이기 버겁거나 어려운 지점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책을 관류하는 그의 관점은 결국, 도시다운 도시를 만들어내는 키워드의 중심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 시민'에 있다는 것이고 도시를 위한 시민, 시민을 위한 도시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과제임을 선언하고 있다. 그의 두 번째 저서인 <못된 건축>을 읽어보면 이는 더욱 선명해지고,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중심에는 '관계'라는 개념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건축과 건축, 건축과 광장, 건축과 사람, 사람과 사람 등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관계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구성되어있는지가 언제나 중요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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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도시는 어떤 의미인가?
도시는 여러분에게, 그리고 여러분은 도시에게 어떤 배려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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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진행ㅣ권용직 오늘살롱 프로그램 매니저
일시ㅣ2017.03.21 (화) 19:30 ~
장소ㅣ오늘살롱 라이브러리(서울시 성동구 서울숲 2길 29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