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살롱 인턴이 전하는 월간소회
얼마 전,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보통 퇴근 후에 운동을 하기 때문에 운동까지 끝내고 나면 바닥에 드러눕고 싶을 만큼 녹초가 된다. 다리가 후들거리기에 위협을 느끼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빵 하나를 사자마자 봉지를 뜯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나가던 할아버지께서 날 유심히 보시더니, 껄껄 웃으시며 '먹성이 좋아~ 실하다 실해!'하시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목소리가 길 건너편까지 들렸을 것이다.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나의 '실함'이 이렇게 떠벌려질 줄이야.
2017년 6월 30일을 마지막으로 6개월 간의 인턴생활이 끝난다. 지난 시간이 나를 몸도 마음도 실한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다ㅠㅠ 인턴생활 중 달리는 체력을 실감하고 운동을 시작하게 됐고, 이젠 적어도 병든 닭처럼 틈만 나면 졸지는 않는다. 내면도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다. 남들 시선을 무진장 신경쓰던 쫄보가 사람 많은 길거리에서 빵을 씹어먹는 용자(?)로 변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성장(成長). 미숙한 존재에서 성숙한 존재로의 변화라는 뜻이란다. 만약 성숙이 사고의 깊이와 넓이가 확장되는 것이라면, 나는 지난 6개월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어준 시간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루트임팩트 인턴이 되기 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인턴생활은 나의 '실함'을 어떻게 채워주었나? 그리고 지금 내가 거둔 성숙이라는 열매는 어떤 빛깔과 향기를 가지고 있을까? 그래서 앞으로의 내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 이런 저런 궁금증이 이끄는대로 펜을 끄적여보았다.
먼저 인턴생활 하기 전의 내 모습은 어땠는지 그려봤다. 생각해보니 나는 개인주의로 포장된 이기주의,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독립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완전히 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는 못해 아쉽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홀로서기를 배운다. 혼자 걷고, 먹고, 말하기 등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홀로서기 요소들을 습득하는 과정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경쟁이 시작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은 꿈에서나 가능하니, 남들보다 돈 잘 벌고 명성있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최고라고 배운다.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은 삶은 결국 실패한 삶이다. 경쟁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적으로 가득하며, 적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며 스스로를 개조해야만 하는 곳이다. 결코 주변 이들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어차피 나에겐 언젠가 내 뒤통수를 칠 경쟁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도 평생 비슷한 맥락의 충고를 들으며 살아왔다. 학교 선생님도, 몇몇 가족들과 지인들도 나에게 '살아 남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고 말씀해주셨다는 사실이다. (물론 내 성적에 민감하게 반응하셨던 건 여느 한국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내 자신을 몰아세웠던 것 같다. 실수와 실패에 대해 용납할 줄을 몰랐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야'라는 말이 불변의 진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가치관은 나 뿐만 아니라 이 시대 많은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어찌보면 불가항력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가치관인지도 모르겠다. 실패하면 안 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학창시절 내내 경쟁에서 홀로 살아남는 방법만 배우다가 20대가 되니 '협력'을 위한 세상에 맨몸으로 던져졌다.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었다. 팀워크라곤 무임승차자가 난무하는 팀플과제나 대외활동에서 경험해 본 게 전부였는데, 천둥벌거숭이들끼리 모여 있으니 팀워크에 관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이가 거의 없었다. 또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베푸는 배려 혹은 운동회 때 불끈 솟아오르는 협동심은 직장에서의 팀워크와는 결이 달랐다. 팀워크가 어떤 것인지, 어떤 팀원이 좋은 팀원인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팀워크 점수를 성적에 반영한다'는 교수님의 지시에 따르려니 참 고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았으니, 조직생활을 얼마나 잘 할 수 있었을까. 더욱이, 자세한 이야기는 下 편에서 풀어낼 예정이지만, 나는 인턴생활 중에 (내 기준으로) 굉장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어찌보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잦은 변화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어느정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당해야 하는 많은 변화들이 부담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나름대로 적응에 성공했고,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수 많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많은 배려를 해주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욱 '내가 어떻게 이 조직에 기여할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했다. 내 직무였던 디지털 마케팅에 관련된 지식과 스킬을 최대한 많이 쌓는 것이 나의 우선순위 과제라고 생각했다. 즉 '일을 잘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목표였던 것이다. 이런 고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실패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나의 가치관과 맞물려 충분히 긍정적으로 발휘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또한 인턴에게 있어 더욱 중요한 과제는 사실 따로 있었다는 것을 인턴이 끝나가는 시점에야 알게 되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그래도 나에게 있어 지난 6개월은 직무 면에서 뿐만 아니라, 내 그릇을 넓히기 위한 매우 귀중한 시간이었음은 틀림없다. 나의 성숙도에 무게감을 더했던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下 편에서 좌충우돌 끝에 남겨진 소중한 배움의 흔적들을 독자 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 下 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