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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트임팩트 Jun 21. 2018

2회_[패널토론] "소녀의 반항이 독(毒)일까?"

여성의 배움 | 오찬호 작가, 백경흔 박사, 구아모 편집의원

 루트임팩트는 여성의 날 주간을 맞이하여, 2018년 3월 10일 헤이그라운드에서 제 2회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사라진 여성들을 찾아서>를 열어 여러 체인지메이커와 함께 여성의 일과 삶, 배움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일상의 삶 속 성역할에 대한 무의식적인 학습이 일의 선택과 지속에 영향을 줍니다. 성별을 떠나, 보다 통합적 관점으로 여성의 일과 삶, 배움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미투, 경력단절, 성평등 격차 등의 이슈가 부각되고 다양한 의견이 모아지는 지금, 루트임팩트는 즉각적 혹은 단편적 대안의 제시보다는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통해 모두에게 유의미한 질문이 만들어 지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체인지메이커의 지속가능한 여정에 힘을 싣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제 2회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를 글로 담아 공유합니다.


이번 토론은 소녀의 반항이 독(毒)일까라는 주제로 진행되는데요, 세 분의 패널을 모셨습니다. 먼저 딸과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 뒤늦게 여성학을 공부하신 여성학자, 또 여성학과 사회학을 가르치고 딸고 아들을 키우는 아빠, 마지막으로 대학에 와서 여성 차별을  체험하고 저널리스트를 꿈꾸며 여성주의 교지를 만드는 학생. 세 분을 모셨습니다. 그럼 이번 토론에 참여해주시는 패널 분들을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진행자 : 루트임팩트 나종일 매니저

토론자 : 오찬호 사회학 연구자/작가, 백경흔 여성학자, 구아모 <석순>편집위원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1시간의 패널 토론이 모두 궁금하시다면 (클릭/Youtube)


오찬호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2년째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 글쓰기센터 강사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시작으로 <진격의 대학교>,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등을 집필했고, 최근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를 출간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체념적 순응이 어떤 괴기스러운 개인들을 만들어내는지, 그 민낯을 폭로하는 글쓰기를 주로 하고 있다.


백경흔

 엄마가 되어, 평범해 보였던 일을 지속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했을 때 여성학으로부터 삶과 사회와 시대를 읽어낼 힘을 배웠다. 아이를 가진 여성도 자신의 소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글쓰고, 연구하고, 강의한다. 지금은 모성과 아동기를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있다.


구아모

 사회에서 정해주는 직선을 따라 살아가다, 왜 나는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기 위해 2인분의 몫을 해야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여성주의,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를 만나게 되었다. 잠에 빠져들 듯이 글을 쓰고, 잠에 빠져들 듯이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당신에게 닿기를 바라며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서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나종일(사회) :  네 저는 제가 소개드리겠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루트임팩트의 나종일입니다. 저희가 뒤에서 이 마이크를 차니까 뭔가 데뷔하러 나오는 느낌이라고 이야기 나눴는데, 편한 분위기로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세션인데 저희가 잡은 주제는 '소녀의 반항이 독일까'라는 제목입니다. 조금은 도발적인 제목인데, 오늘 아마 세 분 께서 도발적인 이야기를 해 주실지 기대됩니다. 첫 질문이니 조금 더 편안하게 세 분의 경험들을 듣고 싶은데요, 세 분의 상황이 아주 다양합니다. 재미있고요. 각각 아빠이자 엄마이자 딸이시고, 강의를 하시는 분이자 수강하는 분이고, 작가이고 학자이며, 교지의 편집위원이기도 합니다. 





Q) 첫 번째 질문 : 아빠, 엄마, 딸로써 경험하는 일상에 대하여


나종일 : 오늘의 주제인 '여성의 배움'과 관련해서 세 분은 각각 아빠와 엄마와 딸로서 어떤 경험들을 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세 분의 간단한 소개와 함께 시작해볼까요?


'배움의 딜레마'를 공유하는 것이 교육의 시작

오찬호 : 안녕하세요 오찬호입니다. 저도 사실은 주제가 '소녀의 반항은 독일까?' 뭔지 잘 모르겠고- 너무 주제가 심각해져야 할 것 같아서 일상적 경험과 고민을 털어놓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로서 고민을 하지만, 사실상 한국사회라는게 '부(父)'가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학부모는 상당 부분 어머니로 꾸려져있기 때문에요. 사실상 '배움'이라는 주제인데 사회학이라는 것은 인간이 어디 얽매이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기 떄문에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걸 가르치고 배워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할 때 좀 부담스러운 단어에요. 결국 부모의 역할, 엄마의 역할, 아빠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이 뭔가 사회의 모순과 어려운 점을 뒤로 하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요. 

 저의 딜레마가 무엇이냐면, 제가 어떤 가치를 지향했을 때 제 딸이나 아들이 집에서 사회화되는 과정은 현대사회에서 더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집에서 불씨를 던지면 밖에서 앙상블이 이루어져서 좋은 친구를 만나고 선생님을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이 눈에 보일 때 제가 헌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기득권 가부장적 남성적 패러다임에 반대되는 입장에서 교육했을 때 집에만 돌아오면 혼란을 느끼는 것이죠. 그런 차원에서 '사회적 성숙도'가 중요핟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무리를 해 드리자면 제가 아빠로서 무언가를 하는 데 굉장히 한계가 실제로 많죠. 오늘도 아침에 저는 여기 오고 아내는 집에서 블럭 만들고 있을거에요. 터닝메카드 보면서요. 이게 엄청난 차이라는 거죠. 저는 주중에 글쓴다고 바빴고 아침에 여기도 와야되고 다른 데도 가야하니까 소파에 앉아서 왜이렇게 일이 많은지 한숨 쉬는거에요. 아빠가 한숨을 쉬면 집이 조용해지는 거죠. '우리 아빠 토요일에 일하러 간다'는 식으로요. 이게 바로 집이라는 곳에서 아빠가 왕이 되기 시작하는 하나의 지점이거든요. 아빠가 주된 벌이를 하는 사람이 되고, 가정에서 자연스레 업무분담이 되니까 가장 근본적인 지점에 있는 거죠. 그 지점에서 내 아이한테 '남자는 돈 버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아빠가 돈 벌어오느라 힘들어하더라. 아빠를 위해야되지 않겠냐'는 그림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되는 거죠. 그래서 '배움의 딜레마'를 공유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알파걸은 있는데 알파우먼은 없다, 도대체 왜?

백경흔 : 저는 세 아이의 엄마이면서 스스로가 계속 일을 하려고 엄마가 되고 나서도 노력했을 때 현실에서 부딪히는 벽들이 많았어요. 처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니까 제 이야기부터 하면, 이보라 조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여성성과 남성성이 구성되는 것이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라기보다 일상 속에서의 사회화 과정속에서 나타나는데 여성이 엄마로 길러지고 남성이 아빠 혹은 가장으로 길러지는 것에 정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배움에 있어서 그게 어떻게 나타나느냐면- 저도 경험했던 것인데 '알파걸은 있는데 알파우먼은 없다'는 것이죠. 저도 어느 순간 배움에 배신을 당했다고 느낀 것이, 세상이 왜 나에게 대학을 가고 꿈을 꾸라고 했는지 질문을 했던 적이 있어요. 차라리 그게 없었고 너도 언젠가 엄마가 될 거고 그러면 아이를 위해서 너의 꿈을 포기해야 될 때가 올거라고 이야기했다면 배신감을 덜 느꼈을 거에요.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또다시 제 딸이 알파걸이 되도록 교육시키는 저를 발견하는 거죠. 교육에서의 성취는 노동시장으로 전혀 이어지지 않아요. 그것의 핵심에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총합이 결국 여성은 완벽한 엄마가 되도록, 남성은 시장에 충성하고 장시간 근로를 언제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지고 있는 사실이 있죠. 사실은 여성주의에서 마더후드(Motherhood), 마더링(Mothering)을 구분하잖아요. 나는 엄마로서 실수도 하고 때로 이기적일 때도 있고 나로서 가장 자연스러운 마더링(Mothering)을 하고 싶은데 사회 속에서는 마더후드(Motherhood)와 같이 강제하는 제도로서의 모성이 있는 거죠. 그래서 여성주의에서는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데- 배움의 현장에서 내가 알파우먼이 되지 못하고 계속 좋은 엄마, 완벽한 엄마가 될 것을 요구받으면서 나는 딸 세대와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큰 모순된 구조 속에 빠져있기 때문에 사실 신자유주의는 너가 스펙을 많이 쌓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구조는 우리가 스펙을 쌓고 경력개발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또 그러한 장치들이, 학교에서 어머니들의 무급노동을 아무렇지 않게 활용하는 문제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저는 변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이가 셋이다 보니 학기초가되면 졸업식 입학식은 말할 것도 없고 학부모 상담, 총회, 녹색어머니회 그리고 급식 감독, 시험 감독 뿐 아니라 일상적인 놀이 네트워크...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엄마들끼리의 네트워크를 통해 아이들의 놀이모임이 만들어지기 때문에요. 분명 저는 아버지들도 참여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아이들이 아이들끼리만 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고 건강하게 부모가 참여할 수 있는 틀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자연스럽게 여성이 학교에 동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스템 때문에- '남성성=부성=노동자성'으로는 이어지지만 '여성성 = 모성성'으로만 이어지는 한계가 곧 아까 이야기했던 인간의 발달과정 속에서의 일상적 통념 뿐만 아니라 '좋은 엄마가 있어야 좋은 아이들이 키워질 수 밖에 없는 교육 현장'등의 것들이 일상과 구조와 맞물려서 - 사실 그것은 여성에게 있어 성별분업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자본주의 노동시장은 여성의 무급 노동을 통해서 굴러갈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1인분의 삶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던 대학생활


구아모 : 저는 대학생으로서 대학생활, 그리고 그 이전의 교육에서 제가 느꼈던 것에 대해서 공유를 하고 싶었는데, 두 분께서 여성학을 가르치는 분들로서 어떻게 여성주의적으로 성평등하게 기를 수 있는지 고민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전형적인 알파걸, 자애로운 어머니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트랙에서 수월성 교육을 받고 자랐거든요.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에는 정상성에 대한 그런 고민을 할 여지가 없이 그냥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이렇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는 것을 공교육 과정 내, 그리고 친구들과의 사회화 과정 내내 겪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교육봉사로 고등학교에 갔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정상 여자' '정상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너희들이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무엇이냐',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남성의 이미지는 무엇이냐'고 했을 때, 되게 전형적인 이야기가 나왔어요. '여자는 머리가 길고 상냥하고 나긋나긋하고 치마를 입고 날씬하고 요리를 잘하고 등등'이 나왔고, 남자는 '운동을 잘하고 키가 크고 돈이 많고 마초적이고' 그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러면 너희가 스스로 정상 여자, 정상 남자의 모습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을 때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거든요. 여학생들도 각자 성격이 다르고 남학생들도 각자 성격이 다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 여자, 정상 남자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공교육과정에서 계속 주입을 받아왔죠. 저도 그런 것들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직선으로 달려왔는데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1인분의 삶을 유지하기가 너무 힘든거에요. 저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똑같은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왜 나는 당연하게 얼굴 평가를 받아야 하는 거고, 학내에서는 성폭력과 성희롱 사건이 공론화되는데 나는 왜 감정적으로 계속 소진되고 힘든 감정을 느껴야 하는것인지에 대한 억울함과 열등감, 질투심 등이 저를 이렇게 여성주의적으로 이끌고 좀 더 각자가 각자의 모습에 맞는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고민을 시작하면서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처음으로 여성주의를 접해서 계속 이야기해나가고 있습니다.





Q) 두 번째 질문 : 가정의 안팕에서 주고 받는 '교육의 메시지'들


나종일 : 세 분의 문제의식을 들어보았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의 요즘 고민이 떠오릅니다. 제가 세 살 아이의 아빠인데, 제가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더라고요. 이 친구가 집에서 혼자 있거나 부모와 있을 때는 그러지 않는데, 처음 보는 아이 앞에 있으면 먼저 다가가지 않아요. 가만히 있고, 한 10분은 이 아이가 어떤지 관찰하고 다가가는 성격이거든요. 저의 어렸을 때 모습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까 제가, 이 아이가 '이런 스타일이고, 나랑 비슷하구나'라고 이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거죠. '조금 더 남자처럼 적극적으로 햇으면 좋겠다. 여자아이에게 잘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제의식 없이 들었어요. 한 번은 여자아이를 길에서 만났는데 갑자기 배를 내밀면서 당당하게 걸어가고 하는 거에요. 그런 걸 보고서는 '어 너 남자답다!'는 표현을 쓰고 있더라구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해 왔던 것이, 그동안 저의 어떤 배움으 결과들이 모여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이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지게 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세 분께서는, 가정의 안팕에서 '교육의 메시지'들이 있잖아요. 이 메시지들 중 어떤 것을 주고 받았는지 사례를 통해서 이야기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작가님의 경우에는 책에도 많이 쓰셨는데요.



물론 비판적인 의식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제가 일상적으로 남성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있다는 걸 발견하죠.


오찬호 : 저는 운이 좋았죠. 사회학을 했고, 또 여성학을 한 3년 정도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되게 재밌는 에피소드인데, 여성학을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급하게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2월말 3월초에 펑크가 난거죠 그 교양강의가요. 교양 담당하는 선생님이 저를 부른거에요. '뭐 비슷한거 아니냐'고 하면서요. 일반적인 인식에서 사회학과 여성학 비슷하게 느끼는 거죠. 얼떨결에 하게 되면서- 물론 비판적인 의식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내용에는 제가 일상적으로 남성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있느냐는 거죠. 저도 물론 남성적 사고방식이 여러가지를 가지고 있을겁니다. 사실상 남자라면 어떠하다, 이것 자체에 대한 어떤 평가는 제가 볼 때는 그렇게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 그것을 하지 않은 남자는 쪼잔한 남자가 되는 게 중요한거죠. 남자답게 살지 않으면 이상한 남자가 되고, 많은 남성들이 그게 무서워서 남성다움을 택하는 거죠. 실제 남성이 움직이는 동력은- 내가 저걸 지키지 않았을 때 사회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되니까 더 추구하게 되는 겁니다. 모두가 남성성을 추구하면, 그랬다 쳐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좋아지면 좋은 일이겠죠. 그런데 그것은 필연적으로 여성을 남성보다 참을성이 없고 남성은 포부가 크고 여성은 작은 것에 집착하고- 그게 어떻게 흘러가다보면 여성은 감성적이고 남성은 논리적이고- 이 따위의 논리로 흘러가더라고요. 제 나름대로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고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역으로 내가 내 가정에서 했던 모습들을 살펴보았을 때 남자는 여자와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던 나의 열정이라고 할까? 그 과정에서 내가 여성을 보호하려 했던 지점들을 아주 일상적으로 발견하고 있는 거죠.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라고 하면 책에서는 그런 계기들을 많이 적고 있지만 실제로는 진짜 더 발견할 게 많은- 그런 일상 속에서 성찰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Be the Man, Be the Woman'이 아닌, 'Be Yourself'가 중요해요.
남성성과 여성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온 결과물이라는 거죠.


백경흔 : 정말 좋은 시도라고 생각하고요, 남성들도 남성성에 대해서 이제 성찰을 해야 하는 시기이고, 사실은 여성조차도 여성성에 대해서 전혀 보지 못했던 문제를 볼 수 있는 젠더 렌즈가 필요한 때인데- 저도 이제 여성학을 하고 여성주의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저의 막내가 남자아이인데 굉장히 감수성이 풍부해서 드라마를 보거나 감동적 이야기를 할 때 눈물이 흘러나와서 이야기를 잘 못 할 정도에요., 저도 그걸 보고는 속으로 '야 남자가...울면 안돼'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는데 오히려 누나들이 '엄마 여성학하는데 그런말 하면 되냐고' 해서 놀란 적 이 있는데- 사실 일상속에 그런 장치들이 너무 많다는 거에요. 남성은 남성답게 여성은 여성답게가 아니라 'Be Yourself'가 중요한데요. 최근에 깜짝 놀란 건 성평등한 동화를 쓰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이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유투브로 동화 영상을 보고 놀랐어요. 여성이 목욕을 하는데 그걸 관음증적으로 쳐다보고, 옷을 훔쳐가잖아요. 그리고 그 여자가 동의한 것이 아닌데 그 옷 때문에 결혼관계 안에 구속되어서 떠나고 싶은데 아이를 세 명이나 낳게 되고요. 그 렌즈를 가지고 보는데 동화가 너무 변태적인거에요. 잠자는 숲속의 미녀도 마찬가지이지요. 잠을 자고 있는데 모르는 남자가 와서 키스를 하고요. 우리가 사실 이렇게 작고 사소하고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않는 것들을 반복적으로 본다는 것은 사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일상에 남성성과 여성성의 정치가 존재한다는 거죠. 더 중요한 것은 미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여성성 감성 감정, 남성성 합리적 자율적 개인- 이런 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때부터 흘러온 거에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기반 놓았던 사람들 자체가 여성은 흠결이 있다 이성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기반을 놓았죠. 여성성의 문화적 의미는 결국 발언권이 중요히 여겨지지 않는 거죠. 여성의 No 는 Yes일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남자의 No 와 Yes 는 그냥 No와 Yes로 받아들여지죠. 이게 곧 봇물처럼 터지는- 우리도 몰랐지만 숨겨져있던 성폭력 이슈가 드러나는 것도 어떻게 남성성 여성성이 구성되어왔는지 보여주는 결과물이라는 거죠.


학교에서 남학우들이 배제되지 않기 위해
경쟁적으로 외모 평가를 하고, 여성혐오 발언을 해요.
여러모로 학내에서의 마초적 분위기 때문에
더 좋지 않은 사회화가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구아모 : 맨 처음에 오프닝 멘트에서 '젠더는 렌즈'라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저도 그 말에 되게 공감을 하거든요. 여성주의는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래서 중/고등학교 제도권 교육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정말 신기하게도 저의 모든 과거의 역사가 뒤바뀌는 경험을 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앞서 말한 것 처럼 여성적이라고 하는 성격적 특질들이 잘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덜렁대고 힘세고 애들 때리고 다니고 체육시간 때 열심히 놀고 그래서 조폭마누라라고 놀림받고. 이 호칭도 되게... '조폭'이 아니라 왜 '조폭마누라'지? 이런 의구심도 드네요. 이것들이 참다가 참다가 터지게 된 게 - 대학생활에서 제가 견딜 수 있는 한계 이상의 몫을 감당해야 하니까 변하게 되었어요. 제가 발 딛고 있는 고려대학교라는 곳은 상당히 마초적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남학우들의 호모소셜 문화가 있어서 과시하고, 배제되지 않기 위해 경쟁적으로 외모평가를 하고 여성혐오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고 누가 더 여혐 발언을 하는가가 남성 집단 내에서 자신의 힙함과 쿨함을 증명하는 증거로 사용되기도 하고요. 이 학교 내에 있는 마초적인 분위기 자체가 더 마초적으로 남성을 사회화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고, 그리고 또- 학벌적으로 기득권이고 그 펜스룰 운운하는 것도 사실 자신이 펜스를 칠 수 있는 기득권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여러모로 학내에서의 마초적 분위기 때문에 더 안좋은 사회화가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Q) 세 번째 질문 :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과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나종일 : 세 분의 말씀을 듣고 상황이 이렇다보니까 페미니즘 교육을 초/중/고에서 의무화해야한다는 청원이 청와대에 올라가기도 했고- 제가 찾아보니 9호 답변으로 올라왔더라구요. 이 의제에 대해 찬성/반대하는 목소리도 다양하고요. 그래서 세 분은, 제도권 교육에서 이런 여성주의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들어보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페미니즘 교육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컨텐츠를 어떤 텍스트로 만들어낼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되었으면 해요.


백경흔 : 사실, 우리에게 성평등이 이루어지고 알파걸들이 생겨나면서 성평등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착시현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여성이 자신의 성적인 결정권과 재생산권을 행사할 수 없고 혹은 그런 모든 것들이 사실은 공교육 안에서 받았던 제도권 내에서의 성차별적 문화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 교육은 '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잘 실행되기까지의 과정이 지난하겠구나. 혹은 어떤 컨텐츠를 어떤 텍스트로 만들어낼지- 그저 제도만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가 선행되고 합의되는 과정이 있으면 좋겠어요. 사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자체로 여성의 학문인 것 같고 여성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남성성도 더 새롭게 규정하고, 여성도 남성도 어떻게 더 잘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든 개인이 '나 답게'살아가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성별을 차별의 관점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라는 게 확장되면 모든 차별을 바라볼 수 있는 차별감수성으로 확장될 수 있거든요. 저는 <서프러젠트>라는 영화가 2015년에 처음 봤는데 여성이 참정권 행사하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았죠. 1920년부터 도입이 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에서 보여주는 참정권 운동을 보면 여성에 대한 혐오가 그때에도 있었다는 거죠. 그것을 의식화과정, 동료들의 헌신, 심지어 영화에는 순교까지 나오는데-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참정권 도입이 이루어진 거죠. 사실은 페미니즘 교육을 도입하는 건 좋고, 다만 그것에 대한 사회적 골 세팅은 여성 남성 다양한 계층이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 실행에 있어서도- 요즘 성희롱 교육을 많이 하지만- 그 성희롱 교육을 강사 없이 할 수 있게 되면- 강사 없이 그저 '잡담회'로 된다는 거죠. 사실 성희롱 예방교육이지만 실상 내용을 보면 성차별을 강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행되기도 해요. 아까 동화도 그렇고, 컨텐츠, 텍스트, 교사 이런 모든 요소들의 합이 맞고- 우리가 여성성, 남성, 모든 다양성있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 페미니즘이라는 것에 대한 동의가 되어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가합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과정에서부터
페미니즘이 주요한 학문적 고통이 되어야 해요.

오찬호 : 그런 일들이 공론화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죠. 가장 좋은 쪽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겁니다. 기초적인 성차는 굉장히 중요하죠. 명절에 남자들은 앉아있고 여성들은 전 나르고 있고- 이런 삽화가 사라진게 2008년이거든요. 그때까지도 논쟁을 하고, 초등학교 책들을 보면 여전히 이런거 많아요. 과학실험 할 때 보면 남성은 비이커 만지고 있고 여성은 옆에서 기록하고요. 제가 최근에 초등학생 대상으로 '노동'을 소개하는 책을 집필하고 있어요. 그런데 '메이데이'를 소개해야 하는 문구가 있어요 초등학생용으로요. '여러분들은 학교 갔는데 아빠는 갑자기 직장 안 가는 날 있지 않았어요?' '엄마가 평일에 은행 갔는데 은행 문 닫았다고 화낸 적 없나요?'하는 문구가 너무 웃긴 거죠. 이 단어와 상황을 어떻게 고치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했어요. 그렇다고 엄마가 출근하고 아빠가 은행간다고 한다고 평등한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좀 더 정교한 고민이 필요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운동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라디오 인터뷰 공부하다가 펜스룰을 보게 됐는데- 이게 남성중심 사회에서는 '성찰'조차 남성중심적으로 하는 거에요. '이제 나 여성하고 회식 안해' '말 안해'.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어제 검찰에 출두한 정치인이 수행비서를 여성으로 쓴 것 때문에 논란이 있죠. 그런데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죠. 지금 지자체 장들 다 남성인데- 그럼 다 남성으로 수행비서 시켜주면 정치인으로서 행정관료로서 누가 성장하냐고 질문하면 그 때는 또 다 남성들이 성장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누가 어떤 식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느냐에 대한 문제라는 거에요. 페미니즘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상 이제 대학 때에 가장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의 20년 이상이 하나의 사례로서 계속해서 증거자료로 떠오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런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에이 몰라, 난 우리나라 평등한 줄 알았는데 이것도 성차별이니까 여자 안 만나면 되는 거 아니냐!'라는 식으로 펜스룰 치는 거에요. 그런 식으로 남성들이 대응하는 것을 봤을 때- 초등학생들에게 어떤 지형으로 페미니즘을 가르치느냐에 대한 문제는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은 거친 용어의 학문이고 더 거칠어야 하는 -이정도 거칠어서는 택도 없는- 약간 학문적인 개념이면서 일상생활의 정치적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학문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초등학생에게 이 구도에서 정교히 가르칠 수 있는 언어적 고찰이 필요하다는 거죠. 가장 중요한 것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과정에서 여성주의가 본인의 학문적 고통이 되어야 한다는 거에요. 임용고시 준비할 때 여러 관례들이 있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공부하는 거잖아요. 페미니즘에 대한 고충도 훨씬 커져 있어야지만 어떤 특정한 페미니즘 교사가 페미니즘 교육하는 게 아니라- 어떤 과목 선생님 교실에 들어가더라도 여/남 구별을 하지 않는, 헛소리를 하지 않게 되는 쪽으로 나아가는 변화가 훨씬 더 좋은 변화가 아닐지에 대해 생각해요. 물론 이것 역시 남성적인 생각일 수도 있죠. 두루뭉술한 대안 때문에 이 지경으로 왔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결국은 우리가 이 좋은 분위기를 더 좋은 쪽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적합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소년을 계도적 존재로 바라보지 않으면서,
삶에 다양한 색깔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페미니즘 교육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구아모 : 저도 우선,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해요. 하지만 청와대 청원에 올라온 발문에 청소년 혐오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던 게 불편했어요. 청소년은 미숙한 조재라서 미리 교육하지 않으면 여성혐오적 풍토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된다고요. 사실 그런데 한국사회 공교육 과정에서 페미니즘이라는게 세계를 알아보는 하나의 렌즈인데-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 불편하고 힘들고 인식론적 전환이 일어나는 계기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제도화 안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됐을 때- 이게 몇 학점짜리 내신 과목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고는 생각하나 '페미니즘 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가 있는가'하는 고민도 들었어요. 오 작가님이 이야기해주신 것처럼 페미니즘에 대한 것을 임용고시 준비할 때 기본적 조건으로 깔고 가게 되면 좋겠어요. 예전에 위례별초등학교의 최현희 교사가 학교에서 성평등한 교육을 했다가 학부모들에게 항의를 받고 결국 많은 문제가 되었죠. 개인으로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한계가 있고 개인이 소진되면 그 공간 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제도권 내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공략하지 말고 낙후시키라는 말을 좋아해요. 성평등 조례 가이드라인 같은 식의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서, 이제 더 이상 여성의 참정권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듯이 여성주의적 인식에 대한 역치를 높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나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펜스룰에 대한 논의를 보면서 느낀 것이- 정말 관계를 맺는 상상력이 빈약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성과 1:1로 동등한 관계로 관계맺는 것을 할 줄 모르기에 그 가능성을 원천차단 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미투 때문에 좋아하는 여자한테 접근도 못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과 성추행은 분명히 다른 건데- 한국사회에서는 성추행과 좋아하는 마음을 구분해서 표현하는 게 무엇인지 배운 적 이 없어서 관계를 이렇게 맺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등학교 성교육을 반추해봐도 '나쁜 사람이 과자 사주면 따라가면 안 된다'는 식으로 피해자 탓을 하는 교육밖에 받은 적이 없거든요. 비단 성평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삶에 다양한 색깔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네 번째 질문 : 우리의 배움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나종일 : 현실이 이러한데요, 아까 처음에 저희 오프닝 리마크에서 허재형 대표가 말한 것 처럼 저희가 단편적 솔루션을 오늘 컨퍼런스 자리에서 제시하거나 답을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가 지금 세 분 께서 부딪히고 계신 한계들, 그리고 모여계신 여러분들께서 각자의 삶에서 부딪히고 있는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한 방향들이 있을 것 같아요. 세 분께서 생각하시는, 우리의 배움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좀 더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여성이 겪었던 오랜 시간동안의 고통을 어떤 사회구조적 접근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숙제를 풀어나가야 해요.


오찬호 : 제가 요즘 가지고 있는 고민, 분석적으로 '큰 사회문화적 틀'에서 저는 미투운동으로 인해 연락을 많이 받는데 가급적 인터뷰를 삼가고 있습니다. 지금 '남성중심문화가 어떻게 흘러왔고, 한국이 유교와 6.25를 거치면서~'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가해자를 발견하고 처벌하는 상황을 희석시키는 것 같아서요. 분석적으로 바라보면, 그 원인 무엇일까- 제가 최근에 쓴 글에도 나오는데 제 아내가 6살 아들이 누나한테 주먹질 흉내를 내니까 '남자가 여자 때리는 것 아니다'라고 교육을 해요. 그래서 제가 '남자 여자가 왜 나오냐',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게 그냥 안되는 일인데- 그게 좋게 포장되면 '여성을 배려하는 남자'처럼 커 가고, 결국 그게 여성을 종속적 입장으로 만들게 되는 거고요. 그게 일상에서 어릴 때, '남성이 여성 때리는 게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남자라면 대범해져라'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거죠. 그런 문화에서 출발하여 결국은 '남성은 여성을 때리는 것 아니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일 수록 오히려 폭력적으로 자랄 수 있다는 거죠. 그 글을 쓰고 나니까, 그 지점에서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수많은 남성 여성분이 저에게 반응을 보였어요. 하지만 그 지점이 불편했던 분들이 저에게 항의도 많이 했어요. 100% 다 여성이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에 폭력을 당해본 여성 입장에서는 그 문장이 공허한 이야기였다는 거죠. 어떤 상황에서도 남성이 여성을 때리지 않는 상황으로 되면, 폭력이라는 상황에서 구제될 수 있지 않느냐는 거죠. 여성이 가진 생물학적 약자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을 주신 거죠. 제가 옳고 그분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여성이 겪는 오랜 시간 동안의 고통이 있을 것인데 그것들을 어떤 층위에서, 어떤 사회구조적 접근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 그 고민이 우리 사회전체의 숙제라고 생각해요.



너무 '여성과 남성의 틀'에 같히기보다는 인간을 시갖형으로만 규정하는 것을 떠나 다양한 층위에서 '진짜 인간'을 무엇으로 규정할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여성주의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백경흔 : 포기하지 마시고요. 여성만 여성주의 인식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지만 여성주의 인식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남성이지만 여성주의 인식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게 연구로도, 철학자들의 논의를 통해서도 입증되었죠. 공감이 되는게- 성폭력 성희롱 등 한 성이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어느 날- '모든 인간은 폭력적이면 안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공허함이 있는 게 맞긴 해요. 하지만 남성성, 여성성이라는 것들을 통해서 가부장제가 무엇을 유지하려고 했는지 비판하고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인간성이라든지, 나다움이라든 지 하는 것들이 찾아지는 것은 맞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남성성 여성성에 갇히기보다 제가 관심있는 부분은 돌봄이에요. 돌봄을 여성의 짐으로만 지우고, 남성이 이상적인 노동자로 살 수 있게 하는 성별분업이 근대화 산업화, 한국의 한강 기적과 경제발전을 통해 공고하게 만들어졌는데- 이게 갖는 문제가 무엇이었고, 이것을 해체하고 나서 새로운 젠더질서로 무엇을 가져갈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져야죠. 여성이 돌봄을 함으로써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알파우먼이 될 수 없었죠. 하지만 남성은 장장시간 노동을 통해 회사형 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거요. 과연 남성이 돌봄을 하는 데 뛰어들 수 있겠는가, 여성과 똑같이 돌봄을 할 수 있겠는지가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어제 한국에서 제 1호 유치원 남성 선생님이 탄생한 게 기사로 났어요. 이게 현실이라는 거죠. 남성을 보육교사로 받아들이는 걸, 여성 남성이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돌봄은 여성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면 바뀔 수 없는 거에요. 남성이 보육교사가 될 수 있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면, 모든 기존의 모순된 사회화를 해체하고 'Be Yourself'될 수 있는 거죠. 마찬가지로, 여성이 진출할 수 없는 영역에도 그런 장애가 있었을 것 같아요.

  덴마크의 사례를 이야기하고 마치려고 해요. 도시마다 파일럿 스터디를 하고 있어요. 정말 보육교사라는 직종에 남성이 40%정도를 어떻게 차지할 수있을까. 학부 과정에 들어가는 남성들이 20-30%정도가 있는데 왜 배우기까지는 하고 비슷한 직종으로 취업/고용은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거에요. 사실 여성이 노동시장에 나가기 위해 완수가 되지 않는 과정에 있어요. M자형이고, 고학력 여성은 L자형이라 떠나면 돌아오지를 않아요. 같이 병행해야 할 혁명은, 남성이 그 돌봄의 영역에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문제죠. 남성도 마더링을 같이 할 수 있는 코-마더링이 가능한 사회가 올까? 에 대한 실험이 곧 여성주의의 고민인 것이고 우리가 여성주의 고민하면서 너무 여성 남성의 틀에 갇히는 것 보다는, 돌봄이라든지- 우리가 '진짜 인간'을 무엇으로 규정할까. 인간을 시장형으로만 규정하는 것을 벗어나서 다양한 층위에서 깊게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들을 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함께 여성주의를 알아가는 게, 때때로 많이 아픈 일일 테지만 함께 계속 불편하게 배움을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구아모 : 저는 학교에서 여성학 수업을 하는 교수님들에게 변화를 목격한 적이 있는지, 특히 남학생의 변화를 목격한 적이 있는지- 그 변화를 목격하셨다면 그 계기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여러번 물어봤었거든요. 그런데 수업 전에 와서, 왜 여성주의냐. 그렇게 하면 남성을 가해자로 상정하는 것 같다. 남성 여성 인권을 위한 거라면 이퀄리즘이나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지 않냐고 질문한 학생이 있었는데 강의 진행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젠더'를 가졌다는 이유로 삶의 경험이 어떻게 다르게 구성되는지를 많이 들을 기회가 생겼고 결국 그 학생은 자신은 이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그래서 너무 혼란스럽고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다 무너지는 느낌이어서 너무 괴롭다고 솔직하게 고백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여성학자 정희진 님의 '아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다'라는 말을 되게 믿어요. 저도 여성주의를 접하고 나서 때때로 자주 분노하고 우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주의를 통해서 각자가 각자의 삶의 서사를 유지해 나갈 수 있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나아갈 수 있어서 불편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제 삶의 과정에서 이어나갈 것 같습니다. 사실 '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더 많이 여성주의를 접할 수 있는 기회, 더 많은 담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여기에서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체인지메이킹을 하는과정이 아닐지 생각하고요. 같이 여성주의를 아는 게 편한 일은 아니고 때때로 많이 아픈 일일 테지만 함께 계속 불편하게 배움을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Q & A



제도 정비, 전문가 양성, 언어적 고찰 등의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미 상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의 변화가 아닌가 합니다. 가부장적 제도를 탈피하지 못한 사회에서 그런 위로부터의 변화가 얼마나 의미있을지, 아래로부터는 어떤 변화의 노력이 필요할지요?


오찬호 : 지금 이 운동에서 '방향'의 문제점을 다시 따지는 것이... 일단은 이 운동의 좋은 흐름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들어요. 얼마 전 신문을 보니 '미투가 바꾸어 놓은 세상'하면서 한겨레 1면에 나오길래 봤어요. 어떤 사례가 있나 보니까 '우리 회사는 이제 컵을 스스로 씻어요'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느낀 게, '이러니까 문제였지'하는 생각도 드는 한편 '이런 변화로만 그치는 거 아닌가' 그저 매너좋은 남성이 되는 것 정도에서 그쳐지는 게 아닌가에 대한 우려도 드는 거죠. 제가 볼 때는 말씀하신 부분이 '위'라고 해서, 특별히 퀄리티가 높고 변화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 폭력에 대한 모든 문제에는 순서는 있겠지만 위 아래를 떠나서 모두가 이 지점에서 예민해야 하는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더 힘든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이 귀에 안 들어오죠. 제도, 언어적 고찰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는 거죠. 우리가 그렇게 힘든 사람들을 줄여 나가고, 탈물질적 가치(인권 등)에 귀를 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양극화가 심하고 노동지위가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이런 논의가 속도와 추진력을 얻는게 굉장히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백경흔 : 컵을 다 같이 씻자? 저는 그게 집에서 안 되거든요. 엄청난 무상보육, 여성정책 도입되었지만 남편이 가사노동에 참여하게 하는 건 16, 17년이 지나도 안 돼요. 참정권 도입, 제도 도입되고 정책 만들고 해도 가장 안 되는게- 한국에 없는 정책이 거의 없는데도 문제는 실제 현장과 문화 속에서 남성이 돌봄에 정말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다다랐을 때 하나도 변화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리고 그 변화를 어떻게 가져올까, 문화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것은 저도 지금 숙제에요. 그리고 기업마다도 숙제일 것 같아요. 제도가 있지만 어떻게 실제로 적용할지요. 그런데 미투라든지, 강남역 사건 등이 있으면서 오히려 그게 많은 사람들이 대중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거죠. 정책과 제도 도입하는 건 오히려 너무 쉬운 것 같아요. 훌륭한 분들이 정책 제도 만드는 데 많이 들어가 계시고요.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너무나 당연한데 하지 않고 있던 것들- 젠더 스테레오타입, 젠더 바이아스가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그게 문제라는 것에 대해 공유하고 이끌어나가는 '일상의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학교 내에서 활동하면서 분명히 많은 시행착오와 번아웃되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구아모 : 성폭력, 성희롱 사건은 매년 있어오는 문제이고 저 같은 경우는 사회학과가 되게 반사회적인 학문이라서 여성주의적 기조가 강한 학과임에도 불구하고 남학우들의 여성혐오적 문화가 있었고- 이걸 페이스북 그룹을 개설해서 여성혐오적 언행들을 해왔던 것이 뒤늦게 고발되었었거든요. 사실 저는 다른 학과에 비해 초연할 수 있었는데 제가 몸담고 있던 공간, 저와 관계를 맺던 구체적 사람들이 일으킨 일이라 소진이 많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연대하는 친구들이 있고, 우리가 함께 하자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힘들다가도 충전을 해서 다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계속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데 까지는 많은 페미니스트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fin.

 


작성ㅣ루트임팩트 권용직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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