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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Feb 23. 2023

인연이 아니었던게지

결국 내 손을 떠난 것들에게


몇일 전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저렴했던 집이 올라왔다. 이미 나는 다른 집과 계약을 완료했고, 디파짓도 낸 상태였지만 디파짓을 포기해도 손해 없는 월세에 반해 뷰잉을 가게 됐다. 집은 오래된 캐나다 하우스였다.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었다. 앤틱 한 그릇과 컵을 무료로 제공해 주고, 드넓은 테라스가 매력적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상상했던 워홀의 드림하우스였다. 아주 다행히 캐나다인으로 보이는 호스트는 나를 마음에 들어 했었다. 어쩌면 우리는 인연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날 좋은 캐나다


하지만 세상에 역시 쉬운 일은 없다고, 그녀는 4명의 레퍼런스를 요구했다. 캐나다 온 지 3개월 차, 지인은 있지만 레퍼런스를 부탁할 만큼 친한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일단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주변 친구들과 코워커, 룸메에게 부탁해 4명의 연락처를 보냈다.


어제는 호스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집은 다음 세입자에게 넘어갔다고. 여차저차 사정이 있었지만 말도 안 되게 저렴했던 집은 내 손을 떠나갔다. 하지만 딱히 슬프진 않았다. 앞 서 말했듯 내겐 이미 계약한, 보험 같은 집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막연히 보험에 대한 확신과 안도감 덕은 아니었다.


그저 ‘내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





워홀에 온 후 많은 선택의 과정이 있었다. 특히 집을 선택할 때, 아무리 우선순위를 정해도 그 과정들이 얼마나 지리멸렬했는지 모른다.


분명 집을 구하는 첫날에는 캐나다까지 왔으니 다양한 나라의 룸메이트들을 만날 수 있다면 다른 조건을 포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다음 날이 되자 낭만보다는 현실, 역시 가장 월세가 저렴한 곳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자 삶의 질을 위한 큰 창문을 포기할 수가 없어졌다. 또 그다음 날은 이동이 편한 역세권? 놓칠 수 싶지.


당연히 이 모든 조건이 갖춰진 집은 없었고, 뷰잉을 갈 때마다, 선택의 순간마다 고민과 고민의 연속이었다. 이미 집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집을 기웃거렸던 것 역시 넘쳐나는 욕심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집을 구한 후에도 더 좋은 조건의 집이 올라오면 얼마나 아쉬웠는 지 모른다. ‘일찍 연락했어야 해’, ‘그냥 조금만 더 기다려볼 걸’ 같은 후회들. 그런 후회들에 짓눌릴 때쯤, 문득 수도승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인연이 아니었던게지



사실상 많은 것을 따져보고, 검색하고 사는 삶에서 그보다 더 최선이 뭐가 있었겠는가. 그저 그 순간과 타이밍의 최선을 선택했을 뿐.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랫배는 여전히 쓰리지만 속은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


캐나다의 거리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처음 선택한 집으로 입주할 예정인 지금. 결국 나의 인연이 된 이 집에서 나는 어떤 추억들을 만들어갈지. 부디 인연이 된 것 좋은 기억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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