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 손을 떠난 것들에게
몇일 전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저렴했던 집이 올라왔다. 이미 나는 다른 집과 계약을 완료했고, 디파짓도 낸 상태였지만 디파짓을 포기해도 손해 없는 월세에 반해 뷰잉을 가게 됐다. 집은 오래된 캐나다 하우스였다.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었다. 앤틱 한 그릇과 컵을 무료로 제공해 주고, 드넓은 테라스가 매력적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상상했던 워홀의 드림하우스였다. 아주 다행히 캐나다인으로 보이는 호스트는 나를 마음에 들어 했었다. 어쩌면 우리는 인연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역시 쉬운 일은 없다고, 그녀는 4명의 레퍼런스를 요구했다. 캐나다 온 지 3개월 차, 지인은 있지만 레퍼런스를 부탁할 만큼 친한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일단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주변 친구들과 코워커, 룸메에게 부탁해 4명의 연락처를 보냈다.
어제는 호스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집은 다음 세입자에게 넘어갔다고. 여차저차 사정이 있었지만 말도 안 되게 저렴했던 집은 내 손을 떠나갔다. 하지만 딱히 슬프진 않았다. 앞 서 말했듯 내겐 이미 계약한, 보험 같은 집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막연히 보험에 대한 확신과 안도감 덕은 아니었다.
그저 ‘내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
워홀에 온 후 많은 선택의 과정이 있었다. 특히 집을 선택할 때, 아무리 우선순위를 정해도 그 과정들이 얼마나 지리멸렬했는지 모른다.
분명 집을 구하는 첫날에는 캐나다까지 왔으니 다양한 나라의 룸메이트들을 만날 수 있다면 다른 조건을 포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다음 날이 되자 낭만보다는 현실, 역시 가장 월세가 저렴한 곳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자 삶의 질을 위한 큰 창문을 포기할 수가 없어졌다. 또 그다음 날은 이동이 편한 역세권? 놓칠 수 싶지.
당연히 이 모든 조건이 갖춰진 집은 없었고, 뷰잉을 갈 때마다, 선택의 순간마다 고민과 고민의 연속이었다. 이미 집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집을 기웃거렸던 것 역시 넘쳐나는 욕심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집을 구한 후에도 더 좋은 조건의 집이 올라오면 얼마나 아쉬웠는 지 모른다. ‘일찍 연락했어야 해’, ‘그냥 조금만 더 기다려볼 걸’ 같은 후회들. 그런 후회들에 짓눌릴 때쯤, 문득 수도승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인연이 아니었던게지
사실상 많은 것을 따져보고, 검색하고 사는 삶에서 그보다 더 최선이 뭐가 있었겠는가. 그저 그 순간과 타이밍의 최선을 선택했을 뿐.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랫배는 여전히 쓰리지만 속은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처음 선택한 집으로 입주할 예정인 지금. 결국 나의 인연이 된 이 집에서 나는 어떤 추억들을 만들어갈지. 부디 인연이 된 것 좋은 기억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