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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별 Feb 28. 2023

그럼에도 Too good to go

Too good to go 로 배운 인생

밴쿠버에 오고 자주 사용하는 어플 중 Too good to go라는 어플이 있다. 이 어플을 이용하면 마트, 빵집, 피자가게 등에서 유통기한이 끝나기 직전의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투굿투고로 받은 비건빵


한국에 살 때 배민을 끊자고 결심했던 것처럼, 여기 와서도 투굿투고를 이제 그만 이용하자 결심하곤 했다. 늘 그렇듯 내가 너무 맛있게, 자주 이용하며,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가끔 집 근처 빵집이 열리면 신청하고, 호다닥 달려가 쿠키와 빵을 가득 안고, 맛있게 먹으며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나 혼자만의 잔치와 파티를 열었다. 그렇게 한 참 먹다가 '이젠 진짜 끊어야해..!' 하는 마음으로 분명 어플을 지웠던 것 같은데, 내 눈은 왜 투굿투고 스크린을 보고 있는 것일까.


어제는 퇴근 길에 투굿투고를 신청했다. 팀홀튼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빵을 받고 집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마침 빵집의 후기도 좋아 '집에서 맛있게 먹어야지 룰루~'하며 도착했다. 그런데 세상에 기대했던 머핀이 아닌 식빵, 바게트 종류의 빵을 듬뿍 담아주는 것 아닌가. 나는 달콤한 디저트가 먹고 싶었다고..! 심지어 3일 후가 이사라 이 많은 플레인 빵을 혼자 먹기는 무리였다. 원래 예측할 수 없는게 투굿투고의 특징이지만 기대와는 한참 다른 봉투를 보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오는 길, 정말 다시는 이용하지 않겠다며 어플을 지웠다.


어플을 지우고, 집으로 가는 길 평소에는 비가와 레인쿠버라는 별명이 불여진 밴쿠버에 폭설급의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던 터라 손으로 빵을 가리면서 집으로 가야했다.


어쩜 이렇게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을까. 내 기대는 머핀인데, 바게트만 몽땅 담겨있는 투굿투고의 음식처럼. 머릿속의 기대와 현실은 이렇게나 다르다.






벌써 2월이 끝나간다. 3월 1일부터는 새로운 집에 입주해서 살기로 했다. 현재 집과 거리가 많이 떨어져있는 곳은 아니라 2월 28일, 열쇠를 받으러 가기로 한 날에 캐리어 하나를 옮기고, 3월 1일 다른 한개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카이트레인으로도 충분히 가능해 택시값 굳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내린 눈 때문에 캐리어를 끌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밴쿠버는 눈이 많이 오지 않는 지역이라 제설작업이 상당히 더딘 편이다. 아무래도 택시를 이용해야겠다. '그래도 이용할 수 있는 택시가 있는게 어디야' 하며 안도하려고 했건만 세상에! 현재 사는 집의 집주인이 3월 1일이 아닌 28일에 나가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아니 내가 12월 1일에 입주했는데, 2월 28일에 퇴실이라니. 그리고 그걸 퇴실 4일 전에 통보하듯 말해주는 게 어디있냐고! 나는 3월 1일인 줄 알았고, 지금 와 방을 찾는 건 무리라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안된다며, 그럼 소파에서 자라는게 아닌가! 이불은 없으니 너 알아서 자란다. 일단 당장 갈 곳은 없으니 알겠다고 했다.


28일에 미리 짐을 빼라는 통보를 받은 후, 나는 새로 갈 집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2월 28일에 두개의 캐리어를 미리 옮겨놔도 되냐 물었다. 그런데 새로운 집주인은 공동 부엌에 두는  것은 가능하지만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 주여..! 이 집에 가는게 맞는 걸까 흑흑 싶으면서도, 자동차 가리지도 있었던 곳이라 끝내 모른척 하는 새로운 집주인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내가 들어갈 방에 지냈던 여자분께서 자신의 방에 두어도 된다고 허락했다고 한다.





캐나다 온 이후 '서러움'이라는 게 무엇인지 새삼스레 알아가는 기분이다. 원래도 힘든 일에 도가 텄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처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내가 비빌 가족과 친구가 없다는 게 얼마나 서럽고 힘든 일인지. 동시에 두렵고 막막한 일인지.


예측대로 되는 게 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워홀은 정말 내 예측대로 되는 게 없는 것의 연속이다. 그나마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도착했을 때보다는 의연해지고 있는 듯 하다. '안된다고? 젠장!'하고 다음 길을 탐색하게 된달까. 내가 손뻗지 않고, 발뻗지 않는다면 문제가 1도 해결되지 않는 곳이 해외살이의 근본인 듯 싶다.


눈이 소복히 쌓였다


눈이 잔뜩 왔지만 밴쿠버는 예쁘다. 상황들이 힘들게 해도, 아름다운 자연 한 번 보면 위로가 되는 게 밴쿠버다. 신발이 젖을까 걱정이지만 오늘도 출근 하기로 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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