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경쟁에 대하여
오랜만에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때 함께 시간을 보냈던 언니를 만났다.
워홀을 다녀온 사람들이 한국에서 다시 만나면 늘 하는 대화 주제가 있다. '캐나다가 그리운지', '한국은 살만한지' 같은 이야기들.
우리는 캐나다가 완벽한 유토피아가 아님을 깨달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래서인지 한국 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이전보다 높아진 편이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문득, 나는 언니에게 반쯤 해탈한 채로 말했다.
언니 나는 한국에서
정면승부로 이겨본 적이 없어.
그래서 매번 어디든 떠나고 싶나봐.
한국 사회는 경쟁으로 가득하다. 입시도, 취업도 경쟁이고, 요즘은 맛집에 가려면 웨이팅 경쟁까지 해야 한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4당5락’이라는 말을 들으며, 꽃다운 청춘을 입시 준비에 바쳐야 했다. 닭장 같은 교실 안에서, 나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상상은 사치였다. 대신,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을 따라야 했다.
모두가 한 곳을 향해 달리는 이 경쟁 속에서, 정답에 도달할 확률은 턱없이 낮았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끝에서 나가떨어지곤 했다. 한국에서 원하는 인재상, 완벽한 어떤 것에서 거리가 있었던 나는, 종종 '지는 기분'을 안고 살아야 했다.
며칠 전에는 고등학교 친구와 디자인 특강에 참석했다. 최근 다시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며, 이번엔 제대로, 잘 배우고 싶은 마음에 수강한 강연이었다.
특강의 제목은 ‘국내외 취업특강’이었다.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진행되는 특강인 만큼,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청중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친구와 나는 맨 뒷자석에 자리를 잡았기에, 모두들 아이패드와 노트에 빼곡히 말을 받아적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특강이 끝나고 나오며 친구가 말했다.
"분위기가 고등학생 때 같더라."
친구의 말에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앞 사람들의 뒷모습만 봐도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이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걸까.
오늘은 일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더이상 경쟁하고 싶지 않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딱히 할법한 이야기는 아닐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디자인 커퍼런스 2024에 참여할 만큼,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성공하고 싶다.
다만, 성공의 순간을 회상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이유가 치열한 경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시절처럼 친구들과 치열하게 경쟁했던 기억도, 잠을 자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야 했던 기억도 아니었으면 한다.
대신 나는 그냥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 과정 속에서 나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찼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