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 알아간다는 것
아니, 뭐라 하려는 게 아니고
물어보려는 거야.
업무 중 과장님이 했던 말이다.
‘별 주임-‘ 하고 불렀을 때,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제대로 듣진 않고 해명부터 하려는 내 모습에 했던 말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쫄고 있었고, 그 모습이 타인에게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꽤 익숙했다. 회사에서 본부장님께서 나를 부를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 나를 재촉했던 언젠가의 상사가 나를 불렀을 때- 나는 습관처럼 쫄았다.
원인은 이미 알고 있다. 아주 어릴 적 우리 가족들이 쉽게 했던 말과 행동들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린 시절 이야기나 상처, 그로 인한 슬픔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그래서 큰 타격은 없다.
다만 여전히, 내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해도 그때의 경험이 남아, 지금 나의 일부가 되어있다는 점은 어린 시절의 힘이 크긴 크구나 인정하게 된다.
왠지 이런 모습은 고치고 싶어졌다. 누군가 부를 때마다 쪼는 내 모습은, 가오가 심히 떨어지니까.
아주 극단적으로, 설령 상대방이 나에게 뭐라 한다고 한들, 내가 쫄 필요가 있나?
만약 진짜 나에게 뭐라 하는 상황이었어도, 내가 화들짝 놀라 벌벌 떨 필요가 있나?
나는 그냥 바라볼 수도, 인상을 잔뜩 찌푸릴 수도,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길 바라며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반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내게 어떻게 말하든지 나는 그에 동요하기 전, 내 반응을 선택할 수 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말처럼.
왠지 앞으로는 다른 반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차분하게. 그 사람이 나를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