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먹는 즐거움
종강을 한 건 아니지만 하나 남은 시험과의 텀이 길어져 집에 오게 됐다. 오늘까지 이틀간 뒹굴뒹굴 했는데, 아무래도 내일부터는 다시 과제를 해야할 것 같다. 이번 주말 내엔 둘 다 끝내는 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학교는 주변에 음식점이 없다. 장난 아니라 정말 없다. 있어봤자 학교 내의 학식당, 기식당, 5개정도 되는 음식점이 전부다. 음식점도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기숙사에 사는 나는 자연스럽게 편의점음식에 노출되었다. 사실 요즘에는 편의점 음식이 정말 잘 나오지만, 짠맛에 익숙한 나조차도 먹으면 뜨억할 때가 많았다. 문제는 이런 편의점 도시락에 익숙해지다보니 얼얼해진 혀가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 다는 것이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 윗배 아랫배가 튀어나와 나의 배는 3모양이 되었다. 과식하는 습관을 고쳐 보겠다며 브런치 글을 쓰기 시작한건데, 구독자 분들께 면목이 없다.
면목이 없는 것 치고 집에 와서 너무 잘먹었다.
며칠 전 오빠와 밥을 먹으러 나간적이 있었다. 그날 우리는 회전초밥 집에 갔다. 회전초밥 집에서 몇접시를 못먹는 나를 보며 오빠가 왤케 못먹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어.. 오기 전에 뭐를 좀 먹고 와서”
“뭐를 먹고 왔다고? 저녁 약속이 있는데, 오기전에 뭘 먹었다고??”
평생 식탐이 없었던 오빠는 이해가 안가듯 물었다. 어이가 없다며 웃는 오빠의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 웃었다.
헤헤
내가 과식을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 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고등학교를 넘어가면서 부터였다. 입시스트레스, 인간관계, 가족관계, 경제사정 등 이 모든 것 중 멀쩡했던 건 거의 없었다. 어딘가 뒤틀려 있고, 삐그덕 대기 일수였다. 그러다보니 나는 먹는게 제일 쉬웠어요를 외치며 온갖 음식을 먹어댔다. 그게 나만의 힐링 방법이었다. 그게 습관이 되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나의 감정들을 치유하는 방법이었던 과식이 이제는 나를 괴롭히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어느순간 나는 힘들 때, 기쁠 때 등을 가리지 않고 달콤한 음식들을 찾았으며 그것들로 나를 채워갔다. 당연히 살이 쪘고, 속트름이 생활화 되었으며, 역류성 식도염까지 얻게 되었다. (셀룰라이트는 덤이요..)
나는 행복해지려 과식을 한건데 결론적으로 과식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습관적으로 먹는 행위는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먹는 것이 아닌 일단 먹어 치우는 것이 우선이 되는 행위였다. 그 속엔 이 음식을 먹는 내 감정과 생각, 음미 따윈 없었다.
그런 나쁜 습관들을 모조리 없앤 것은 아니지만 (불과 몇일 전의 일이기에) 오빠의 물음은 내가 내 스스로에게 묻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과식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나는 많이 먹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확실히 옛날에 과식에 집착했던 생각들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이 좋지만 너무 많이 먹는 순간 그것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게 된다. 이 원리를 이해하니 아, 오늘은 이만큼, 이 이상은 맛없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들을 때가 많았다.
나는 폭식증을 겪고 있는 여대생이다. 물론 자가 진단이지만 먹는 행위가 감정과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다보니 이것은 폭식증인게 틀림 없다. 하지만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을 인식할 때 나는 한편으로는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이 열정을 다른 곳에 쏟으면 그 분야에서 더 전문가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정신승리냐고 묻는 다면, 하하 그럼 뭐 어떠하리
아, 오늘 글을 기점으로 내가 조금 더 온전히 먹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건강식단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건강식단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하하, 유감 그 자체다. 그렇지만 내가 말하는 건강식단은 야채와 과일만 먹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떤 음식이든 과식, 폭식에 대한 두려움 없이 온전히 먹고 잊을 수 있는 것. 이거 진짜 생각만큼 쉽지 않다.
오랜만에 글을 써서 그런지 마무리가 잘 되지 않는다. 다음 글은 더 나아진 마인드와 개선된 식습관으로 찾아 오겠습니다 :)